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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05. 2019

나의 할아버지

내 남자 이야기 (26)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는 24화부터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평범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만이 걸어가는 이야기가 있고 그 모든 이야기 속에는 고유한 삶의 방식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전 어르신들의 삶의 단편을 통해 어쩌면 조금은 인생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매일을 그렇게 홍역을 치르듯 할아버지의 이성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은 폐결핵 진단과 초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후부터 조금씩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자 사자 붙어 다녔던 노인정 할머니는 병든 노인네랑은 살 수 없다며 그날로 끝을 맺었다.


'못된 할망구 같으니... 말인지 막걸린 지... 암만해도 늙은 꽃뱀 같다...'


이후 할아버지 병세는 점점 심해지면서 술 취해 길에서 잠을 자는 일이 허다했고 그럴 때마다 경찰서에서 연락을 취해 항상 할아버지를 집으로 엎어 와야 했다. 그 모든 일은 나의 몫이었다. 참 지겨웠다. 힘들었고 창피했다. 때로는 넘어져 다치셨는지 머리가 깨지고 피가 났다. 얼굴은 온통 긁혀 불그스름하게 딱쟁이가 졌다. 할아버지와 한 방을 쓰고 있는 나는 술에 쪄든 냄새도 힘들었지만 청자 담배의 인이 박힌 독한 냄새가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셋방살이가 다 그렇듯이 밖에 나가야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기 귀찮아하신 할아버지는 머리맡에 요강을 두고 용변을 해결하셨다. 할아버지와 한 방을 쓰지 않는 이상은 그 역겨움이란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기억이 점점 나빠져 가면서도 벽에 똥칠하는 최악의 경우는 아니셨다. 다들 엄마가 수십 년 고생한 보상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달에 한 번 폐결핵 검사를 하고 보건소에 들려 약을 받는 날이었다. 은평구 보건소에 할아버지 손을 잡고 길을 나선 엄마는 녹번동 도원 극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토큰을 사기 위해 잠시 할아버지 손을 놓고 줄을 섰다. 그리고 계산을 마친 아주 짧은 순간 할아버지를 잃어버리셨다. 할아버지는 버스 정류장에 잠시 정차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타신 것이다. 멀쩡하게 생긴 노인네였기에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터라 어떤 누구도 인상착의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다. 울며 불며 할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엄마는 결국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바로 실종신고를 했다.


그 시간부터 15일 정도를 온 가족들과 친지들이 동원돼 신문과 방송에 광고를 하며 할아버지를 찾아 헤맸다. 모두가 자신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길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통에 심신은 말할 수 없이 피곤했다. 엄마는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는 통에 거의 실신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결국 고양시 원당에 있는 연세병원 시체 보관소에서 돌아가신 지 보름이 된 할아버지의 시신을 찾을 수 있었다. 경찰이 발견할 당시의 현장 사진 속에는 화전역 근처 수풀에서 추위로 몸을 웅크린 채 누워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참 우리 할아버지 끝까지 우리에게 악연이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 시신은 진작에 찾아 놓고서도 사망 보름이 지나서야 유가족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실종신고 명단이 버젓이 있음에도 확인을 태만이 한 것인지 경찰과 병원 관계자들은 모르쇠로 변명만 해대고 있었다. 덕분에 시체실 사용료를 아주 비싸게 부담해야 했다. 그들은 사망자의 시체를 담보로 유가족들에게 돈을 뜯어내 서로 나눠먹었는데 경찰은 이것을 관례고 설명했다.


그렇게 어거지로 합의를 한 후 할아버지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파란만장했던 할아버지의 삶은 결국 객사에 이어 엄동설한에 동사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셨다. 남겨진 가족들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에 젖어 있었지만 누구 하나 그 비통함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당신의 뿌리이자 시작이었던 경기도 안성 선산으로 돌아갔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했던 시간의 긴 사연들도 함께 산소에 고이고이 묻어 드렸다.

서자로 태어났지만 종손으로 자란 시절, 그리고 본부인 소생의 동생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자신의 삶은 이미 낙오자라 생각했을지도 모르는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그 패배의식이 자신을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고 유흥의 세상으로 눈을 뜨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많던 문중 재산도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컸을까... 할아버지는 자신을 지켜주는 방패막이 하나도 없는 허허벌판에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인생...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인데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 하는 문제는 참 어려운 질문 같다. 어찌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놀고 싶은 대로 놀고 취하고 싶은 대로 취하며 살아간 인생을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것만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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