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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무늬는 바탕만큼

단상

by 김성호

영화배우 한석규가 말하길 자신이 영화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나리오이며 그것은 영화라는 예술분야에 있어 서사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라 했다. 현대영화는 음악, 미술, 무용, 연극, 소설 등 여타 예술분야를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는 종합예술이지만 나 역시도 영화를 볼 때 다른 분야들보다 서사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 우리 영화계에서 이명세 감독과 김지운 감독, 그리고 박찬욱 감독 등이 서사에 절대적인 부분을 의존하는 대신 기존에 서사가 담당하던 부분을 이미지로 대신하려는 시도를 한 바 있었다. 이에 대해 영화팬들 사이에서 그 시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논의 뿐 아니라 이런 시도의 적절성, 혹은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대상이 된 영화들의 상당수는 참혹할 정도의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서사중심의 영화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논란이 된 작품들이 이미지와 서사의 균형을 이루는데 실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박찬욱, 이명세, 김지운 감독은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 영화계의 대표기수들이지만 그들의 최근작은 영상에 비해 서사가 부실하고 단편적이었던 게 사실이니까 말이다.

개인적으로 서사구조가 탄탄하고 깊이있는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선호하는 편인데 위 감독들의 최근작들은 형편없는 수준의 이야기를 오직 영상 혹은 다른 요소들을 통해 메우려는 것으로 보여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이미지로 서사의 비중을 얼마간 대신하려는 시도, 혹은 이미지가 서사를 앞서는 작품의 시도와 같은 새로운 영역에의 도전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공자도 무늬는 바탕만큼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무늬는 바탕만큼, 바탕은 무늬만큼 중요한 것이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여 불균형한 상태를 이루어도 좋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내가 보기에 논란이 된 작품들은 바탕이 무늬를 압도하고 그 역할을 대신하려는 잘못을 저질렀고 그로 인한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영화들이 완전히 실패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해당 연출자들이 어서 이 함정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장기를 잘 살린 좋은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2009. 7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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