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내꺼 하자!

갱년기 부부, 그들의 사는 이야기(04)

by 동그라미

'지구별 여행자'의 한 구루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세상에는 우연이란 없다고.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서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삶에서 만나는 중요한 사람들은 모두 영혼끼리 약속한 상태에서 만나게 되는 것임을 잊지말라고.


스쳐지나가든, 관계를 맺고 살았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지금 나의 곁에서 가장 영향을 미치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남편이다. 구루지의 말대로라면 남편과 나는 이미 태어나기 전에 약속한 운명의 짝이라는 말이 된다. 허튼 소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이 싫지 않다.


2012년 봄이었다. 삼성동 코엑스 직업 박람회장에서 받은 명함들을 정리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회사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업무차 미팅 약속을 잡고 다음날 약속장소로 나갔다. 지금까지 교육계에 종사하던 업에서 전환해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 설레기도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커피 숖에 들어간 나는 얼굴도 모르는 낯선 남자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는데 넓은 홀안에서 전화를 받고 손짓하는 그 사람을 쳐다봤다. 약속 시간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는 남자는 깔끔하게 양복을 갖춰입고 머리는 단정하게 넘겨 이마가 훤하게 드러나있었다. 살짝 매서운 듯한 눈매를 가리기 위해 실눈을 뜨고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은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의 마음은 업무와는 상관없는 '잿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네모난 얼굴, 네모난 어깨. 네모나게 앉아있는 그 남자는 간혹 웃겨주기도 하고 이것저것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했다. 난 대화가 거의 끝날 때쯤 마지못해 일어나며 다음에 만날 것을 먼저 제안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남자, 내 꺼하자.


연애를 쥐뿔도 할 줄 모르지만 당차게 살아왔던 내 인생이었다. 이대로 돌아서서 헤어진다면 앞으로 다시는 못 만날 것 같아 또 한 번의 만남을 용기내서 이야기했다. 그 사람은 어정쩡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그러자고 내뱉었다. 아마도 여성에게 먼저 에프터 신청을 받은 것이 처음이었던 모양이다. 얼떨결에 내뱉은 그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 옆지기로 남아있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 잘 하지 못하는 연애를 위해 서점으로 달려가 '연애 고수' 서적을 대여섯권을 구입했고 도서에서 하라는대로 전화와 메시지를 건넸다. 감각적을 밀땅을 해야하는데 나는 수학적 공식에 대입해 밀땅을 했다. 그러니 당겨야할 때 밀었고, 밀어야 할때 당기는 우스운 해프닝도 벌어졌다.


제일 먼저 그의 전화번호를 입력하면서 그의 전화가 걸려올때는 다른 이미지, 다른 벨소리가 울리도록 설정했다. 물론 그에게서 전화가 올리 만무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일 주일에 두 번 정기적으로 메시지를 넣었고 가끔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 아주 사무적이고 업무적인 전화였지만 나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략이 포함된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을 주기적으로 연락과 메시지를 하다가 연락을 끊었다. 분명 책에서는 그렇게 하면 반드시 상대방으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것이다. 나는 기다렸다. 분명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꼭 전화를 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러나 일 주일이 지나도 전화가 없자 조금 낙담하고 실망을 하기 시작했다.


업무를 볼 때도, 회의를 할 때도, 운전할 때도, 잠을 자려할 때도... 나의 머릿속은 온톤 그 사람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전화를 걸어볼까. 아니야. 좀 더 기다려 보자. 내일까지 전화가 오지 않으면 그때 전화해 보자... 온갖 해야할 일들이 있는데도 내 머릿속은 왠일인지 하나의 문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에게 전화가 오느냐, 안오느냐... 정말 바보가 따로 없었다. 온통 머리속으로는 그 사람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란 모든 것이 마비가 된 듯했기 때문이다. 다른 생각을 잊어버리게 하는 최고의 마취제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도무지 힘도 없고 밥맛도 없고...


전화기가 울리면 심장이 덜컹거렸다. 이내 저장해 둔 멜로디가 아니란 걸 알아차리고 나면 그냥 꺼버렸다. 받고 싶은 생각이 도무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수가... 내가 지금 뭐하는거야?

지금 사랑에 빠진거야?


그랬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처음 만난 그 장소에서 그 사람에게 반했고, 메시지와 전화 안부를 전하는 사이 점점 깊은 사랑의 감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드디어 열병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니 바보가 되어가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연락을 끊은지 일주일이 다 되어갈 때쯤, 전화 벨이 아름답게 울렸다. 천사 이미지가 떠서 화살을 쏘아댔다. 바로 '그 사람'에게서 온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심장이 다시 두서없이 나대며 뛰기 시작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지만 입꼬리는 해벌죽 벌려져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벨이 조금 더 울리도록 내버려둔 후, 천천히 폴더 폰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아무 일 없었던 듯. 조용하고 평온하게,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감정 포인트인 '무심하게'를 섞어 전화를 받았다.


-아, 안녕하세요.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네요.(사실은 이미 얼굴은 홍조가 느껴질만큼 열기가 올라왔고 입술은 살짝 떨고 있다는 걸 들킬까봐 말은 정말 짧게 했다.)

-네. 연락이 없으셔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가 궁금해서요.

(끼야호!! 바로 이거야! 진짜 책에 적힌대로 되네~!!)

-네, 별일 없어요. 요즘 제가 좀 많이 바빠서요.

-저, 언제 시간되면 차 한잔 하시죠.


우린 그렇게 만남을 시작했다. 전혀 만날 것 같지 않았던 두 사람이 우연히 들른 창업 박람회를 통해 평생을 함께 하는 반려자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태어나기 전에 서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정해진 시기가 되어 만난 듯.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오직 한 사람이 내 옆에 반려자로 함께 한다는 사실, 우리는 그 만남을 통해 함께 성장하고 함께 이끌어주는 동반자가 되었다.


너무도 다른 삶을 살다 우연처럼 만나 사람이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나를 깨워주고 나를 성장시키며 나를 이끌어준다. 이미 내가 가야할 길에 예정되어 있는 만남이 아니고서는 함께 할 수 없는 사람. 그래서 지금의 삶을 감사하며 삶에서 만나는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당신과 나,

이미 오래전 부터 만나기로 예정되었던 거죠.

억겁을 지나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해도

우리는 다시 또 다른 생애에서 만날겁니다.


아마도 지금처럼 그렇게

당신을 찾아다니며

우연처럼 만나겠죠.


그러니

당신이 어디있든

그 자리에 계세요.

제가 당신의 향기를 따라 그곳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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