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내 꿈은 오래 전부터 부자가 되는 것이었단다. 처음 방 한 칸도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할 때엔 남편과 함께 누워 '우리 죽을 때까지 일억원은 만져보고 죽을 수 있을까' 하고 말하곤 했었지. 일억원이라. 너는 일억원이 어떻게 보이니? 그땐 내게 엄청나게 크게 보이던 액수였단다. 그런데 열심히 아끼고 모으고 하다보니 어느정도 부자가 되고 그렇게 크게만 보이던 돈을 만져보게도 되었지. 바닥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살만해지고 나니 이제야 행복한 것 같구나. 그래. 나는 이제 행복하다."
이제야 행복하시다는 당신의 말씀을 들으며 생각해보았습니다. 사람마다 행복해지기 위한 조건은 참으로 다양할 것인데 그 중에서도 당신의 행복을 구성하는 조건이란 얼마나 소박한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가족과 이웃을 넘어 존재하는 저 먼 세상에 대하여 걸어보는 희박한 바램도, 자기 심연을 파고들어 보잘 것 없는 자아를 목도하고 그 성숙을 열망하는 참혹한 기대도 아닌, 그저 가난에서 벗어나 부자가 되는 것을 곧 행복이라 이야기하는 당신의 희망이란 그 얼마나 소박한 것입니까.
당신의 소박한 희망을, 그리고 당신의 소박한 행복을 생각하며 저는 저의 행복과 희망에 대하여 생각해봅니다. 이루지 못했던 혹은 이룰 수 없었던 수많은 열망들을 떠올립니다. 그 열망들이 제 가슴에 새겨놓은 절망스런 혹은 통곡스런 상처들을 더듬어봅니다. 이미 아물어버린, 또는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그 상처들은 저의 좌절이고 울음이며 행복입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가장 자랑스러운 것들임을 당신은 아시는가요.
부자가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명예를 얻거나 권력을 얻는 일에도 그닥 관심이 없습니다. 한때는 관심을 가졌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는 그 이상은 아니었지요. 그리고 이제 제게 이와 같은 것들은 그리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때로 이토록 열망없는 저의 모습이 슬프게 여겨지곤 합니다만 저는 저의 노쇠함이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행복은 온전히 제게 달려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의 행복이란 제가 가늠할 바가 아닙니다. 저는 알기를 원합니다. 저의 존재가 성립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 저의 존재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저의 존재가 어떠해야 하는지. 저는 알고 싶습니다. 저는 살기를 원합니다. 저의 존재가 희생시키는 것보다 저의 존재가 보다 가치있음을 온 몸으로 증명하며. 제가 옳다고 믿는, 제가 가고 싶은 그 방향으로. 저는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당신의 행복에 비하면 저의 행복이란 얼마나 고단한 것입니까.
그럼에 그저 생각할 뿐입니다. 나의 인생은 결코 심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므로 나는 나의 남은 삶을 기대한다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를 격려합니다. 오직 그 뿐입니다.
2009. 6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