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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호 Oct 30. 2024

사라진 마을 소년, '반전'이 망친 결말

오마이뉴스 게재, <아이 씨 유> 영화평

[김성호의 씨네만세 311] <아이 씨 유>


반전은 스릴러의 주요 요소다. <식스 센스>와 <유주얼 서스펙트>, <프라이멀 피어> 같은 반전영화의 걸작에서 보듯,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이 흐르는 작품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뒤집는 반전은 관객에게 기분 좋은 충격을 선사한다.


반전은 이야기 전체를 뒤집는 파격적 전개로, 스릴러와 궁합이 좋을 수밖에 없다. 스릴러는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 관객을 몰두하게 하는 장르로, 선 굵은 반전의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꾸준히 양질의 반전영화가 제작됐으나 대부분 장르가 스릴러와 미스터리에 국한된 이유다.


반전영화는 언제나 충격적이다. 클라이막스 즈음에 기존의 설정을 단박에 뒤집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반전이 좋은 반전인 건 아니다. 관객을 놀라게 한다고 해서 다 좋은 반전이 될 수 있다면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으로 밝혀지거나 절름발이가 멀쩡하게 걷는 장면이 두고두고 회자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 씨 유포스터씨나몬(주)홈초이스

 

예상을 깨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


반전은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A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B였더라'를 넘어 'B여서 그랬구나' 하는 깨달음과 'A인줄만 알았는데' 하는 감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잘 짜여진 구성으로 반전에 설득력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고작 이거야'라거나 '에이, 말도 안 돼'하는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런 반전이라면 차라리 넣지 않아야 한다. 반전이 영화 전체의 감상을 잡아먹고, 결국엔 관객에게 짜증스러움까지 불러일으킬 테니까.


여기 그런 실수를 한 영화가 있다. 스릴러에 재능을 보이는 아담 랜달의 <아이 씨 유>다. 중반 이후 드러난 반전으로 영화 전체의 퍼즐이 맞추는 전형적인 반전 스릴러로, 익숙한 집 안에서 낯선 이와 대결하는 설정이 충분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배경은 미국의 한적한 마을이다. 평온했던 마을은 어느 날 발생한 납치사건으로 불안에 휩싸인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열 살 사내아이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사건 현장을 조사하던 경찰은 15년 전 일어난 아동 연쇄살인사건과 이번 사건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다.

 

▲아이 씨 유스틸컷씨나몬(주)홈초이스

 

집 안팎이 모두 불안하다


담당 형사 그렉(존 테니 분)은 아내 재키(헬렌 헌트 분)와 사이가 좋지 않다. 재키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폈기 때문이다. 재키는 후회하고 손을 내밀지만 그렉은 좀처럼 재키를 받아들일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아들 코너(주다 루이스 분)까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코너는 재키를 원망하며 어떻게든 상처를 주려고 한다.


가뜩이나 균열이 있는 가정인데 갑자기 이상한 일까지 생긴다. 집 안에 물건이 사라지고 갑자기 기계가 제 멋대로 움직이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어디선가 물건이 날아와 떨어지고 누군가 밖에서 문을 잠가 옷장에 갇히기까지 한다. 거실에 걸린 사진도 한 장씩 없어지고, 유리창을 수리하러 온 남자는 있지도 않은 딸이 문을 열어줬다고 말한다.


마을의 유괴사건과 집 안의 미스터리한 일이 엮이며 영화의 긴장은 조금씩 고조된다.

 

▲아이 씨 유스틸컷씨나몬(주)홈초이스

 

참신한 설정, 수준급 연출


이후 등장한 설정은 제법 신선하다. 영화는 단박에 시점을 전환한다. 이제까진 그렉과 재키의 시선이었다면, 이후엔 이들의 집에 숨어든 남녀의 시점에서 영화가 전개된다.


스스로를 프로거(Phroger)라 칭하는 젊은 남녀가 이들의 집에 숨어들어 있다. 프로깅(Phrogging)은 몰래 남의 집에 숨어들어 생활하다 다른 집으로 옮겨가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마치 발음이 유사한 개구리(frog)가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건너뛰듯 옮겨간다고 해서 프로깅이란 이름을 얻었다.


명백한 주거침입 범죄지만 프로거 사이에선 특별한 의미가 있다. 침입은 해도 집주인이 인식조차 못하게 하는 스릴 넘치는 행위예술 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프로거 중 남성이 프로깅의 원칙을 어기기 시작하며 빚어진다. 알렉(오웬 티그 분)이란 이름의 사내로, 베테랑 프로거인 민디(리베 바러 분)를 따라 첫 번째 프로깅에 나선 참이다. 알렉은 민디의 만류에도 지루하다는 이유로 위험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집 지붕 위에 올라가고 사람들이 있는 시간대에 공간을 활보하기까지 한다. 물건을 손대기도 하고, 기계를 몰래 조작한다.

 

▲아이 씨 유스틸컷씨나몬(주)홈초이스

 

좋은 반전은 충격을 넘어 감탄하게 한다


영화는 그렉의 가족과 그들의 집에 숨어든 프로거들 사이에서 흥미를 이끌어낸다. 그렉의 가족 안에도, 프로거들 사이에서도 불분명한 균열이 긴장감을 자아낸다. 영화는 차츰 이들의 사연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 끝에서 준비한 반전을 떡하니 터뜨린다.


다만 준비된 반전은 얼마간의 흥미와 그보다 큰 아쉬움을 남긴다. 준비한 반전을 중심으로 영화의 모든 의문점이 해소되지만, 그 반전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할 개연성은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전반적으로 공들인 플롯임은 분명하지만 설득력이 없고 급작스런 반전이 허술한 인상까지 준다. 여러모로 아쉬운 대목이다.


반전 그 자체를 즐기는 관객들에겐 나쁘지 않은 영화일 것이다. 설정 자체가 신선하고, 연출도 나쁘지 않은 덕이다.


다만 여러 반전영화 사이에서 기억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나려 했다면 실망하기 쉽다. 반전영화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 예상을 깰지 말지가 아니라 어떻게 깨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나 아쉬울 뿐이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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