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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그래도 쓴다

단상

by 김성호

왕년의 퀸카들이 결국 돌아오지 못하게 됐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리메이크작 출연에 동의한 네 배우가 결정을 번복했단 얘기다. 레이시 샤버트는 아직이고 린제이 로한은 미끄러졌다지만 레이첼 맥아담스와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할리우드 가장 높은 곳에 오른지 한참이다. 이 넷을 다시 캐스팅했다니 그것만으로도 화제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계획은 엎어졌고 마음은 틀어졌다. 사유는 책정된 출연료가 무례disrespectful 하단 것이다. 파라마운트가 얼마를 제안했길래 무례란 소리까지 나왔는지 궁금해하면서 나는 내가 매일 마주하는 무례들을 떠올린다.


어느 시인은 제 글을 신문사에 팔고 1만4000원을 받았다 했다.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고도 믿기지 않아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했다. 처음엔 당혹, 다음은 모욕감을 느꼈다 하였다. 그가 느낀 감정을 곁에서 듣고 있자니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지경이었다.


그러나 나라고 사정은 딱히 다르지가 않다. 기실 나도 14만원보다는 1만4000원에 글을 파는 것이 더욱 익숙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순간부터는 공을 들인 글에 2000원이 책정되기도 하니 나는 내가 느껴야 할 것이 모욕감인지 아닌지도 잊어버리고만 것이다.


백쯤 든 봉투를 내밀며 우리 딸 대신 이것 좀 써주세요 하는 말에 선명한 모욕감을 느끼면서, 몇달치 월급이 될 만한 돈을 부르며 대필을 제안하는 이에겐 분개까지 하면서도, 내 글을 2000원에 파는 일에는 모욕감이며 무례를 느끼지 못한다. 차라리 어느 글에 사례로 쓴 여성가족부 해체 공약이 말도 없이 쏙 빠진다거나, <다이 하드>를 남자영화라 적은 대목이 쓱 지워진다거나 하는 일에 그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속으로 조용히 삭히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찬찬히 되짚으니, 나는 여적 푼돈을 받고서 쓸 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어줍잖은 글팔이인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더욱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이 있단 걸 안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수백통의 팬레터를 받았고, 평론가로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많은 응원이며 감사를 받았던 것이다. 지난주에도 어느 사람이 내 평을 잘 보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사 선전문구를 그대로 베껴대고 어줍잖은 얘기로 지면을 채우는 이들이나 보다가, 감춰진 의미를 찾고 신선한 시각을 여는 글을 감탄하며 읽었다며 박수를 치는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무례에 찔리고 모욕에 다져져서 나는 그와 같은 이가 내 앞에 설 수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가 여자였다면 데이트 신청이라도 할 뻔했는데 꽤나 잘 생긴 어린 남자애라 너 이 새끼 글 쫌 읽는구나 주먹만 맞대고 말았다. 네가 읽은 그 글은 1만5000원 짜리인데 나는 그걸 그 영화의 감독과 스태프와 배급사 사람들이 읽을 것을 기대하고 썼다고, 그들은 마땅히 그런 글을 읽을 만한 일을 했다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만5000원이 주는 감흥이며 이해할 수 없는 칼질 따위 얼마든지 참아낼 수 있다.


무례와 모욕에 분개하는 모든 당신들을 응원하며 여기 그저 참아내는 나를 지탱하며,


쓴다.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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