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게재, <쁘떼뜨> 영화평
프랑스어 '쁘떼뜨(peut-être)'는 우리말로 '아마도'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제법 흥행한 멜로영화 제목으로, 2차 대전 이후 미·소 냉전 시작점에서 베를린이 동과 서로 분단된 시기에 있었던 한 남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갓 엑스트라가 된 에밀(데니스 모옌 분)과 여배우 대역 댄서 밀루(에밀리아 슐레 분)는 베를린 영화촬영장에서 처음 만난다. 주인공들의 동선을 미리 맞춰보는 장면이었는데, 청춘남녀가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촬영장에서 몇 차례 만남을 가지며 가까워진 에밀과 밀루는 영화 촬영이 끝나기 전 마지막 만남을 기약하지만 예기치 않은 어려움과 맞닥뜨린다. 소련이 분할 통치하던 동베를린과 미국과 영국이 관리하던 서베를린이 단절된 것이다.
영화촬영장은 당시 소련이 분할통치하던 동베를린 구역에 있었는데, 파리에서 온 밀루의 일행은 서베를린 구역에 머물고 있어 일순간에 서로 만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에밀과 밀루가 마지막으로 만난 날, "내일 아침 촬영장에서 만나자"던 에밀의 말에 밀루가 답한 "쁘떼뜨"라는 말은 그대로 영화의 제목이 되었다.
분단 속에 꽃핀 사랑, 한국에선 더 특별해
<쁘떼뜨>는 한국에선 만나기 쉽지 않은 독일 멜로영화다. 베를린이 분단된 1940년대 후반이 배경으로, 역사적 비극을 넘어 사랑을 이루려는 남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시 분단의 상처를 입었고 여전히 그 고통이 이어지고 있는 한국에서 특별히 큰 공감을 얻을 만한 소재다.
무거운 현실을 다루지만 영화는 다분히 비현실적이다. 연애문제로 고민하는 나이 어린 손자에게 조언을 해주는 할아버지의 회상으로 시작하는 액자식 구성답게 영화 전체가 예쁘고 따스하게 꾸며져 있다. 현실적 어려움을 넘어서 사랑과 낭만을 쟁취하는 이야기를 쓰려다보니 비현실적인 전개를 피하기 어렵다.
하룻밤 사이 만날 수 없게 된 에밀과 밀루는 서로 다른 결정을 내린다. 에밀은 포기하지 않는다. 동베를린에 고립된 신세지만 어떻게든 밀루를 다시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우연히 맞이한 기회가 영화 제작이다. 밀루가 대역을 서는 여배우 베아트리체를 캐스팅하기만 한다면 다시 밀루를 볼 수 있으리란 심산이다.
문제는 이제 막 엑스트라를 시작한 젊은이에게 영화제작이 꿈같은 이야기란 것이다. 영화는 에밀이 우연한 계기로 영화를 제작하고 마침내 베아트리체에게 각본을 보내기까지의 이야기를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며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비현실적이라서 더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에밀이 홀로 분투하는 동안 밀루는 현실에 완전히 적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밀루에게 에밀은 단 며칠 간 만난 이국의 남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밀루 곁에는 이제 프랑스 유명 배우가 있다. 밀루의 가슴 속에서 에밀은 완전히 밀려난 지 오래다.
그럼에도 에밀은 변화를 이뤄낸다. 밀루가 남긴 '아마도'란 말에서 긍정만을 읽어낸 에밀은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둘의 재회를 막은 분단이 별것도 아닌 양 거듭해 전진하는 것이다. '사랑보다 나은 가치는 무엇도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에밀의 여정이 현실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진전을 빚어내는 모습은 적잖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2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참전 군인으로 전역해 영화판 엑스트라로 일하기 시작한 에밀이 과연 그토록 낭만적일 수 있었을까 의문이 남는다.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비극 속에서 아무리 귀퉁이에 있었을지라도 이 같은 사랑의 여정을 써내는 게 가능했을까 싶은 것이다.
영화제작소 간부들이 막아서고 비밀경찰에까지 끌려가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오로지 사랑을 향해 전진하는 에밀의 이야기를 통해 독일 영화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분명해 보인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어쩌면 사랑이 그럴만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영화의 원제인 < Traumfabrik(영어로 Dream Factory) >는 영화의 성격을 보다 잘 나타낸다. 영화는 꿈을 빚는 것이고, 때로는 현실적이지 않을지라도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사랑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어쩌면 그래서일지 모른다.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