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의 고통에 빚진 한국의 번영
사람 찾아 떠나는 여행
찾아볼 것이 있다 하니 무엇이냐 물었다. 죽은 베트남인의 잊힌 무덤이라 하니 남의 나라 유적지엔 왜 가느냐 했다. 죽어버린 인간을 만나러, 그것도 남의 나라에 간다는 건 이해받기 어려운 일인가 하였다. 예쁜 여자에겐 너그러우려 하면서도 멍청한 인간한텐 그러기가 어려워서 나는 이도저도 못하고 술이나 털어넣을 뿐이다.
그래, 역사야 흘러간 일이고 그것도 다른 나라 역사라면 알아서 무엇하냐 싶을 수 있겠다. 스물다섯 넘은 여자는 안 만난다는 할리우드 배우 얘기엔 열을 올리면서도, 인도차이나 반도 패권국은 그저 덥고 가난한 나라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다고 치자. 그렇게 마음 먹고서도 욱하고 치미는 무엇을 마주하게 되는 건 바닥을 드러낸 비싼 술 때문이고 나의 좁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따져보면 베트남은 한국과 남다른 인연이 있는 나라가 아니냐. 수백 년 전 조선에서도 사신이 중국에 가면 월나라 사신을 찾아 필담을 나눴다고 들었다. 중국이며 몽골이며 팽창하는 나라는 죄다 한반도를 칠 때마다 인도차이나도 건드리곤 하였다. 비슷한 역사를 헤쳐오고 같은 문자와 문화까지 누렸으니 두 세계 사이엔 남다른 연이 있다 봐도 좋았을 것이다. 그런 곳에 한국이 맹호와 청룡을 보내어 서로 죽고 죽이기에 이르렀다. 비극이 아니냐.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를 거치고 이념갈등에 휩싸여 동족상잔까지 벌인 게 그들과 우리의 사연이다. 그 집 사정 빤하면 배고파도 아궁이에 헛땔깜을 떼는 게 예의며 염치라고 배웠는데, 한국은 전투병을 보내겠다 먼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간 전쟁에서 미국은 가장 고된 작전만 골라다가 하청을 줬다. 국군은 베트콩 게릴라와 죽고 죽이는 개싸움을 수도 없이 치러냈다. 그 와중에 민간인학살 의혹까지 제기된 곳이 한둘이 아니지만 진상규명은 요원하고 보상은 더 그러하다.
통킹만 조작극이 확인된 시점부턴 자유주의 수호 어쩌고 하는 것도 명분일 수 없다. 프랑스, 일본, 다시 프랑스, 미국으로 이어지는 침략은 죄다 반동의 결과다. 그에 대한 저항은 민족자결이며 독립에 닿은 것이니 시대정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걸 가장 잘 알아야 했던 게 한국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기꺼이 그를 짓밟으려 하였다.
물론 나름의 사정이 있다. 참전하지 않았다면 당장 주한미군부터 뽑혀 나갔을 테다. 그 정도의 군사적 변동은 한반도에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 가능성이 차고도 넘쳤다. 나 살기 위해, 때로는 나 더 잘 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이 인간의 역사가 아니냐고 한다면 나는 차마 고개 젓진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한다는 건 때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역사 속 인간과 국가는 훌륭함보단 추악함에 가까웠단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솔직한 물음을 던지는 이를 나는 얼마 만나보지 못했다. 무식을 방패삼아 떳떳함을 뽐내는 이들만 한 트럭씩 되었다.
진실은 간명하다. 한국은 한국인 외엔 결코 이해를 구할 수 없는 전쟁을 원정까지 가서 치렀다. 통킹만 사건 자체가 조작인데다 국제법상 선전포고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전쟁이란 말도 민망하다. 주력인 미국이 세계 패권국으로 남지 못했다면, 한국은 전쟁보상금을 부담하는 데만도 허리가 휘었을 것이다.
나는 다른 누구에게 나의 관심을 이해받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관심이 괴상한 취미 쯤으로 여겨지는 건 나보다는 그렇게 여기는 이에게 안타까운 일이라 본다. 그런 이유로 한국은 24년 전 베트남에 사과하고 지원과 협력을 이룬 이보다 더 나은 지도자를 겨우 한 명만 만났을 뿐이다. 같은 이유로 우리의 어제와 오늘에 부패하거나 무능한 리더들만 줄줄이 꼬였던 것이다. 다 무식의 소치라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말하자면 나는 한국의 번영이 베트남의 고통에 빚지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이를 직시하는 건 관심을 넘어 의무에 가까운 일이다. 베트남의 역사, 그들과 우리가 건너온 시간, 그 속에서 맺은 관계성을 이해하는 건 이 땅에서 지성을 갖고 사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고보면 예쁘단 건 참 대단한 일이다.
2022. 9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