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닭 한 마리, 나에게 선물했다.

갱년기 부부 , 그들의 사는 이야기(03)

by 동그라미

꼬르륵!!

배꼽시계가 울려댔다.

속이 쓰려오고 목구멍까지 매슥거리는 느낌이 올라왔다.


언젠가 새벽까지 짜인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밥 먹는 시간을 놓쳐버린 나는 늦은 오후가 돼서야 차 안에 간신히 몸을 기대어 두 다리를 뻗을 수 있었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걸까...


빼곡하게 한 달 스케줄이 적힌 다이어리를 들여다보았다.

5월 이맘때면 중간고사가 있는 달이라 검정 볼펜으로 기본 스케줄이 적힌 사이로 중요한 포인트를 빨갛게 그어놓은 수첩은 매우 지저분해져 있었다.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 내느라 쉬는 시간 없는 나의 일정표는 더욱 빡센 스케줄에 숨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다음 스케줄까지 20분 정도 여유가 있구나...

뭘 먹을까...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미 내 몸은 통닭 한 마리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잘 튀겨진 통닭 냄새가 온통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러나 근처에는 통닭집이 없었고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중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A가 아니면 B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서를 볼 필요도 없이 탕수육 대자로 주문! 최대한 빨리 내달라고 요구했고 얼마 후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탕수육이 올려지자 허겁지겁 입안으로 쑤셔 넣기 시작했다. 부먹이니 찍먹이니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일단 주어진 시간 내에 배를 채우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것이 나의 최대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먹을 때는 잘 몰랐는데 물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며 온통 허물이 벗겨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뭐 대수인가. 지금은 배가 든든한 그것으로 되었다는 만족감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계산을 하러 가면서 살짝 뒤통수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 홀 안을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는데 주인장도 역시 빙그레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계산을 하고 나와 차를 몰고 가는 사이. 잠시 15분 전의 나의 모습으로 테이프를 되감기 하고 보니 왜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웃었는지를 알 것 같았다.


멀쩡하게 생긴 젊은 아가씨가 다짜고짜 탕수육 대자를 허겁지겁 먹고 나가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그녀는 뭔가 수상쩍은 행동을 한 것이다.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게 뭐가 어때서..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자.

지금 내 몸이 원하는 걸 먹었으니 그것으로 됐다!


결국 나는 수업을 마친 새벽, 노릇노릇 구워진 통닭 한 마리를 뱃속으로 털어 넣었다. 세상에 그렇게 맛있는 시간이 또 있을까. 모든 피로를 풀어내고 지친 마음에 위로를 더해주는 나를 위한 시간. 나는 지금도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때로는 우리 인생은 삶이라는 무게가 무겁게 짓눌러 수레바퀴 안에서 도망치지 못하고 살아가는 다람쥐 같다. 그러나 잠시, 아주 잠시 수레바퀴에서 내려와 힘들고 지친 나를 향해 토닥토닥 위로해 주면 어떨까.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간 나에게 최고의 선물을 보내주는 거다.

소박한 통닭 한 마리를 시켜놓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닭다리를 나에게 선물하는 것.

다른 사람이 해 줄 수 없는 말, 꼭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들려주는 것.


오늘은, 적어도 오늘 하루만은

오직 나만을 위해 시간을 마련하고

나를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보내보는 거다.


사랑해,

수고했어.

오늘 당신이 최고야.

이제 그만 쉬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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