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대국 한 그릇이 좋아

갱년기 부부, 그들의 사는 이야기(05)

by 동그라미

어느날 두 장의 '로또'를 지갑에 넣으며 남편에게 질문을 했다.

"혹시 로또가 당첨되 갑자기 수십 억이 생긴다면 우리도 남들처럼 변할까? 집도 사고 자동차도 바꾸고, 하고싶은대로 다 하고 살까?"


그러자 남편은 사업적으로 힘든 부분을 정리하고 은퇴하고 싶다고 말하며 이야기를 덧붙였다.

"우리는 변하지 않을거야. 지금처럼 있는 그대로 살아갈 뿐이지. 그냥 조금의 여유가 더 생긴걸 감사하며 조금더 의미있는 일들을 위해 나누며 살아갈거야. 안그래?"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아주 잠시였지만 마음 속으로 품었던 '넓은 새 집, 비싼 자동차, 크루즈 여행...'같은 허영의 실루엣을 슥삭! 지워버렸다.


그리고 여느때와 같이 우리는 순대국밥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느긋하고 행복한 오후 한나절을 즐겼다. 진하고 뜨끈한 국물에 깔끔하고 개운하게 넘어가는 소주의 맛이 달달하게 느껴지는 건, 행복은 너무 거창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소박한 일상에 깃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소박한 순대국이 그토록 소중한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일탈은 배탈이 되었다.


남편이 집을 나온 지 16년 만에 막내 시누이 내외를 만났다. 그동안의 묵었던 오해와 그리움의 회포를 풀면서 급속도로 왕래가 잦아졌다. 가족이 서로 왕래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묵혀두었던 많은 말들을 쏟아낼 시간은 언제나 부족할 정도였다. 사흘이 멀다하고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식사를 함께 했다. 쉬는 날에는 가까운 근교에 나가 시간을 보냈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봇물 터뜨리듯 쏟아냈다.


그런데 두어 달이 지나면서 남편도 나도 점점 지쳐갔다. 처음 만날때는 인사치례로 횟집에서 거한 술상을 차려놓고 식사를 했고 다음에는 안면도에서 조개구이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식사 자리에는 네 명이 먹기에는 부담이 될 정도의 음식들로 메뉴가 이어졌다. 보통 식사를 하면서 술자리를 함께 한 덕분에 취기가 더해져 2차와 3차로 이어졌다. 한 번 만날 때마다 식사에 드는 비용이 10~20만원을 훌쩍 넘기면서 지출이 세 배가 넘었다. 서로 번갈아가며 대접의 의미로 식사비를 지출했지만 그렇게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음식남기는 걸 제일 싫어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시누이 내외가 남긴 음식들은 물론, 우리에게 나온 음식을 먹어치우는게 부담이었다. 먹고 난 후 급기야는 배탈로 이어지기도 했으니까. 다음날 저녁이 되서야 가까스로 소화가 진행되었고 집에서 끓인 된장찌개에 먹는 밥 한술이 그렇게 구수하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 소박함이 주는 편안함과 행복이란. 들판 한 복판에 거세게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담요를 덮고 편안하게 잠을 청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말 그대로 힐링이었다. 된장찌개 한 그릇에 속이 풀리면서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느낌이라니... 정말 행복이란 거창한 곳에 있지 않다. 가장 평범한 곳,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니 말이다.


각자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그러기에 제 각각의 방식대로 살아가며 삶의 의미을 정의한다. 우리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소박함을 버리기에는 우린 나이가 들었고 그 소박함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순대국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을 사랑하고, 길을 걷다 들린 시골 슈퍼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잔을 사랑한다. 그 소박함 속에는 인정이 녹아있고, 삶의 행복이 스며있고, 어디서도 느끼지 못하는 힐링이 묻어 나온다.


우리는 시누이 내외를 만난 다음날은 꼭 순대국을 먹으러 나간다. 보글보글 끓어 나오는 순대국에서 느껴지는 구수한 냄새가 마음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진한 행복으로 스며든다. 소소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오는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다.


시누이에게 다음부터는 순대국밥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 물론, 거절할 수 있겠지. 그러나 더이상 기름진 음식으로 배탈나고 싶지 않다. ㅎ

매거진의 이전글이 남자 내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