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그라미 Oct 17. 2019

공수레 공수거 인생 참... 묘하다.

내 남자 이야기(16)

( 첫 직원 용이와 연주의 탈출, 그리고 그들은...? 인생이란 참 쥐었다고 생각하면 펴야 하는 공수래공수거입니다. 그러니 내 거라고 우기며 살기보다 편하게 왔다 가는 인연이라고 놓아주어야 하겠습니다. 지난번에 이은 두 번째 이야기.)



식자재 사업을 시작하고 취급하는 제품 종류도 다양해지면서 거래처도 확실히 많아졌다. 거기에 중간 도매상이 되어 나에게 제품을 받아가는 나까마(중간상인)도 생겼다. 성실하게 거래를 하면서 물건 양도 많아져 독산동 공장에서 직접 배송해 주기까지 했다. 새벽이 한결 수월해졌다.


하루는 용이와 연주가 집으로 초대했다. 중국집에서 배달된 탕수육과 자장면 그리고 소주.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들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날 일에 대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뭇했다. 그리고 차를 마시며 연주가 말을 꺼냈다.


"오빠. 아니 사장님. 이제 저도 일하고 싶어요. 사장님 사무실에서 전화받고 주문 배송도 돕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해서요. 월급은 안 주셔도 돼요. 점심만 주시면 먹을게요. 용이 오빠한테 월급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하거든요..."

"형님! 한 번만 더 도와주세요! 이 은혜 꼭 갚을게요!"


나는 역시 두 사람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한층 밝아진 얼굴은 살이 올라 이제 그들의 앳된 나이처럼 보였다. 나는 조건을 한 가지 제안했다. 용이는 오랫동안 술을 많이 마신 탓에 주독이 퍼져있었다. 평소에도 코가 빨갛게 변해 있었고 알코올 중독 중세가 있었다. 연주는 담배를 하루에 두 갑 이상 펴대는 꼴초였다.


"그래 알았다. 그럼, 이제 각자의 과거를 버리자! 용이는 술 끊고 병원 가서 치료받고 연주는 담배 끊자!"


나는  두 사람이 살겠다는 의지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살얼음판 위를 걸었던 그들의 인생이 이제 중대한 변화의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되니 흥분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매출도 꾸준히 증가했다. 영업을 배웠던 용이 친구와 오토바이 배달 직원도 한 명이 더 늘었다. 경리 일은 연주가 잘 배워서 살림을 도맡게 되면서 나는 열심히 영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물건을 매입하는 일부터 결제, 배송, 수금까지... 모두 용이와 연주에게 맡겼다. 그 둘에게는 섭섭지 않도록 적절한 급여도 책정해 주었다. 그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만큼 나는 그들을 응원해 주고 싶었고 그 둘을 믿었다.


수개월 후, 납품 공장에 다니러 갔다가 담당 직원으로부터 잠시 보자는 호출을 받았다.


"부장님~! 저를 보자고 하셨다고요.."

"김 사장... 열심히 뛰어다니며 항상 약속을 지켰는데 벌써 두 달째 미수야... 기다리다가 자네가 왔다길래 한 번 보자고 한 거야. 미수가 줄지 않는데 안 되겠어! 이러면 물건 나가기 어렵지. 김 사장! 요즘 힘들어? "


(흐엇~! 이건 무슨 소리지? 뭔 개뼉다구 같은 소리냐구!! 미수라니!!)


나는 그날 잡혀있던 미팅을 모두 취소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지하실 계단을 내려가려는 순간 용이와 연주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오빠... 이제 그만 해야 하는 거 아냐? 사장님한테 미안하지 않아?"

"야~***아! 너만 입조심하면 되니까 입 닥쳐!! 잔소리하지 말고 돈 좀 줘봐!"

"없어... 오늘 사장님 공장 가셨는데..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씨발~! 너나 잘해! 걸레 같은 게 어디서 이래라 저래라야!"


나는 그 자리에서 얼음처럼 서 있었다. 앞이 캄캄해졌다. 속에서 솟구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그 자리에 있으면 뭔 사단이 날 것 같아 일단 밖으로 나왔다. 사람을 너무 믿었나? 그동안 용이와 연주를 믿었기 때문에 낮 시간에는 사무실에 거의 들어오지 못하고 영업만 하러 뛰어다녔는데... 고작 돌아온 것이 이런 배신이었나! 몸서리 쳐졌다.



그날 용이는 끊겠다던 술을 마시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가 났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리고 직원들을 사무실로 불러내 그간의 자초지종을 들었다.


"사장님! 걔는 절대 안 변해요! 지금까지 수금한 돈 제대로 입금한 적 없어요. 하도 개지랄을 떨어서 저희도 말씀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저, 그만둘게요. 용이 걔랑은 일 못하겠어요."


그렇게 그 자리에서 두 명이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연주를 따로 불렀다.


"사장님. 저는 사실 용이 오빠 좋아하지 않았어요. 용이 오빠 혼자 저를 좋아한 거지... 말 안 들으면 협박하고 매일 술 마시고, 저한테 손찌검도 했어요. 아... 정말 죄송해요. 속이면 안 되는데... 정말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또 옛날처럼 돌아갈까 봐 두렵고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제가 있는 대로 말씀드리면 용이 오빠가 자기 아빠한테 얘기해서 저를 가만히 안 둔다고 했어요...

 저는 사장님과 한 약속 지키려고 담배도 끊고 검정고시 보라고 하셔서 월급 주신 걸로 책도 샀어요...."

"......."


들끓는 속을 달랠 길이 없었다. 미칠지도 모르겠다. 미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 놔~!! 비까지 내려 축축하고 어두운 사무실에 앉아 깡소주를 마셨다. 종이컵에 따른 소주를 원샷. 그리고 다시 종이컵에 소주를 따랐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그랬다.


그러나 어떤 결론을 내야 했고 잘못된 것을 원점으로 다시 돌려놔야 했다. 사무실에 쌓인 거래처 명부를 검토하며 우선순위를 가렸다. 그리고 통장과 미수 장부, 주문장과 공장에서 물품을 들여온 매입장부를 보면서 용이가 뒤로 빼돌린 자금을 알아냈다. 그리고 남아있는 자금으로 어떻게든 공장 결제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서둘러 거래처를 일일이 찾아가 장부를 비교하고 잘못된 곳을 수정하며 앞으로 일을 부탁해야 했다. 다 쌓아놓은 공든 탑이 와르르 무너지려는 순간을 다시 붙잡아야 했다.



그리고 연주를 다시 불렀다.


"너, 안양 집으로 돌아가라. 더 이상 그런 놈들과 만나지 말고 이제 평범하게 공부하며 네 나이로 살아라"

"저 집에 못 들어가요. 제가 집에 들어가면 새아빠가 엄마랑 이혼한다고 엄포를 놓으셨거든요."

"알았다. 일단 엄마를 내가 만나 볼게. 연락처 줘봐!"


나는 간신히 연주 엄마를 안양에서 만났다. 그동안의 사정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연주 엄마는 경계심으로 굳어있던 표정을 풀며 눈물을 흘렸다.


"불쌍한 것! 그렇게 찾으려 했는데... 하기야... 찾는다 해도 당시에는 어떻게 할 방법도 없었어요.. 언젠가는 꼭 연락이 올 거라 생각하고 기다렸어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연주가 집에는 안 가려 할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따님 있을만한 복지관을 알아봤어요. 안양에 엘* 사회복지관인데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에요. 기숙사도 있고 상담사와 검정고시 공부도 할 수 있도록 얘기가 됐어요. 같은 안양시내니까 가끔 만나실 수도 있고요.

 지금 사귀던 녀석과도 떨어뜨려 놓으려면 집에 없는 것도 좋겠네요. 연주 보내고 나면 저도 전혀 연락하지 않을 테니까 아무도 찾지 못할 겁니다. 그동안 사랑 못 주신 것 가끔 만나 잘해 주시고 새아버지도 검정고시 붙고 대학교 들어가면 반대하지 않으실 겁니다. 집에 계시는 시간에 꼭 전화받으시고 저쪽 정리되는 대로 제가 직접 데리고 올게요..."


그리고 다음날 나는 용이 아버지를 찾아갔다. 워낙 잘 나가는 분이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별도의 설명도 필요 없이 퇴원에 맞춰 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다. 역시 있는 집을 달랐다. 용이가 퇴원하던 날, 고급차 한대로 용이를 태워가며 내게 한마디 건넸다.


"우리 애 다시 만날 생각하지 마시고 더 이상 보지 맙시다!"


그저 눈으로 인사하듯 외면하는 용이 아버지. 그리고 내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차에 탄 용이. 그것이 용이와의 끝이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연주를 데리고 안양으로 향했다. 복지관 절차 서류를 손에 쥐어주고 말없이 전철을 타고 함께 연주 엄마를 만나러 갔다. 연주는 내가 주문한 대로 단정하게 머리도 커트하고 옷도 얌전하게 입었다.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손톱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연주 나이로 보인다.


안양 전철역 앞에서 모녀는 수년만에 만났다. 처음에는 서로 서먹서먹한 듯 거리를 두고 말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연주와 엄마는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연주에게로 다가간 엄마는 연주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으며 조용히 가슴으로 연주를 안아 주었다. 나도 누시울이 붉거져 한 손으로 훔치듯 눈물을 닦아냈다.


"어머니. 저 이제 갑니다. 연주, 너 엄마한테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서 꼭 검정고시 합격해야 한다. 지난 일은 생각할 것도 없고, 누구도 무서워하거나 겁낼 필요 없어. 아무도 모르니까... 알았지!

 나도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잊어버리도록 해! 다시는 만날 일 없을 테니까... 용이도 집에 잘 들어갔어! 내가 정리했어... 이제 여기서 헤어지자..."


난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건넜다. 그리고 눈으로 안녕 인사를 건넸다. 연주와 엄마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연주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나는 안다. 그리고 이 만남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는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제발... 잘 되길... 좋은 일만 가득하길... 지난 몇 년간의 일은 내 꿈속에서 조차 생각나지 마라... 다 지워져라.. 나 조차도...'

매거진의 이전글 첫 사업 그리고 첫 직원 용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