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냈습니다. 지난 기자생활을 정리한 에세이집입니다. 일찌감치 소식을 전하는 게 옳았겠으나 오늘에야 겨우 책을 펼칠 수가 있었습니다. 쓴 이의 기억과 읽은 이의 감상은 다른 것이어서 이제야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앞으로는 평생 돌아가지 못할 분야이기에, 그러나 마음 다해 후회없이 일하였기에 써낼 수가 있었습니다. 저널리즘을 넘어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려 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글이기를 바랐습니다.
소설이 아닌 수필집, 그것도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에세이이긴 합니다만 목표는 아름다운 글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힘을 다하여 다가서려 했지만 끝내 이르지는 못한 것만 같아 편치 않은 마음입니다.
쓰는 동안 닮아지길 원했던 글들이 있습니다. 법정, 김남조, 볼테르, 프란시스 베이컨, 조지 오웰, 마루야마 겐지의 수필들을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기자로 일할 적 매주 한 번은 읽은 리영희 선생의 '이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이나 책에도 인용한 윤오영 선생의 '방망이 깎는 노인', 각별히 멋진 수필 피천득 선생의 '멋' 같은 작품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그들과 견줄 만큼 되었다면 좋았겠으나, 어쩌겠습니까. 아름다운 글은 되지 못했어도 아름다우려 했던 글인 걸로 만족하기로 합니다.
제가 쓴 책을 소개하며 못난 점만 늘어놓는 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닐 겁니다. 그러니 내세울 점을 위주로 소개해보려 합니다. 분명히 장점도 많으니까요.
우선 김성호라는 실패했으나 성공한 기자를 최대한 사실적이고 진지하게 내보이려 하였습니다. 일상에서야 형편없는 구석이 수두룩하지만 기자로만 보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턱밑까지 차오른 유혹 앞에서 끝끝내 저를 지켜낸 때가 많았습니다. 그로부터 위태롭게 흔들리는 불빛들을 몇쯤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못했다면 세상은 지금과는 조금쯤 달랐을 것입니다.
진심을 담고 싶었습니다. 글을 쓰는 목적은 사람을 움직이기 위함이 아닙니까.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씁니다. 아무리 기교가 넘쳐도 진심을 담지 않았다면 인간을 움직이진 못하는 법입니다. 거짓을 말할 때조차도 진심을 담아야 하는 것이 글쟁이의 숙명이 아닌가요. 사람을 움직여서 마침내는 세상까지 움직이는 것, 저의 꿈은 언제나 이것이었습니다.
써두고 차마 보내지 못한 글이 많았습니다. 생각만 하고 차마 써내지 못한 글은 더욱 많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스스로 창피하여서, 선명하고 자극적인 사례를 애써 외면한 때가 잦았습니다. 책에 실린 모든 비판들이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했음을 어떻게 하면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심했습니다. 그러고도 누구에겐 오해를 사게되니, 문제는 글이 부족했을 뿐 다른 무엇은 아닌 겁니다.
희망적이려 했습니다. 기자라는 일이 자주 슬프고 고되며 절망하게 하는 것이어서 더욱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업이란 좆같은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지 않습니까. 마지막장을 덮은 독자의 세계가 열기 전보다 어두워지는 그런 책따윈 태어날 자격도 없는 겁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그렇고 그런 책무더기 가운데 굳이 한 권을 더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노력하고 또 노력한 결과가 이 책입니다. 책을 만드는 일이 쓰는 이의 것만은 아니란 걸 알게 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져봅니다. 포르체 박영미 대표님과 임혜원, 김성아 편집자님, 손진경, 김채원 마케터님, 표지 디자인을 맡아주신 정나영님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해를 넘겨 쥐고만 있던 원고를 저는 아버지가 누워계신 중환자실에서 탈고하여 넘겼습니다. 파킨슨을 앓는 어머니는 병실에도 들어오지 못한 채 두려워하셨고, 실은 저도 두려웠습니다. 무력하기만 했던 그곳에서 번갯불인 줄 알았던 저의 밝음이 고작 반딧불 뒤꽁무니 흐릿한 빛 정도에 불과했음을 알았습니다. 뒷일을 짐작할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을 무사히 건너 직접 책을 전해드릴 수 있게 되었단 것에 저는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진솔하며 희망차길 바랐던 책입니다. 전부 이루진 못했으나 일부는 이루었다 자부합니다. 책이 만나야 할 이에게 제 때 가서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제목은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입니다. 쓰는 동안 제 마음이 꼭 그랬던 것도 같습니다.
부디 즐거운 만남이 되기를!
2023. 1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