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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은 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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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Oct 14. 2021

가지치기

한 번도 가지치기를 하지 않았던

정원수들의 머리를 싹둑싹둑 잘랐어.


울타리를 훌쩍 넘어 

길게 드리운 장미 넝쿨도 자르고

해마다 철 모르고 피어나던

장미수들도 잘라줬어.


집을 지을 때

처음으로 심었던 개나리들이

이제는 제법 큰 나무가 되어 어른 키를 훌쩍 넘겼는데

삐죽 튀어나온 만큼,

울타리 높이만큼

머리를 잘라줬지.


무성하게 가지가 뻗은 소나무 역시

새들이 노닐 수 있도록

앙상한 뼈대만 남기고

머리를 훌훌 털어줬어.

너무 밀었나 싶을 만큼 심하게...


그래도 전체적으로 조화를 신경 쓰면서

동그란 모양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아직 서툰 가위질에

가끔은 땜빵이 생긴 듯 일그러진 모습이야.


그래도 잘했다 싶어.


한 번도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까닭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삐죽 튀어나온 녀석들이

제 멋대로 자라기 바빴는데...


여름 한나절에도

밑둥지는 앙상한 채 위로 뻗은 가지에만 잎사귀가 달린 모습이라니..

정말 눈뜨고는 못 보겠더라고.


아마 자기들도

뿌리의 존재를 잊은 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만 자라려고 안간힘을 쓴 것을 알기나 한 걸까...

머리를 툭툭 쳐내는 내내

가위를 든 손이 신이 나 춤을 추는 거야.


그래.

이 놈도 자르고

저 놈도 자르자.


아예, 하늘로 고개를 들지 못하게,

뻗어가지 못하도록

싹둑 싹둑!


정말 시원했어.


다음 해에는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겠지?

더 많은 잎사귀와 향긋한 장미꽃, 개나리의 향기가 진동하겠지?

위로 한 없이 자라나 한 송이 꽃을 외로이 피우기보다

뿌리의 깊이만큼 풍요로운 결실을 맺기를 바라.


인생도 마찬가지 같아.

너무 앞만 바라보고 달린다면

가끔은 브레이크를 걸어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해.


아마 너무 달리기만 한다면

운명은 갑작스러운 브레이크를 걸어 가지치기를 할지 몰라.


뿌리의 풍성함만큼

더 성장하길 바라는 자연의 섭리처럼,

우리 인생도 더 많은 성장을 이루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며 나아가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힘들고 외롭다고 울지 말자.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잠시 잠깐 가지치기를 할 뿐이니까.


내 삶의 고결한 양분은

내일의 나를 위해 더 많은 걸 내놓으려 준비 중이니까.


힘 내!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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