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하루 앞두고 언론중재위 출석. 직접 만나 이야길 나누고 보니 지난 판단과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겠다.
결과는 역시나 조정불성립. 비공개 심리라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 없단 게 아쉬울 정도.
차이는 각자가 어떤 가치 위에서 무엇을 지키고자 하였던가에 있었으니, 나는 오늘의 결과가 그리 새삼스럽지도 않다.
시민의 알권리를 위해, 표현의 자유 위에서, 보도준칙을 지켜가며, 성실한 취재를 했다. 결과물에선 어떠한 허위사실이나 법률적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보도 이후 학계에서 유의미한 비판이 여럿 나왔단 점은 6편의 보도가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예상이 맞아떨어질수록 실망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독자와 학자들에게 보도가치를 납득시킬 수 있고, 온갖 전문가에게 법률적 문제점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성실한 취재과정이야 상대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도 넉넉히 인정되는데, 어째서 나는 내가 몸담은 조직을 설득할 수 없었는가. 어째서 나는 그들로부터 설득될 수 없었던가. 사표를 내고, 그로부터 한 달이 훌쩍 넘는 시간을 지나서까지 단 한 줌의 후회가 없는 건 내가 틀리지 않았음이다.
적절한 이유 없이 추가보도를 제한하고 보도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에 사표를 던졌다. 그로부터 40일, 예정된 행선지도 없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고민조차 못한 채로 약속된 취재와 기사를 소화하기 바빴다.
이제와 지나온 40일을 돌아본다. 그 시간에 찍힌 발자국들로부터 나는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선을 다하는 인간의 흔적을 본 것도 같다.
어쩌면 기자로선 마지막일 40일이었다. 그동안 '김기자의 토요일' 11편, 영화평과 서평 10편, 5개의 시리즈(총 28편), 26건의 단독기사를 쏟아냈다. 살펴보면 개중에 몇개쯤은 흠좀쩔. 누군가의 삶에 파문을 던졌음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것에 책임을 다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그렇게 하려 했고, 아예 하지 않은 것보단 나은 결과를 얻은 듯하다. 취재원과의 신의를 지켰고, 이끌고 온 현안에 역할을 다했으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오로지 언론의 주인에게만 충실하였다. 어쩌면 없었을 징계와 기소가 있었고, 어쩌면 잊혀졌을 사건들에 관심이 쏟아졌다. 기자가 그거면 되지 뭐, 하고 생각했다.
스무건이 훌쩍 넘는 보도를 후배놈과 함께 했다. 고생은 쓰벌 두배로 하는데 왜 뒷말을 처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됐든 이것도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기자는 빠르게 고체가 된다. 다른 방법을 시도하고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들이 너무나도 쉽게 자만하고 안주한다. 그 하찮은 상태에 빠지는 걸 경계하고, 더 나은 기자를 만드는 게 언론사의 의무다. 그러나 과연 우리에겐 그런 고민이 존재하는가.
불행히도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시간이 고작 40여일 뿐이었고, 그마저도 사나흘씩 훅훅 지나갔으므로,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보고 고치지 않는 무책임함보다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역할을 다하는 게 나다운 것이다. 어차피 꺼질 것, 욕 좀 더 처먹는대도 문제될 건 없지 않은가.
결국은 나답게 살면 된다. 다른 건 죄다 내주어도 나답게 사는 건 포기할 수 없다. '파이낸셜뉴스, 김성호, 기자' 중에 하나만 지킬 수 있다면 고를 건 오로지 하나뿐인 것이다.
2021. 6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