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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ldsmiths Feb 10. 2020

축록전 (逐鹿戰) 5(完)

- 수말당초 군벌 쟁투, 대당 제국 창업기

이제 이야기는 마지막 절정에 이르렀다.

당은 비교적 쉽게 장안을 장악하고, 요새와 같은 관중에 들어앉아 세를 키웠으며, 자신의 후방에 해당되는 서쪽의 설거(토번 전담방어 수나라 정예군)와 북쪽의 유무주/시필가한(당대 최강 돌궐군으로 구성)을 안정시켰다. 이로써 당은 중원을 토벌하고 천하를 평정할 일만 남았다.


당은 가장 먼저, 동도(낙양)의 왕세충을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다.


앞서 본 대로, 낙양이란 이밀과 우문화급이 모두 실패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역대 모든 군벌들이 동도를 노리다가 망한 예를 볼 때, 이세민의 동정은 마지막 승부처인 셈이다. 동도를 차지함으로써 천하를 얻느냐, 다른 군벌처럼 몰락의 길을 걷느냐.


왕세충 역시 자신만만하게 먼저 당의 접경을 괴롭혀 왔던 지라, 이세민을 맞아 결전을 치른다.


그러나, 당대의 제갈량 이세적(본명, 서세적. 훗날 이적)과 당대 최고의 맹장, 절대쌍교 울지경덕과 진숙보를 거느린 이세민에게 대패한다. 역시나 왕세충은 천혜의 요새 낙양으로 숨어 농성전을 벌인다. 역대 군벌을 집어삼킨 낙양의 방어전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

현재 낙양의 모습

이세민은 낙양을 포위하여 고사시키는 작전을 구사한다. 비록 물산이 풍부한 낙양이지만 농성전은 한계가 있으리라. 게다가 보급로를 끊어 괴롭히는 것은 이세민의 주 전술이었다.


왕세충 역시 얼마나 버틸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하왕 두건덕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당의 이세민은 천하를 차지하려 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게 된다. 지금 정국(왕세충)이 무너지면 다음에는 하국(두건덕) 차례가 될 것임을 천하가 다 알 일. 지금 협심하여 둘의 근심거리인 당을 제거하고 나눠갖자."


두건덕은 대신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주고받는데 정국을 돕기로 한다. 두 호랑이가 다투면 누군가 상처를 입기 마련이며 그 때 어부지리를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략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대립했다.

제1안, 두건덕은 낙양을 우회하여 장안(당나라의 근거지)을 직접 타격한다. 장안까지 가는 길에 있는 지역까지 흡수가 가능하여 세를 불릴 수 있고, 장안을 직접 타격할 경우, 이세민은 낙양의 포위를 풀게 되어 왕세충을 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른바 전국시대 손빈이 위나라를 포위함으로써 조나라를 구한 이야기(위위구조 圍魏救趙: 위나라를 포위함으로써 조나라를 구한다.)와 같으며, 한니발이 로마를 습격할 때, 파르타고를 공격하여 로마를 구했던 스키피오의 작전과 같은 것이다.

한니발의 라이벌, 스키피오

제2안은 낙양으로 직접 출동하여, 이세민의 후방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세민은 전방엔 왕세충을 상대해야 하고 후방엔 두건덕을 상대케 하는 것이다. 이른바 기각지세(掎角之勢: 사슴을 잡을 때 사슴의 뒷발을 잡고 뿔을 잡는다는 뜻)를 이루자는 뜻이다. 협공으로 양면전을 하여 이세민을 앞뒤로 무너뜨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왕세충의 낙양도 먹어버리자는 심산이었다.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전략만으로 전쟁의 결과를 미리 짐작할 순 없는 법이지만, 두건덕은 후자를 선택한다.


후방에서 두건덕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자, 모두들 근심이 가득한데, 이세민은 오히려 호탕하게 웃었다. 두건덕까지 치러 낙수까지 가려면 보급의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데, 두건덕이 자청해서 온다고 하니 일거양득이라고 오히려 기뻐하였다.


이세민은 어떤 복안을 품고 있기에 이토록 여유만만한가?

당나라 모습 (벽화)

이세민은 과감하게 군사를 둘로 나눈다.

일지군은 우선 왕세충에게 계속 허장성세를 보이며 감히 뛰쳐나오지 못하도록 하며, 지속적으로 보급이 유입되지 못하게 차단한다.

나머지 군사를 몰아 두건덕을 상대하러 간다.


이세민이 이렇게 판단한 이유에는 낙양으로 오는 길에 호뢰관이라는 천혜의 요새가 있고 여기서 맞선다면 두건덕의 대군이라도 격파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호뢰관은 낙양으로 들어가는 핵심 관문으로 삼국지에서도 유명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낙양에 자리잡은 농서군벌 동탁을 치기 위해, 원소를 중심으로 연합군벌들이 모였고, 이곳 호뢰관에서 여포와 연합군이 맞서 싸운 유명한 곳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낙양으로 가는 최대 군사요충지이다.

토탈워에 묘사된 여포

천시, 지리, 인화라고 했던가?

젊은 시절 이밀에게 생포되었다가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고, 울지경덕에게 죽기 직전 거대한 미량천을 건너 뛰는 모습은 당시 사람들에게 이세민은 하늘이 돕는 진명군주이며 천시가 이세민에게 있다고 했다. 천혜의 관문 호뢰관을 쥐고 있던 이세민은 지리도 장악했고, 이세적, 울지경덕, 진숙보, 은개산, 정지절 등 장안을 차지함으로써 많은 인재를 보유했던 이세민은 인화마저 빼어났던 것일까?

물론 결과적인 승자승 논리의 이야기이다.


결국, 그렇게 왕성하던 두건덕의 부대는 이세민이 기민하게 군대를 둘로 나눠 번개같이 이동하여 호뢰관에 먼저 자리잡고 (결과적으로 두건덕은 호랑이 입으로 들어온 셈이다) 대승을 거두었고, 왕세충 역시 감히 성 밖으로 호응하러 나오지 못하도록 압박했다. 그리고 그것이 성공했다.


이렇게 당대의 영웅 두건덕의 세력은 일거에 몰락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두건덕은 현명한 리더로서 두건덕이 다스리던 지역에서 민심은 대단히 두터웠다. 또한, 수나라의 역적 우문화급을 처단하였으므로 유교적 가치관에서 볼 때도 의인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두건덕은 졌다. 장안으로 압송되어 처형당한다.


당시 국면도, 당의 진격도(붉은 화살) 왕세충(zheng)과 두건덕(Dou), 그리고 호뢰관(Hulao)이 보인다.

거대했던 두건덕 세력이 하루아침에 몰락하였기에, 잔당들이 여전히 있었고, 당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 잔당들은 유흑달을 앞세워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중의 일이다.


그럼 왕세충은 이제 어찌되는가? 왕세충은 두건덕마저 무릎을 꿇자 항복하려 하였다. 그런데 한 신하가 '아직 마지막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그 희망은 바로 남쪽 초왕 주찬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었다.


왕세충은 다시한번 초왕 주찬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주찬은 관군(형주) 지방에 자리 잡고 있던 군벌이었다.

이세민 역시 주찬에게 사절을 보내 정(왕세충)을 지원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사실 주찬은 두건덕이 패망하는 것을 보고 감히 도전하지 않고자 하였으나, 이세민이 보낸 사절이 제멋대로 구는 바람에 그를 살해하고, 내친김에 이세민과 승부하게 되었다.


주찬은 왕세충을 지원하기 위해 북상한다. 그러나, 이세민은 전쟁의 신이었다. 혹시나 하는 일은 없었다. 주찬은 대패했다.


주찬마저 항복을 하자, 왕세충은 희망이 없어졌다.

서역출신(소그드인으로 추정)으로서 수양제의 총애를 받던 신하였고, 동도(낙양)를 장악하여 한 시대를 풍미한 왕세충은 마침내 스스로 항복을 하여 압송되었다.

포로가 된 왕세충

이로써 강북은 평정되었다.

이제 마지막 남은 강남지역만 통일하면 되었다.

강남에는 양나라로 독립하여 존재하던 군벌, 소선이 강릉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탁발선비계인 당나라는, 강남공략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다. 비수대전의 악명처럼, 이전의 탁발선비계 유목왕조들이 강남을 점령하는데 얼마나 어려웠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반면, 한족들은 북방 유목민족 왕조가 하북을 점령할 때, 모두 강남으로 남하하여 6조로 이어지며 잔존해왔었다.


당군은 파와 촉을 먼저 점령한다. 파촉은 지리적으로도 험지일 뿐 아니라, 강남을 점령하기 위해서 장강의 상류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넓은 강남에 흩어진 양나라의 군소세력들이 소선을 도우러 모이기 전에 승부를 내어야 했다.


마침내 장강 상류에서 수군을 편성하여 강릉으로 공격해갔고, 육군 역시 강을 따라 동시에 진격해갔다.

북방유목민족 왕조에게 항상 장강은 큰 장벽이었으나, 당군은 수전에서도 승리했다. 수많은 강남의 전함들을 파괴시키고 양나라를 압박해갔다.

당군이 장강을 따라 양군을 공격해간 지도

믿었던 수군이 패망하자, 강릉은 포위되었다. 강남의 여러 세력들이 도와주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느낀 소선은, "죽어야 하는 것은 나 하나면 충분하다. 백성들을 더 이상 죽이지 말아라." 라며 항복, 장안으로 압송되었다.


장안에서 당태조 고조에 앞에 무릎꿇은 소선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조가 그 사슴을 놓친 이래, 영웅들이 저마다 사슴을 쫓았다. 나는 천명이 없었기 때문에 이지경에 이르렀다. 마치 전횡이 남면한 것이, 한나라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던 것과 같다. 이것이 죄라면 나를 팽살시켜도 좋다." *

隋失其鹿,英雄競逐。銑無天命,故至於此。亦猶田橫南面,非負漢朝。若以為罪,甘從鼎鑊。

이연은 이 말을 듣고 분노하여 소선을 참하였다.


당대의 사신들 벽화, 매우 코스모폴리탄적이다


이로서,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하였다. 대당제국의 탄생이다.


북위부터 수, 당에 이르기까지 북방유목민족이 중원을 다스렸고, 이를 호한체제의 중국이라고 한다. 비록 요동정벌(고구려 전쟁)은 실패하였지만, 호한체제의 당은 유래없는 융성한 나라를 만든다. 유목민족 출신답게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문화를 가진 당은 매우 국제적인 나라였기에 역대 중국왕조 중에 가장 화려한 문화를 만들었다.


당에는 국적에 무관하게 관직에 임명되었는데, 가령 대장군에 오른 고구려인 고선지 외에도 여러 벼슬을 역임한 일본인 아베노 나카마로, 투르크계 시선 이백, 당나라를 뒤집어놓은 사마르칸트인 안록산처럼 글로벌한 사람들이 뒤섞여 활약한 가장 코스모폴리탄적인 나라였다.


축록**이란 사슴을 쫓는다는 말이나 천하를 얻기 위한 일을 뜻한다. 이번에 사슴은 이세민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축록전 1: https://brunch.co.kr/@goldsmiths/23

축록전 2: https://brunch.co.kr/@goldsmiths/24

축록전 3: https://brunch.co.kr/@goldsmiths/25
축록전 4: https://brunch.co.kr/@goldsmiths/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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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내용]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였을 때, 전횡은 제나라를 잇기 위한 것이지 한나라에게 저항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남면하다는 왕이 되었다는 말로, 왕은 신하를 만날 때, 남쪽을 향해서 바라보고 만났다.


**축록

축록(逐鹿) -『史記』「회음후열전」*회음후 = 한신

축록(逐鹿) : 사슴을 쫓는다는 말로 제위나 정권의 다툼을 의미하는 말이다. 중원축록(中原逐鹿)의 준말이며 각축(角逐)과 같다.


『史記』「회음후열전」에 나오는 글로, 한나라 10년에 진희가 모반하자 고조는 장수가 되어 직접 치러 갔으나 한신은 병을 핑계로 빠지고, 오히려 진희에게 사람을 보내 그를 몰래 돕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가신들과 짜고 밤에 거짓 조서를 내려 각 관아의 죄인들과 관노를 풀어 주고, 이들을 도와 여 태후와 태자를 습격하려고 했다.


마침 한신의 가신 중 한 사람이 한신에게 죄를 지은 것이 발각되어 한신이 그를 잡아 죽이려고 하자, 그 가신의 동생이 여 태후에게 한신의 모반 음모를 몰래 알려 주었다. 여 태후는 한신을 은밀히 불러들여 포박하고는 장락궁(長樂宮)의 종실(鐘室)에서 목을 베도록 했다. 한신이 죽으면서 한 말은 이러했다.

 “괴통(蒯通)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게 안타깝다. 아녀자에게 속은 것이 어찌 운명이겠는가?”

한신의 삼족도 멸해졌다. 마침 진희를 토벌하러 간 고조가 돌아와 여 태후에게 한신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했느냐 물었다. 여 태후가 사실대로 말하자, 고조는 제나라에 있던 괴통을 잡아오게 하고는 한신에게 모반하도록 가르쳤느냐고 물었다. 괴통은 그렇다고 하고는 한신이 자신의 계책을 썼다면 결코 고조가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조는 화가 치밀어 괴통을 삶아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괴통은 말을 이어나갔다.

“秦나라의 기강이 느슨해지자 산동 땅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진나라와 성이 다른 사람들이 아울러 일어나 영웅호걸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진나라가 그 사슴을 잃자, 천하는 다 같이 이것을 쫓았습니다. 이리하려 키 크고 발 빠른 고조께서 먼저 이것을 얻었습니다.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보내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게 마련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고조는 괴통의 죄를 용서했다.


- 매일 읽는 중국고전 1일1독, 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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