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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Oct 22. 2023

송의 연운16주 수복전2_옹희북벌

-송요전쟁의 클라이막스

앞에 송요전쟁 주제로 연결글이 있습니다.

앞의 맥락을 더 읽고 싶은 분께서는 '송요전쟁, 폭풍전야' https://brunch.co.kr/@goldsmiths/196 를 참고하시면 좋습니다.
물론 이 '쪽글'만 재밌게 읽어셔도 좋습니다.

~~~~~

송태종은 요나라의 비호를 받는 북한을 점령함으로써 오대십국 시대를 종료했다. 그러나 송나라는 불완전한 통일을 완성했다. 연운16주를 요나라에 할양되어 있었고 이를 되찾고자 했다.


북한을 점령하며 통일을 이룬 송나라는 그 승세를 몰아 태종이 친정을 하며 연운16주 첫번째 수복전을 진행했다. 1차 도전은 실패를 했다. (관련글: 연운16주 첫번째 수복전 고량하 전투 https://brunch.co.kr/@goldsmiths/194 ​)


그 후 요나라의 대대적인 반격이 이어졌고 송나라는 이와 교전하며 치열하게 버텨냈다. 이제 송나라가 역습할 기회가 왔다.


요나라가 내정으로 어지럽다는 첩보가 계속 들어온다. 요나라의 혼란을 틈타, 송은 4년의 준비끝에 대대적인 북벌을 감행한다. 이것이 986년의 옹희북벌이다.


물론 군사작전의 목표는 요를 정벌한다기 보다는 고토수복, 즉 연운16주를 되찾는 것이었다.

16주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방점은 핵심요처, 즉 요나라의 남경(지금의 베이징)이자 송의 유주를 되찾기 위해 가장 많은 군사적 물량을 투입하고는 진격해 들어갔다.


옹희북벌 진군루트 (계획)

송군은 세방향으로 진군했다.

동로군은 오대십국 통일 당시, 남당을 정복한 명장 조빈을 앞세웠다. 조빈의 동로군은 탁주에서 출발하여 유주로 향한다. 동로군이 가장 유주에 직접적이고 가까운 루트이며 10만을 거느린 송군의 주력부대였다.


서로군은 남한을 정복한 명장 반미에게 맡겼다. 반미의 서로군은 안문관에서 출발했다. 무적 양업 장군도 서로군으로 함께 진군했다.


중로군은 태종이 친정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사실상 장수 전중진이 이끌었고 정주에서 출발했다. 비호를 통해 연운16주로 진공했다.


출발하기 전에 송태종은 수도 변경(개봉)에 장수들을 모두 모아놓고 직접 상세한 작전지도를 그려주며 지시하였다. 그정도로 송태종은 진심이었다.

송군의 진격

송나라는 연운 16주를 세 방향으로 침투하며 마침내 요나라 정벌을 시작했다.


명장 조빈과 반미가 이끄는 동로군과 서로군은 물론 전중진의 중로군도 초반 눈부신 전과를 올리며 파죽지세로 진격한다.

대대적인 송의 북벌에 요나라도 당황했다.

요나라의 소태후는 야율휴가, 야율사진을 불러 대대적인 논의한다. 결국 소태후 역시 직접 출전해 진두지휘하기로 한다.


우선, 명장 야율휴가에게 요나라의 남경(송의 입장에서 유주; 현 베이징)을 막게 했다. 요나라의 가장 뛰어난 장수에게 송나라의 주력인 동로군을 대적케 한 것이다.


그리고 소태후 역시 직접 정예기병을 이끌고 빠르게 대응해 동로군을 막기로 한다. 남경을 지키는 야율휴가와 교각지세를 이루게 하여 송의 주력인 동로군을 격파한다는 것이다. 교각지세란 사슴의 뿔과 다리를 함께 잡아서 사슴을 사냥하는 듯한 형세로, 양쪽에서 협격하여 송군을 괴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야율휴가와 소태후가 동로군을 처리할 동안, 야율사진에게는 비호에서 빠져나오는 중로군과 운주로 진군하며 빠르게 북상하는 서로군을 저지하도록 했다.

요나라 군

기구관 전투

송의 명장 조빈이 이끄는 동로군은 성공적으로 적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진격하였다. 마침내 남경 근처에 이르러 요의 야율휴가와 대치하게 된다.


요의 명장 야율휴가는 과연 명장이었다. 적의 예기를 빗겨가며 적군을 맞이했다. 송군의 기세가 강한 듯 하여 대규모 전투를 비껴갔다.

반면, 요군이 피하려 해도, 송의 명장 조빈은 고안, 신성, 탁주에서 요군들을 격파하며 작은 승리들을 축적해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요군은 전면적인 전투를 피하고 밤에 기습하며 적을 피로하게 만들고, 송군의 보급로를 끊으며 군량이 차단되게 만들었다.


송의 동로군은 예기가 점점 둔해지고 보급이 부족해지면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송장 조빈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보고 일단 탁주에서 군사를 뒤로 물린다.


이 소식이 송태종에게 들어간다. 태종은 분노하며 서로군과 중로군의 전과는 뛰어난데 가장 많은 지원을 받은 동로군은 주력군임에도 적이 눈 앞에 있는 상황에서 다시 뒤로 물러나는 큰 실책을 범하냐며 질타했다.


조빈은 하는 수 없이 군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시 탁주로 진군해갔다. 그러나 최전력으로 해도 이길까 말까한 전투에서 억지로 진군해서는 이기기 힘들다.

진군해가는 동안 거란군의 기습을 계속 받았고, 보급은 계속부족했다. 조빈의 동로군은 더욱 어려워진다.


결국 안되겠다 싶은 조빈은 다시 군사를 물린다.

야율휴가와 소태후가 이를 놓치지 않았다. 군대를 출격시켜 철수하는 송군을 추격했다.

마침내 가구관에서 송군을 따라 잡았다.

요군은 송군을 공격했다.

요군의 본격적인 공세에 송의 10만대군은 순식간에 지리멸렬 무너져내렸다.


송군은 한없이 도망쳤고, 사하에는 학살당한 송군의 시체로 물길이 막힐 정도였다고 묘사되고 있다.

중로군과 서로군의 전황도_요는 청, 송은 적색이다.

중부전선 / 서부전선

송의 주력 동로군이 무너지자 송태종은 서로군과 중로군을 철수하도록 명한다.


중로군 역시 동로군과 전공을 다투듯이 급하게 진군하며 초반에 작은 승리들을 가져왔으나 결국 요의 야율사진군을 맞아 패퇴하면서 물러나던 상황이었다.


한편, 서로군은 명장 반미와 무적 양업이 운주, 응주, 환주, 삭주를 점령하며 진군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동로군과 중로군의 패퇴로 철수하되 탈환한 4주의 백성을 이끌고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한편, 요의 야율사진은 소태후의 명을 받아 이들을 몰아내라는 명령을 받는다.


양가장 삽화

야율사진은 중로군을 밀어냈고 환주마저 탈환하며 기세를 타고 서로군을 쫓아 몰려왔다.

결국 서로군과 야율사진의 요군을 결국 대치하게 된다.


서로군 장수들이 요군에 대한 전략을 논의하였다.

무적장군 양업은 좋은 전략을 낸다.

"적의 기세가 좋아 전면전은 어려우니 먼저 백성들을 퇴각시키고 저는 궁노수 3천으로 곡구에서 적군을 막겠습니다. 제가 방어하는 동안 기병이 습격하면 백성들 철수와 승리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업을 질투하는 감군장수 왕신이 반박했다.

"지금 우리가 수만 정병을 이끄는데 너무 나약한 전략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북을 울리며 공세로 나아가야합니다."

이 말에 호군장군 유문유 등 다른 장수들도 모두 왕신의 말에동의했다.

그러자 왕신이 신나서 다시 비꼬았다.

"무적장군이라면서 적을 보고도 싸움을 피하려 하니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양업은 화를 내고는 하는 수 없이 출정하기로 한다. 결국 사령관 반미에게 이렇게 말했다.

"진가곡에 군사를 매복시키시고 소장을 기다려주십시오. 소장이 싸우다가 그 곳에 이르면 앞뒤로 공격해 구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결국 양업은 죽을 줄 알고 울면서 출전했다.


양업은 요군을 맞이하면서 공방을 벌이다가 역시 이길 수 없었다. 적군과 교전을 치르면서 후퇴하며 미리 약속해둔 진가곡으로 이동했다.

양무적 양업


한편, 진가곡에 주둔한 송군은 점심 때가 되어도 양업이 오지 않았다.

양업이 오지 않자 송군이 먼저 철수해버렸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감군 왕신은 양업이 오지않는 것읗 보니 요군에게 승리한 모양이라면서,

“공을 양업 혼자 차지하게 둘 수 없다.”며 송군을 모두 진가곡에서 빼내어 진군한다. 그러나 곧 쫓겨오는 양업군을 보며 같이 무너진다는 내용이다.


어찌되었건 양업이 진가곡에 다다랐으나 이미 그 곳에는 송군은 한명도 없었다. 결국 양업은 가슴을 치며 한탄했다. 말도 안되는 전략에 죽을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기 때문에 출진할 때 눈물을 흘리며 진가곡에 매복을 부탁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적군과 악전고투를 벌였다. 교전 중에 요장 야율희달이 쏜 화살이 양업의 말을 맞춘다. 무적장군 양업은 생포되었고 회유를 거절하며 단식하며 버티다가 순절하고 말았다.


송나라의 연운16주 수복전은 이렇게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전투를 요약하자면, 요군은 송군이 먼 길을 원정오며 지치게 하고, 짧은 거리에서 내선작전을 하며 송군을 하나씩 괴멸시켰다.


이 옹희북벌이 좌절되면서 비교적 대등하던 송나라와 요나라의 군사적 균형은 무너진 것으로 보인다.

이 전투 이후에도 계속 전투가 벌어지지만 이를 기점으로 요나라는 송나라를 힘으로 압도하게 된다.

당나라는 절도사의 반란으로 무너졌다. 송나라는 태조 조광윤 시절부터 장수들의 군권을 회수하고(술자리에서 병권을 회수하여 '배주석병권'이라는 유명한부분이 있다.), 금군(중앙군) 중심으로 개편하는 대신 절도사들을 무력화하며 문치주의로 돌아섰다.


초기에는 송나라도 통일을 이룬 만큼 충분한 명장과 군사력이 있었으나 옹희북벌에서 좌절된 이후, 송의 군사력은 비교열위로 빠르게 축소되고, 이후 송나라는 평화를 돈으로 사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다.


다음 편에는 송요전쟁의 endgame에 대해서 서술하겠습니다.

송나라와 요나라의 외교적 균형이 무너지는 과정과 돈으로 평화를 샀다는 소리를 듣는 전연의 맹(송요의 국제협약)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주화파와 주전파의 다툼은 무척 흥미로운 서사를 가지고 있으나 외치/전쟁사 중심으로 서술한 이번 시리즈에서는 다룰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무튼,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마지막까지 기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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