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것 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

3장. 근육의 쓸모

by Jamie




힘들게 운동하지 않을 거라고 뇌를 설득하는 것이 몸을 움직이는데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주말 아침, 운동을 하러 갈까 말까 하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가서 가볍게 스트레칭만 하고 오자고 생각하니 발길이 떨어졌다. 헬스장에 들어서는 순간 운동할 기운이 올라왔다. 가볍게 몸을 풀고 가슴 운동을 시작했다. 지난 주에 선생님과 했던 순서 그대로 강도는 낮춰서 혼자 복습해 보기로 했다. 가슴 운동은 혼자서 운동할 때 아직까지 가장 자신이 없는 운동이다. 덤벨 벤치프레스를 한다고 벤치에 누워서 한 세트를 하고 쉬고 있는데, 옆을 지나던 선생님이 팔을 좀 더 벌리며 내리라고 했다. 두 번째로 체스트플라이로 자리를 옮겨 동작을 하는데 또 다시 주변을 지나던 선생님이 손잡이의 좀 아래쪽을 잡으라고 말해주고 갔다. 세 번째로 인클라인덤벨체스트프레스를 해보려고 누워있던 벤치를 세워 각도를 맞췄다. 어쩐일인지 근처에 서 있던 선생님이 벤치 높이를 어떻게 맞추는지 알려주고 갔다. 내가 맞춘 각도는 어깨를 운동하는 각도라고 했다. 마지막 체스트프레스머신 때는 어디선가 나타난 선생님이 의자 높이를 높여야 내 몸에 맞다고 조정해주고 갔다. 이 정도면 물가에 내놓은 아이 수준이다. 잠깐 보면 자세와 동작을 금새 잡아내는 매의 눈을 가졌다고 해도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지 않으면 베풀 수 없는 친절이다. 잘못된 동작으로 운동 효과가 떨어지거나 부상을 당할까봐 조심스레 가르쳐주고 가는 선생님의 배려가 고마웠다.

마무리로 팔의 삼두근 운동을 하기 위해 케이블 앞에 섰다. 힘이 약한 왼쪽에 더 신경을 쓰며 케이블을 천천히 아래로 당겨 눌렀다. 팔 근육은 작은 근육이라 힘이 많이 들지 않지만 작은근육 운동이 주는 불타는 듯한 고통스러움이 있다. 큰 근육운동 보다 나는 그 고통이 더 싫을 때가 많다. 바로 옆에서 근육이 커다란 선수 두 분이 어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어깨도 불타는 고통으로는 빠지지 않는 운동 부위다. 규모가 작은 헬스장의 장점은 옆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기운을 전달받는 거 아닐까. 고통을 참아내는 그 분들의 얼굴에 타협하고 싶은 마음을 밀쳐내고 개수를 채웠다.

같은 시간대에 자주 운동하는 청년이 있다. 운동을 마치고 정수기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다른 헬스장에도 다녀봤는데 이상하게 여기만 오면 운동 집중이 더 잘 된다는 말을 했다. 그 말에 동감이 됐다. 우리 헬스장에 오는 사람들은 운동을 열심히 한다. 운동만 열심히 한다. 나와의 싸움 한 가운데 있는 그 에너지를 나도 받는다. 오늘 운동은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이 전해주던 기운과, 부담주지 않으려고 지나가던 길인 듯 도움 주던 선생님 덕분에 채웠다. 운동하고 나니 축축 쳐지던 컨디션이 살아났다. 운동은 역시 할까말까 할 땐 하는게 맞다.

자꾸만 불어나는 살과 약해지는 체력이 고민이던 친구 수미는 1년 전 헬스를 시작했다. 아파트 커뮤니티에 가격이 합리적인데 실력이 좋다고 소문난 강사가 있었다. 수미는 금세 재미를 붙이며 9개월을 쭉 수강했고, 수강이 끝나고도 강사가 짝지어 준 사람과 꾸준히 같이 운동을 했다. 1년이 채 안 되어 수미는 반쪽이 됐다는 소리를 들었고, 근손실 없이 몸무게 10킬로를 뺐다. 수미는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가서도 근처 헬스장을 찾아 혼자서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타고난 체격 조건이 좋은 수미는 운동의 효과가 쉽게 눈에 띄었다. 한 눈에 봐도 근육이 강해 보이는 몸이 되고 있었다. 마른 몸 보다는 근육이 단단하게 붙은 몸을 추구하는 것이 비슷해서 운동 이야기를 할 때 대화가 잘 된다.

같이 헬스를 다니는 재인이와 수미와 셋이서 저녁 술자리를 했다. 셋 다 헬스를 하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운동과 근육이 대화의 주제가 됐다. 생산된지 1년도 안 된 새파란 근육을 서로 보여주며 어머, 진짜 여기 전완근 굵은 거 봐,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첫 번째 가게에서 식사를 마치고 두 번째로 갈 곳을 찾아 거리에 섰다. 우리 중에 제일 마른 재인이 어깨를 만지며 내 어깨의 절반이라고 농담을 했다. 어두운 거리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재인이가 수미와 나를 보며 말했다. 너희가 옆에 있으니 뭔가 든든하구나. 있는 것만으로 든든한 사람이라는 말은 우스갯소리였지만 듣기 좋았다. 내 굵어진 어깨가, 수미의 단단한 전완근이 자랑스러운 밤이었다. 나는 혼자서도 단단하게 서고 싶다고 바래지만, 동시에 타인의 지지와 위로도 바라는 연약한 존재다.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내 삶에 어디 한둘일까. 여러 얼굴이 떠올랐다. 나의 존재도 그들에게 그렇게 힘을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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