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벗 사귀기의 지난함에 대하여

단상

by 김성호


벗 사귀기의 지난함에 대하여
-<논어(論語)> '술이편(述而篇)'에 나오는 三人行必有我師로부터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三人行必有我師라 하셨다. 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속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장을 놓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배울 만한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사람들이 틀렸다. 정말이지 이 말은 세상에는 배울 만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 아닌가 말이다.

공자께서 二人行이라 하지 않고 三人行이라 하신 것은 세상엔 도저히 배울 것을 찾을 수 없는 이가 상당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감안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즉 무작위로 선택된 단 한 명의 상대방이 도저히 배울 것이 없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세 사람이 떠나는 여행을 상정했다는 말이다. 갈급한 자가 물을 구하듯 배움을 찾으신 공자님께서도 이러하셨을진대 범인인 나의 경우에는 배울 만한 사람을 찾기가 겨울에 뛰어노는 개구리를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배움이란 속성상 사람에 결합된 것이 아니어서 어떤 사람을 온전히 존경 혹은 존중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인 반면에 단순한 배움을 넘어 뜻을 나누고 서로의 배움을 펼쳐보일 만한 벗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곁에 두고 교감할 만한 벗, 즉 완전한 존중을 전제로 한 사귐은 배움을 얻는 것보다 훨씬 찾기도 이루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친분을 통한 교우관계에서 한 걸음 나아가 온전히 신뢰하고 그로부터 배움을 얻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든다는 것은 그렇기에 멀고 어려운 길인 것이다.

나는 언제나 멋지고 뜻을 함께 할 수 있으며 배울 수 있는 친구를 원했다. 여기서 멋지다는 건 존중할 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뜻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가치관이 통한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배울 수 있다는 건 어떠한 측면이든 내가 가치있다고 여기는 영역에서 공부의 깊이가 깊다는 걸 의미한다. 서로 온전히 존중할 수 있는 벗이라면 모름지기 이런 인간이어야 할 것인데 문제는 주변에선 이런 덕목을 갖춘 이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유로이 품은 뜻을 나누고 절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신뢰로써 기꺼이 서로를 벗할 수 있는 그런 관계를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지극히 작은 가치있는 덕목도 제대로 갖춘 이가 그리 많지 않은 세상에서 서로의 배움을 나눌 수 있는 벗을 만나기란 지난한 일이다. 대체 이러한 기대가 그토록 무리한 것이란 말인가. 어째서 내게는 온전히 마음을 함께할 수 있는 이가 없는 것인가. 가끔은 몹시도 외로워져서 그저 무뎌지기만을 바랄 때도 있다.

三人行必有我師라는 평범한 문구로부터 공자의 탄식을 읽었다면 그건 역설일까. 지리멸렬한 삶으로부터.


2010. 8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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