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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Oct 02. 2024

삶을 관통해 마음에 틀어박히는 사랑이 있다면

오마이뉴스 게재, <가을의 마티네>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293] <가을의 마티네>


▲ 가을의 마티네 포스터 ⓒ 찬란


가끔은 생각한다.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서로 다른 길로 빗겨나도 어느 한 순간 겹치기만 한다면 서로의 삶을 관통하는, 그런 사랑이 말이다.


그런 사랑이라면, 그런 사랑이라면 기꺼이 모든 걸 내던지고 찾아가 "잘 지냈느냐"고, "이제껏 어떻게 살았느냐"고, "이제부턴 함께 하자"고 고백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는 그런 사랑이 있는 것도 같다. 춘향은 몽룡을 사랑하여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며 갖은 고초를 다 겪었다. 줄리엣은 로미오를 사랑하여 제가 죽은 것처럼 꾸미고는 일이 틀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색, 계>의 왕자즈(탕웨이 분)는 죽여야 할 이모청(양조위 분)을 사랑하여 제가 아낀 모두를 비극으로 몰아넣는다. <왕의 남자>에서 장생(감우성 분)은 공길(이준기 분)을 사랑하여 누명을 뒤집어쓰고 급기야 양눈을 잃게 된다.


문학과 영화에서조차 사랑은 매혹적이나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관통해 마음에 박히는 사랑, 이런 멜로

   

▲ 가을의 마티네 영화 스틸컷. ⓒ 찬란


여기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남녀가 있다. 이야기는 2013년 가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을 적 천재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린 마키노(후쿠야마 마사하루 분)는 공연이 끝난 뒤 요코(이시다 유리코 분)를 처음 만난다.


자꾸만 눈길이 간다. 말을 걸고 싶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녀가 궁금하다.


하지만 요코는 너무 멀리에 있다. 프랑스에서 기자로 일하고 약혼자까지 있단다. 마흔이 넘은 두 남녀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된다.


영화는 몇 달 뒤, 또 다시 몇 달 뒤, 그렇게 시간을 건너뛰며 우연과 필연을 섞어 둘의 삶을 풀어나간다. 가끔은 맞았다가 대개는 어긋나는 두 사람의 삶 가운데 마키노와 요코가 파리의 어느 거리에서 마주앉는다.


테러를 겪고 죽음의 위험 가운데 놓였던 요코에게 마키노는 결연하게 이야기한다. "만일 당신이 어딘가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나도 죽겠다"고. 함께 있을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이야기한다고. 혹시라도 죽으려고 마음먹는 순간이 있다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거란 걸 기억하라고.


고작 두 번 만난 요코에게 마키노는 "요코씨의 존재가 제 인생을 관통해버렸다"고 "아니, 아예 마음 깊이 박혀버렸다"고 고백한다. "옳은 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만나버렸으니까 방법이 없다"며 "요코씨는 어떤 마음이냐"고 묻는다.


원제는 <마티네의 끝에서>, 그 가을엔 무슨 일이

   

▲ 가을의 마티네 영화 스틸컷. ⓒ 찬란


둘은 자주 엇갈리고 가끔 겹친다. 오래 빗나가고 잠시 통한다. 보통 감정이라면 스러져 먼지도 남지 않았을 시간이지만 이들의 정리는 말처럼 가볍게 끝나지 않는다. 수년이 흘러 엇갈린 사실을 알게 되면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고 박차고 뛰쳐나가 서로를 찾게 되는 그런 마음이다.


아쿠타카와상 최연소 수상자로 이제 겨우 마흔다섯에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불리는 히라노 게이치로는 단순한 감정을 뛰어넘는 특별한 사랑을 풀어냈다.


원제는 <마티네의 끝에서>다. 도쿄의 짧은 콘서트 뒤에 만나 마드리드 공연 뒤 고백을 거쳐 뉴욕의 마티네 끝에 재회하기까지 둘의 사랑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 못잖게 엇갈리지만 그보다는 훨씬 나은 결말과 마주한다.


한국 제목 <가을의 마티네>는 카메라에 담긴 뉴욕의 가을이 유난히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을까.


흔히 사람들은 미래만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래도 과거를 바꾸는 법이니, 이 추운 겨울 지나간 가을을 생각하며 뉴욕의 마티네 끝자락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지켜봐도 좋겠다.


마티네(matinée)는 한낮에 이뤄지는 공연, 콘서트를 이르는 말이다.

  

▲ 가을의 마티네 영화 스틸컷. ⓒ 찬란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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