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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04. 2019

나의 할아버지

내 남자 이야기(25)

https://brunch.co.kr/@goldstar10041/43

(남편의 평범치 않은 삶의 시작이 어쩌면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이었을까요. 할아버지의 삶을 기억하는 남편의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하는 또 다른 삶의 단편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김 씨 집안의 서자로 태어났지만 종손으로서 이름 있는 양반 가문의 본부인으로부터 3남 3녀를 거두셨다. 그러나 서자로 태어났으니 자녀들도 여전히 서자로 살아야 한다는 피해의식. 그것은 할아버지나 부모님으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느낄 수 있었다.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국졸, 큰 딸은 중졸, 작은 아들은 중졸 이하 모든 자녀들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지 않고 시골 농사꾼이나 잡일을 하는 일에 만족하도록 교육을 시키셨다. 난 이럴 때 가끔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가 했던 대사가 생각난다.


" 참.. 아름답다~ 아름다워~"


그 많던 재산으로 자식들 공부를 시켰더라면 부모님이나 고모, 작은 아버지들의 인생이 지금과는 전혀 딴 판으로 바뀌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절로 든다. 덕분에 무학 인생으로 살아간 아버지는 가슴속에 할아버지에 대한 한이 가득하셨던 것 같다.


조강지처로 면서 할아버지의 흥청대는 음주가무에 속앓이가 오죽하셨을까.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첫 부인이었던 할머니는 병으로 고생하시다 일찍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생각보다 일찍 둘째 마눌을 들이셨다. 딸 하나를 데리고 살아가던 젊은 여인이었다. 당시 나는 할아버지 집에서 살던 때라 그 딸과 함께 뒷산을 누비며 함께 놀았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러나 둘째 마눌은 몇 개월 살다가 집에 있는 패물과 돈을 몽땅 털어 도망 가버렸다. 처음부터 돈 많은 노인네의 재산을 목적으로 들어온 여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사랑이었을까? 할아버지는 읍내에 나가 술을 진탕 드시고는 몇 날 며칠을 쓰디쓴 담배만 태우시며 대청마루에 앉아 한숨만 쉬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 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서울에 직장을 잡은 까닭에 셋방을 얻어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 몇 개월 뒤, 할아버지는 새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술과 담배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셨던 할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가 넘쳐흐르고 계셨다.


"아야~ 앞으로 함께 살게 될 니 시애미 될 여자다~! 글고 니들은 할머니라 불러라~!"


할아버지는 아무와도 상의 없이 다짜고짜 통보식으로 새 할머니를 들이셨다. 어린 나이에도 엄마나 아빠가 적잖이 당황하시며 온통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셨던 모습을 기억한다. 도대체 이 여자분은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할아버지의 여자 욕심은 끝이 없어 보였다.


일가친척 하나 없이 고아로 살아왔다는 새 할머니 황금순 여사. 친언니가 한 명 있다는 것 외에는 가족사를 알 길이 없었다. 꽃무늬가 은은하게 수놓아진 하얀 한복을 즐겨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쓸어 올려 비녀를 꽂은 황금순 여사. 하얀 버선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툇마루를 나설 때는 참 곱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고운 모습과는 달리 성질이 고약해서 가끔 화를 낼 때는 어찌나 무서운지 눈빛에서 소름이 돋고 눈물이 날 정도였다. 살짝 삐뚤어진 입에서 나오는 독설과 흘겨뜬 눈은 돌아가신 후에도 항상 사진 속에서 노려보고 있었다. 어쩌면 그 독한 표정과 말로 인해 할아버지의 바람기를 붙들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황금순 여사는 말년에 암에 걸리셔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배가 부풀어 올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었다. 진통제만 찾는 그녀를 보면서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생 전에 언니를 보고 싶어 했지만 결국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는데 망자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자는 마음으로 할아버지 자녀들이 전국을 수소문해서 겨우 연락이 닿았다.


황여사의 언니는 장례식 다음날 찾아와 동생의 영정 사진을 붙들고 한없이 목놓아 울다가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녀 또한 몇 달 뒤에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황여사의 죽음 앞에 한없이 무너지셨다. 대성통곡을 하면 목놓아 울음을 터뜨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할아버지는 울 줄도 모르는 분이라 생각했다.


아버지는 국졸이라는 학력 때문에 회사에서 진급이 계속 누락되고 낙하산 인사로 인해 계속 보직이 밀려나면서 박봉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그때마다 공부하지 못하도록 막은 할아버지를 원망하며 통곡하는 아들을 보면서도 할아버지는 두꺼비처럼 눈만 끔뻑거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돌아 앉눈길 한 번 주지 않으셨던 분이다. 그렇게 고통의 소리를 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이 방을 나가는 뒤에서 청자 담배만을 뻐끔뻐끔 빨아대셨던 분....


'정말 독하다. 독한 양반... 징그럽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는데 황여사의 죽음 앞에 눈물을 보이시다니 당신도 울 줄 아는 분이셨군요.



그렇게 황여사를 가슴에 묻고 조용히 살아가시나 싶었는 할아버지는 몇 개월이 채 안되어 경로당에서 새로운 만남을 찾고 계셨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놈의 바람기는 여전했다. 덕분에 엄마와의 마찰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국면으로 들어섰고 매일 술에 취해 시위를 하며 며느리에게 시비를 걸어오셨다.


"얘~둘째야~ 네 엄마 좀 오라 그래라, 할아비가 할 말이 있다고 오라고 그래."
"어미야~ 내가 느그덜한테 손 안 벌리고 경로당 할멈하고 나가서 둘이 살란다. 그 여자가 300만 원이 있다니까..."

"아이고 ~ 아버님~ 도대체 왜 이러세요... 정말 제가 복장 터져 죽는 보고 싶으세요!!"


할아버지는 대놓고 소문을 내고 다니시며 엄마의 속을 뒤집어 놓으셨다. 때문에 엄마의 울음소리는 늘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나의 할아버지의 기막힌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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