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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03. 2019

나의 할아버지

내 남자 이야기 (24)

(남편 가족사는 그 옛날 조선시대에나 들을 법한 이야기입니다. 서자로 태어나 서자의 삶을 살아간 할아버지. 그 때문에 가족들의 삶은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없는 시간을 견디게 되었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한 겨울 동사한 채 발견되셨다. 한마디로 객사하신 것이다.


"옛날 어른들 말씀에 객사할 팔자는 죽을 때 발 하나를 방문 밖으로 빼놓고라도 죽는다더라.."

"니 할아비는 원래가 객사할 팔자였어..."

"젊어서도 허구헌 날 밖으로만 돌더니...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니 애미 억장만 무너뜨리고 가는구먼."


당신 84세였던 나의 할아버지. 당신의 삶은 애초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이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평생을 배운 것 없이 오로지 술과 여자로 낙을 삼았던 할아버지의 삶을 가끔 원망 섞인 어머니의 하소연에 나도 한숨을 섞어 보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서자로 태어나셨다. 잘 나가는 김 씨 문중에 손이 없었던 터라 본부인의 몸종을 취해 낳은 아들이 바로 할아버지다. 그렇게 종손이 되었지만 이후에 본부인이 아들과 딸을 낳아 어린 동생 둘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러나 핏줄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일까. 몸 종의 핏줄과 파평 윤 씨 본부인의 핏줄은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할아버지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작은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의 삶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었다.


할아버지는 무학이었다. 놀고먹기를 좋아하고 꽹과리를 잘 쳐 언제나 흥이 넘쳤다. 거기에 술, 담배 그리고 여자를 좋아해 언제나 자신의 흥에 넘쳐 살아갔다. 그것도 아주 일관되게 평생을 살아가셨다.


반면 작은할아버지는 친모의 건강을 물려받아 아주 건강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담배나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고 작고 왜소한 체구에 조용하게 살아가셨다. 고모할머니는 총명하신 분으로 박정희 정권 때 서울시 경찰국장과 청와대 경호실을 겸한 남편을 두었고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아가셨다.


배다른 동생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할아버지의 삶이란 훗날이라는 약속은 없었다. 그저 현재가 중요했고 순간순간의 여흥이 중요했다. 할아버지는 종손이라는 이유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술과 여자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써버렸다.


할아버지의 생모가 누군지 몰라 제사를 지내지도 않았다. 그리고 술을 드시는 날이면 어린 우리들을 앉혀 놓고 "난 서자다. 니들도 다 서자 핏줄인겨.." 내가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유일한 말이었다.


농악대를 쫒아다니며 배운 꽹과리 솜씨로 상쇠 노릇까지 하셨던 까닭에 그를 흠모하는 많은 여성 팬들을 거느리고 계셨고 당신의 젊음을 술과 여자로 보내셨다.


당신의 아들에게는 서자의 자식이 무슨 공부냐며 냇가에 가서 물고기나 잡아다 술안주를 끓이라고 주문하셨다고 한다. 그런 일을 하루라도 빼먹으면 부지깽이로 흠씬 매질을 해대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정이 남아 있지 않은 듯 늘 푸념을 늘어놓으시곤 했다.



할아버지는 연세가 드실수록 만취상태에서 길에 쓰러져 주무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모든 뒤처리는 아버지의 몫이었지만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고스란히 나의 몫으로 넘어왔다. 떡실신 지경이 된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집까지 올라오는 언덕길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그리고 청자 담배에 찌든 할아버지 냄새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술에 쩔고 독한 담배에 쩔은 할아버지와 나는 십여 년 이상을 한 방에서 동거 동락하며 살았다. 아휴~ 지금도 그 쩐 내가 나는 듯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 6.25 전쟁에 관한 글짓기 대회가 있어서 소재를 얻고자 할아버지에게 전쟁 얘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할아버지. 6.25 전쟁 이야기 좀 해주세요~"

"무신 얘기... 글씨, 난 별로 경험이 없는디... 공산당이 내려오면 소 잡고 돼지 잡아서 밥 해서 맥이고 인민군 만세~ 하고 외치고, 국군이 오면 소 잡고 돼지 잡아서 밥 맥이고 국군 만세~ 외쳤제~ 그러다 눈치가 보이면 동네 주민들한테도 밥 맥이고 땅도 좀 떼주고... 그러니께 다들 암말 안 하던디... 그래서 난 정쟁을 잘 몰러~"


이것이 내가 할아버지와 나누었던 가장 긴 대화였다. 무뚝뚝하셨던 할아버지는 하루종일 입술을 일자형태로 다물고 계셨다. 삼시 세 끼를 모두 드시며 밥상에는 닭죽이나 민물고기 찌개와 막소주 서너 잔이 항상 올려져 있었다. 그렇게 정 없고 무뚝뚝한 분이 어떻게 여인들을 후리고 다니셨는지... 참 의문이다.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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