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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09. 2019

무당 그리고 관재수, 운명의 끈자락

내 남자 이야기(28)

(가끔은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문득 뒤돌아 보게 되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길을 걸어온 발자취를 발견하기도 하니까요. 그것이 내가 개척해 온 길임을 확인하면서도 그 길에 앞서 누군가 툭~! 던졌던 예고대로 걸어온 것이라면 운명이란 녀석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는 한 달에 두 번은 꼭 시형 엄마라 부르는 무당을 찾아갔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의 가방을 들어주며 쫓아다녔다. 때로는 따라다니기 귀찮았을 법도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좋았다. 늘 화가 난 상태였던 엄마가 만면에 웃음을 띠며 가장 너그러워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고 남은 떡이며 과자와 과일들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어린 내 눈에는 그야말로 잔칫상이었다. 엄마는 그날만큼은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무당 할머니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렇게 "없다! 없다!" 하면서 아빠에게 돈 못 벌어 온다고 바가지를 긁어 부부싸움이 끊이지 않던 엄마는 그 무당 집만 가면 지갑이 풍족해졌다. 손을 합장하고 절을 할 때마다 마치 화수분이라도 된 것처럼 엄마의 지갑에서는 술술 돈이 풀려 나왔다.


나에게 엄마는 언제나 돈이 없는 사람이었다. 학교 육성회비를 내지 않아 반 아이들 보는 앞에서 담임선생님에게 세상 있는 쪽팔림 없는 쪽팔림 다 당해야 했던 나로서는 엄마의 샘솟는 지갑이 신기하기만 했다. 엄마는 항상 아프고 힘들어서 그 앞에서는 항상 때리면 맞고 소리 지르면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연약하고 신경질적인 분이 무당 집에서는 몇 시간씩 절을 하고도 지치는 기색이 없었다.



하루는 아침부터 부부싸움을 심하게 하셨다. 아빠가 어떤 여성분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속옷이 화근이었다. 굉장히 화가 난 엄마는 거의 이성을 잃을 정도로 바가지를 긁어댔다.


"이런 미친년! 아침부터 재수 없게 바가지를 긁고 지랄이야!"

"그래! 웬 개 같은 년을 사귀고 나니 니 눈에 뵈는 게 없냐?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인데! 어디서 바람이나 피우고 빤스를 받아와!! 너 죽고 나 죽자!!"


결국 대소동 끝에 아빠는 쫓겨나듯 출근하고 나는 엄마 손에 이끌려 미아리 무당 집으로 향했다. 


쿵 꽝~ 쿵 꽝~ 징소리, 장구소리, 주문 소리... 미아리를 지나 하월곡동 산자락에 자리한 달동네에 태극기 대신 긴 장대에 흰색과 빨간색 깃발이 꽂혀있는 집. 그곳에서 엄마는 액운을 쫒는다며 굿판을 벌였다. 소금을 뿌리고 팥도 여기저기 뿌렸다. 그중 한 사람은 갑옷을 차려입고 지칠 줄 모르고 폴짝폴짝 땅을 발판 삼아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시형 할미는 모든 것을 총괄 지휘하듯 지시를 하고 있었다.

내가 더 어렸을 때 보았던 시형 할미는 고깔모자를 쓰고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 무릎이 아픈가 보다... 그렇게 시형 할미가 내 앞으로 가져다준 제사 음식을 양손에 가득 받아 입가에 묻혀가며 야무지게 먹어댔다.


"애구~ 이놈아~ 대감님 음식이 그리 맛나더냐... 천천히 먹어라. 아직 많이 있으니까. 입가에 묻은 떡은 저녁에 먹을 거냐? 이놈아~! 하하하"


널찍한 오색 사탕, 각종 전들, 그리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백설기... 굿판은 늦은 오후가 돼서야 끝이 났다. 시형 할미는 엄마에게 부적을 써 주면서 남편 외투 안주머니에 깊이 넣어 바느질로 꿰매 모르게 하라는 조언까지 남겼다.  


"아무리 별일 아니라고 우겨도 남정네들은 초장에 뿌리를 뽑아야지 안 그러면 큰일 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시키는 대로 잘해!"


아빠가 받아온 속옷 선물 하나 때문에 이렇게 굿판까지 벌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그래도 나는 실컷 먹을 수 있는 기회라 마냥 즐겁기만 했다. 그리고 시형 할미는 돌아가려는 나를 붙잡고 신점을 봐주었다.


"둘째~오늘 엄마 따라온 김에 할미가 특별히 점 봐줄 테니 여기 앉거라!"


상 위에 엽전이 떨어지고 흰 쌀을 뿌렸다. 방울을 흔들며 연신 중얼거리며 내 생년월일을 이야기했다. 부르르 고개를 떨었다.


"잘 된다. 건강도 좋고. 애미야~ 이놈은 특별할 것도 없다. 큰 놈 걱정이나 하고 살아라. 대감님도 이놈은 탄탄대로라고 하신다. 음..... (중얼중얼...) 관재수가 있으니 그것만 조심해라. 젊어서 호기 부지리 말고 관재수만 피해라.. 부적 꼭 가지고 다니고.."


'관재수가 뭐지?'

철없던 나에게는 관재수가 뭔지 궁금했다. 엄마에게 물어봐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난 그저 양복 입은 사람들이 관청에 다니는 것으로 혼자 어렴풋 이해하며 정말 좋은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까맣게 잊어버렸다. 1998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1999년 밀레니엄 시대가 열린다며 세계가 시끄럽던 시절, 외환위기 여파로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났고 결국 나는 경제사범이 되어 유치장을 거쳐 구치소에서 재판까지 받아야 했다. 그리고 3주 만에 출소를 했다. 그렇게 구치소에 갇혀있는 동안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 한마디.... 관재수...

'공무원이 되는 게 아니라 철창에 갇히는 걸 말했던 거군...'


운명 참... 묘하다.... 엄마는 평생을 무당의 신점에 홀려 쫒아 다니셨다. 그러나 나는 운명의 끈을 내 손에 두고 살아왔다. 내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온 인생길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기위해 살아왔지만 때때로 마주하는 운명은 거센 바람처럼 휘몰아 지나쳐가기도 했다. 이후로 만나게 된 무당과의 인연, 지리산 도반으로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나의 삶은 그저 거대한 운명의 끈자락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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