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요전쟁의 고조
앞에 송요전쟁 주제로 연결글이 있습니다.
앞의 맥락을 더 읽고 싶은 분께서는 '송요전쟁의 시작, 고량하전투' https://brunch.co.kr/@goldsmiths/194 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물론 이 '쪽글'만 재밌게 읽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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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종은 북한을 정복하며 오대십국의 시대를 종식시켰다.
그러나 거란의 요나라에 빼았겼던 연운16주를 되찾기 위해 요나라에 도전했다가, 고량하에서 대패했다.
송태종은 화살을 두 대나 맞으며 사로잡힐 뻔 했으나, 송나라의 무적장군 양업이 나타나 구해주었다.
송태종은 간신히 탈출할 수 있었다.
고량하 전투 이후 패주하던 송군은 그래도 정주에서 간신이 수습하여 관남, 진주에서 요나라의 추격에 반격을 가하며 물리쳤다.
이후 도성으로 돌아온 태종이 분노한 내용은 전술한 바와 같다.
송나라 태종은 그래도 영민한 자였다.
고량하 전투에 패배하여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쫓기고 나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송태종은 요나라가 다시 침략해올 것을 방비하기 위해 국경에 대대적인 방어라인을 형성하였다. 그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요나라는 자신에게 도전해온 송나라를 손보기 위해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다.
요나라의 경종은 송나라의 선제공격에 괴씸함을 느꼈다.
요나라는 그 해 9월, 다시 군대를 재정비해 송나라를 손보기 위해 진군한다.
요나라는 동로군으로 한광사, 야율사진, 야율휴가를 장수로 진군케 하고, 서로군으로는 남경사령관 사율선보를 총수로 하여 진군시켰다.
송의 첫번째 요새인 진주를 함락시키고 더욱 진군한 요군은 마침내 만성에 도착한다.
송군도 여기에 포진하며 요군과 대치했다. 송태종의 지시로 이미 송군은 충실히 방비한 터였다.
그런데, 송군은 요군이 포진한 위세를 보며 기가 죽었다.
어느 하루, 송나라 장수들이 요나라 진지에 서신을 보내 항복하겠다고 전달해왔다. 야율휴거는 거짓항복이며 이를 믿지 말라고 조언했다. 총사령관인 한광사는
"항복한 적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느 누가 귀순해오겠는가?"라며 이들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송군의 위계였다. 거짓항복으로 한광사를 마비시키고, 방심할 무렵, 송군이 기습해왔다. 동시에 후방에서도 송군이 북과 괭과리를 치며 공격해왔다. 이미 송군은 거짓항복으로 방심시킨 뒤, 일부군을 배후로 돌아 기습하도록 한 것이다.
요군은 송군의 거짓항복에 당해, 괴멸당하고 후퇴하고 말았다.
요나라 경종은 패배를 설욕하고 싶었다.
다음해 3월, 요군은 다시한번 송나라를 응징하기 위해 대군을 몰고 왔다. 이번에는 10만이라는 대군을 형성해 진군해왔다.
여기에 방어하는 송군도 만만치 않았다. 송의 두 명장 이번 전투에 참가하게 됐다. 양업은 패배가 없어 양무적이라 불리고 있었다. 또 한명의 장수 반미는 남한을 정복했던 명장이었다. 이 두 명장이 방어하게 되었다.
송나라에게 다행인 점은 안문관으로 적군이 오고 있었다. 안문관은 대주에 있는 관문으로 동서로 산세가 험준하여 남북방면만 잘 틀어막으면 수비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였다.
요군이 왜 안문관을 선택했는지 모르지만, 당시 요군이 진군해오는 루트는 만성 쪽과 안문관 쪽 그리고 기타 몇 군데가 없었다. 반미는 대주 전체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었고, 안문관은 양업이 방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소수 병력으로 몇 만의 대군을 막을 수 있는 안문관이라고 하나 양업은 몇 천의 기병 밖에 없었다. 그는 10만을 직접 상대하는 소모전으로 가는 방어전은 어렵다고 보고, 요나라 총사령부를 괴멸시키기로 한다.
"도둑을 잡으려면 두목을 잡으면 된다."
오다 노부나가가 이마모토 요리토모를 노린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보여준 전술과 비슷했다.
요군은 안문관을 향해서 진군해왔다.
양업은 부장에게 일지군을 주어, 양문관을 방어하도록 하고, 자신은 수 천의 기병을 이끌고 오솔길을 따라 요군의 옆면을 따라 모르게 우회하며 접근해갔다.
마침 대주 전체의 방어선을 차렸던 반미 역시 안문관에 도착하여 군대를 보강하고 죽음으로 방비하기로 다짐한다.
한편, 요군은 드디어 안문관 바로 앞에 도달했다.
안문관 공격을 염두하던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일군의 송나라 기병이 나타나 요나라 군대를 유린한다. 선두는 뒤에서 요군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데, 얼마나 많은 송군이 뒤에서 기습하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남쪽 출구는 안문관으로 막혀있고, 북쪽 입구에서는 송군이 기습하고 있는 상황만 알아차렸다.
요군을 기습하는 것은 역시나 양업이었다. 그는 총사령관이 주둔하는 중군을 직접적으로 노렸다. 양업과 그의 기병은 가장 깃발이 화려한 사령부를 향해 밀고 들어갔다. 요군의 총사령관은 소돌리였다. 그는 멀리서 봐도 가장 좋은 말을 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양업과 그의 기병은 소돌리를 향해서만 집중 타격했고, 이들의 기세에 그를 방어하는 호위병들이 흩어졌다. 결국 요의 사령관 소돌리는 송군의 칼에 전사하고 말았다.
후방에서 양업이 교란하자, 안문관을 지키던 송군도 모조리 뛰쳐나와 요군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를 잃은 송군은 지리멸렬 괴멸되며 달아난 요군은 요의 서경(대동/다퉁)까지 달아나서야 겨우 생존할 수 있었다.
양업은 개선하며 돌아왔는데 요의 장수 이중해까지 사로잡아 왔다.
이 때부터 송나라에서는 양업을 무적장군이라는 뜻으로 양무적이라 불렀다.
(당시 '무적' 양업의 활약과 용맹은 이후 이어질 송의 연운16주 2차 수복전에서 이어질 예정입니다. 이 무적 양업의 비극적인 이야기는 양가장/양가장연의 라는 작품으로 이어져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
그 해 겨울, 요나라 경종은 다시 참지 못하고 송나라를 공략하기로 결심한다. 경종은 고안에 중병을 집결시킨다. 이번에는 요나라 경종 야율현이 직접 친정을 나섰다. 이에 송태종도 이를 방비하기로 하고, 와교관에서 요군을 막기로 결정한다.
요군은 송나라군이 와교관에 방비를 하기 전에 야율휴가를 선봉으로 하여 재빨리 와교관을 포위하게 했고 뒤이어 요의 경종이 본진을 이끌고 내려와 와교관을 포위했다.
와교관을 지키던 송나라 장수 '장수'(이름이 '장수')가 포위망을 뚫고 나오려 시도했다. 장수가 이끄는 송군은 포위를 돌파하지 못하고, 야율휴가에 패배하며 전사하고 말았다. 남은 송군은 황급히 와교관 성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후방의 송군 역시 와교관을 돕기 위해 몰려들었다.
운집한 송군은 역수 남쪽에 주둔했다. 역수의 북쪽에는 요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요군 입장에서는 송의 원군이 좀 더 올 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역수 북쪽에서 도하하여 송군을 섬멸하기로 결정하였다. 도하하는 쪽은 기다리는 쪽보다 훨씬 불리하다.
요경종은 거란의 명장 야율휴가의 말이 하얀명마이므로 너무 눈에 띈다고 생각했다. 야율휴가가 백마를 타고 도하작전을 하다가는 송군의 집중화력을 받을 것을 보았다. 요경종은 자신의 애마와 야율휴가의 말과 바꾸어주었다.
말을 바꾼 야율휴가는 도하작전을 시작했다. 송군도 이를 알고 있었으므로 도하는 요군을 맞서 싸운다.
그러나 야율휴가는 멋지게 도하작선을 성공하여 송군을 격파했다.
여기서 요군은 대승하여 송군을 막주 경계까지 밀어냈고, 많은 장수를 사로잡으며 대승을 거두었다.
다음날 송태종은 와교관에서 대패한 소식을 듣는다. 급히 장수 최원진을 보내 이들을 수습하고 돕도록 했다.
한편, 요나라는 승리를 챙겼으므로 송군이 더 다가오자 군대를 돌려서 회군했다. 요군도 새로운 송의 원군을 감당하기 보다는 승리를 거두고 돌아갔다. 얼마 뒤 송태종이 직접 와보니 남아있는 송군은 약해지고 자신감을 많이 잃어 있었다.
이렇게 요나라와 송나라는 몇차례 공방전을 주고 받았다. 이것을 볼 때, 당시 천하를 통일한 송나라와 북방을 장악하던 요나라 역시 비교적 대등한 형세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송도 요도 서로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송사에는 송나라의 이런 승리들이 많이 다뤄지지 않고 있다. 보통 고량하 전투와 지구관 전투를 보여주고, 이어 전연의 회맹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기실 천하를 통일한 송나라는 북방을 장악하던 요나라 역시 비교적 대등한 형세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요나라가 금나라와 달리 송나라를 완전히 점령하지 않고 전연의 맹을 맺은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송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다. 물론 요나라가 송나라를 정복하고 통치할 의도까지 있었는지에는 여러가지 의견이 있다.
4년 뒤, 986년 어느 날 요나라의 경종이 사망하고 만다. 이후 요나라에는 어리고 유약한 왕이 들어섰고, 태후의 섭정이 펼쳐지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송나라 태종은 이 상황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송태종은 다시한번 연운 16주를 되찾기 위한 북벌을 준비하도록 명했다.
다음편에는 송나라의 연운16주 수복 리턴매치가 이어집니다. 많은 기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