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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호기 May 28. 2020

유재석씨의 2억 1천만 원은 어디로 갔을까?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

  방송국에서 일하면 연예인 자주 보겠네?라는 말을 정말 숱하게 듣는다. 맞다 연예인은 정말 쉽게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멀리서 보거나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정도. 연예인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 그리고 어떤 사실을 직접 확인한다는 것은 솔직히 간단한 일은 아니다. 하물며 <PD수첩> PD들은 어떻겠는가. 소속사 관계자와의 통화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안녕하세요 MBC PD수첩인데요’

‘아 안녕하세요. 저희가 혹시 무슨 잘 못한 거라도...’

‘아니요 아니요 그런 게 아니고요’


  물론 그에게 어떤 잘못이 있거나 의혹이 있다면 이것저것 크게 따지지 않고 질문을 던질 수 있으니 오히려 괜찮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조금 조심스러웠다. 유재석 씨는 어찌 보면 피해자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현재 MBC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를 이끌고 있다. 자칫 무리하게 접근했다가는 유재석 씨 본인 뿐만 아니라 프로그램을 열심히 제작하고 있는 선, 후배들에게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유재석씨는 '인권센터'를 위해 총 2억 4천만 원을 '지정 기부'했다


 이전 글 <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에서 생긴 일>

 나눔의 집의 소장은 일반 할머니들을 모시기 위해 정원을 20명으로 늘리는 생활관 증축 공사를 강행했고, 이 공사에 유재석 씨의 후원금을 사용했다. 소장이 시청에 보고한 관련 서류에는 유재석 씨가 후원금 사용을 허락해 줬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럴 때면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다짜고짜 찾아가서 일단 ‘싱크(오디오 멘트)’라도 따 둬야하나. 그럼 예고에 짧게 붙여서 홍보에는 큰 도움이 될 텐데. 근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횡령 피해자일 수도 있는 분에게? 그리고 <놀면 뭐하니?> 제작진한테는 뭐라고 얘기할건데? 내가 무리하게 취재를 시도하다가 그날 하루 촬영을 망쳐버리면 어쩌지? 그만큼의 가치가 있긴 한 건가?


  이런 경우, 난감한 현장에 직접 부딪혀야 하는 연출 PD들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리 중요한 취재 내용이라도 이건 좀 너무하잖아. 더군다나 가해자도 아닌데.' 하지만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관리자나 프로그램을 더 쫄깃하게 구성하고 싶어 하는 작가들의 입장은 그 반대가 된다. 이분들은 조금 더 공격적인 취재를 하길 바라는 편이다. '일단 싱크라도 따 놓고 고민하는 게 어때?' '아주 멀리서라도 일단 찍어와봐 응?' 아무래도 어렵게 얻은 정보와 그림일수록 더 큰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차례 회의를 거듭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상황은 비슷하게 돌아갔다. 분명 소속사를 통해서 공식 입장을 듣거나 유재석 씨와 정식 인터뷰를 하기는 어려울 테니 촬영 현장이라도 한번 찾아가 보자는 의견이 많았다. 일단 사전 약속 없이 무작정 찾아간 뒤, 그에게 직접 읍소해보자는 작전이었다. ‘혹시 알아?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된 유재석 씨가 매우 적극적으로 멘트해줄지?’ 팀원들은 이런 긍정적인 상상을 아주 쉽게 쉽게 하곤 한다. 물론 이런 ‘읍소’는 전적으로 담당 PD의 몫이자 역량이다.


  <PD수첩>을 제작하면서 유재석 씨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팩트 확인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유재석 씨가 자신의 후원금을 기꺼이 사용하도록 허락해 줬다면 이 문제는 크게 비판할 부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고, 만약 그 반대라면 이 문제는 아주 큰 후원금 횡령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사실 확인을 해야지 어쩌겠는가. 일단 유재석 씨가 출연 중인 <놀면 뭐하니?> 제작진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담당 PD에게 정중히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김태호 선배님...ㅣ


  썼다 지웠다를 수차례. 다행히 방송 취지에 공감해 준 선배가 유재석 씨에게 직접 의사를 물어봐 주기로 했다. 내가 요청한 것은 유재석 씨가 정말 후원금 사용을 허락하는 서류를 작성해 줬는지의 여부 그리고 이에 대한 입장을 직접 만나 들어볼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분명 부담 많으실 거예요. 정식 인터뷰가 어려우시다면 저희가 그냥 슬쩍 찾아가서 묻는 형식으로라도 부탁드릴게요.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을 위해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내 느낌으로는 유재석 씨가 이 서류(일반 할머니들을 모시기 위한 생활관 증축 공사 지정기탁서)에 서명을 해줬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해서 유재석 씨가 얻을 수 있는 것도 전혀 없고, 무엇보다 '인권센터'를 위해 사용해달라는 그의 후원 목적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공사 아닌가. 하지만 느낌만 가지고 방송을 만들 수는 없었다. 일단 우리의 입장은 최대한 절절하게 전달했으니 조금 기다려보기로 했다. 부디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며, 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방송의 절실함이 전달되길 바라며.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놀면 뭐하니?> 제작진들에게 물어 물어 유재석 씨의 동선을 일단 파악해두고 있기로 했다. 인터뷰도 못 따고 사실 확인조차 거부당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정말 어떻게든 어디로든 직접 만나러 가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하- 제발. 부디 그런 상황만큼은 오지 않기를 바랐다.


  ‘혹시 유재석씨 촬영 스케줄 나왔어요?’


  당시 내가 타고 있던 취재 차량은 경기도의 모처를 향하고 있었다. 매우 중요한 취재를 앞두고 있었는데, 그 대상은 25년 전에 지금의 나눔의 집 부지를 기부했던 어느 후원자였다. 그분은 지금의 나눔의 집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했다. 나눔의 집이 일반 할머니들을 모시기 위한 시설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 동의는 하신 건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들어달라며 기부했던 당신의 뜻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오늘의 모습에 대해 꼭 한 말씀 듣고 싶었다.


  여러 차례 연락을 드리고 어렵게 약속을 잡은 데다가 아직 촬영을 허락받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머릿속은 복잡했다. 일단 만나서 논의해보자고 하시는 터에 점심에 먹은 것이 소화도 잘되지 않는 그런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까. 음료라도 사 간다면 좋아하실까. 양치도 못 했는데 어떡하지. 오늘 입고 온 재킷이 너무 어두운색이라 비호감이면 어쩌나. 그런데 그때 답장이 왔다.


‘오늘 유재석씨 MBC에서 짧게 회의 할 것 같아요’


  꼭 이런 날이 있다. 뭐라도 하나 스케줄 잡기 어려울 때는 정말 아무 일정도 생기지 않다가, 어쩌다 겨우 스케줄이 잡힐 때는 또 완전히 겹쳐버리는 그런 경우 말이다. 여차하면 유재석 씨를 찾아가 팩트라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해서 어렵게 잡은 기부자와의 만남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말 난감했다. 이럴 때 모든 팀원들은 내 입만 바라본다. '어떻게 할까요?' '차 세울까요?'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차는 올림픽 대로를 타고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그만큼 기부자와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지만 유재석 씨와의 거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저 좀 내려주세요'


  많은 팀원들 앞에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그 압박감이란. 정말 괴롭다. 또 PD의 고민이 길어질수록 손해가 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은 다 돈이다. 그리고 스태프들의 체력도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니 모든 결정은 최대한 빨리 내려야 좋다. 대신 그만큼 수명이 줄어드는 고통을 맛볼 수 있다. 정말이다.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오로지 내가 생각해서 내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그 책임 또한 다 나의 몫이다.


  차는 올림픽 대로를 급히 벗어나 근처의 어느 지하철역을 향했다. 기부자와의 만남은 후배에게 부탁하고, 유재석 씨 팩트 확인은 내가 직접 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왜 그랬어야 했냐고 묻는다면 사실 논리적으로 대답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할 것 같냐고 묻는다면,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곧장 기부자에게 전화를 드렸다.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직접 가지는 못할 것 같은데 어떡하죠 선생님?' '괜찮아요 다음에 보면 되죠^^' 다행히 기부자는 우리의 상황을 이해해 주셨다.


  후배를 태운 차는 그렇게 경기도 모처로 다시 이동했고, 나는 근처 아무 지하철역이나 뛰어 들어가 곧장 MBC로 돌아갔다. 이마에는 땀이 맺혔고, 들고 있던 종이 서류들은 손이 닿은 주변이 눅눅하게 젖어들었다. 처음 제보자를 만났을 때는 겨울 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이제 날이 다시 무더워지고 있었다. 방송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였다.


  다시 간절한 마음으로 김태호 선배에게 연락을 드렸다. 그리고 오늘 유재석 씨를 잠깐이라도 만나볼 수 있을지. 어렵다면 사실 확인만이라도 할 수 있을지 다시 장문의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선배에게 전화가 왔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꽤나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재석이 형이랑 얘기해봤는데 기부 이후에 추가로 뭘 써준 적은 없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직접 입장을 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아 네네... 혹시 촬영 마치시면 잠깐 찾아뵙는 것도 어려울까요? 저 MBC에 있는데...'

'그런데 저희가 여기 강남 촬영이에요...'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쉽긴 했지만 유재석 씨가 생활관 증축공사를 위해 서류를 작성해 준 적은 없다는 사실만큼은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눔의 집 소장은 유재석 씨의 동의도 없이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반 요양 시설을 위해서 말이다.


  분명 매우 심각한 문제였다. 그리고 이 횡령이야말로 이번 아이템의 핵심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내용은 아주 신중하게 또 비중 있게 다뤄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더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했다. 담당 PD와의 전화 통화만으로는 나눔의 집의 소장이 허위서류를 작성했다고 확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제작진에게 전달받은 연락처로 다시 연락을 했다. 유재석 씨를 담당하는 소속사 관계자였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어느 카페에서 만나 나눔의 집 소장이 작성한 서류들을 함께 검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을 위해서라도 꼭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해 주시길. 또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꼭 여쭤볼 수 있길 부탁했다. 역시 유재석 씨의 입장 표명에 대해서는 큰 부담을 느꼈지만, 관계자는 유재석 씨에게 직접 서류를 보여주고 며칠 뒤 연락해 주기로 약속했다. 좋은 취지로 기부했는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재석이 형한테 확인했고요, 기부 이후에 따로 아무것도 써준 게 없다고 하네요. 그 일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또 가슴 아파하시죠 사실...’


  관계자는 명확히 사실을 확인해 줬다. 하지만 한편으로 소속사의 입장이 방송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는듯했다. 아무래도 편치 않은 기사들이 뒤따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또다시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이 중요한 싱크를 방송에 쓸 수 없다면 이 문제를 명확히 짚을 수가 없지 않은가. 나눔의 집 소장이 허위서류를 작성했다는 유일한 근거는 유재석 씨 본인의 확인뿐이었다. 달리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공식 입장을 방송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전에 통화는 끝나버렸다.


  고민이 깊어졌다. 하지만 그 끝에 나는 이 싱크를 방송에 내보내기로 결심했다. 물론 음성을 변조하고, 인물이 특정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만큼 중요한 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탄탄하게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오히려 유재석 씨나 관계자들에게 마음의 상처나 불필요한 피해를 주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만큼이나 간절하고 꼭 필요한 팩트였다.


  대신 논쟁이 있을 수 없을 만큼 탄탄하게 방송을 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왜 나눔의 집의 관리를 책임지는 소장과 법인의 이사들은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생활관 증축공사를 밀어붙인 것인지. 그리고 이 시설에 일반 할머니들을 자꾸 모시려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이 모든 물음표를 시원하게 날려줄 아주 강력한 한방을 반드시 찾아내야만 했다.


  며칠 뒤 나는 그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이 모든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을만한 명백한 근거.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방송 한 편 제대로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 매우 중요한 자료였다. 그것은 바로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 이사회 내용이 모두 담긴 대외비 영상 파일이었다.


법인 조계종 나눔의 집의 '스모킹 건'




나눔의 집에 후원하셨습니까?


1. 위안부 피해 할머니 후원금 72억의 비밀

2. 법인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 집에서 생긴 일

3. 유재석씨의 2억 1천만 원은 어디로 갔을까?

4. 큰 스님들의 은밀한 회의

5. '할머니'를 위한 시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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