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 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며 말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런 이는 언제나 귀하여 혹여나 만난다면 곁에 두고 오래 사귀고자 한다.
세상에 보고 즐길 것이 많아서인가. 적잖은 인간들이 홀로 생각하는 법을 잃어버린 듯하다. 생각 없는 판단이며 말은 기초없는 마천루와 같아 나는 도무지 그런 자들과 함께 오를 자신이 없다. 보다 정확히는 함께 추락하고 싶지 않다 해야 옳겠다.
불행히도 사람을 가리기 어려운 형편이 되어 주변엔 그닥 좋아하지 않는 인간형이 적지 않게 쌓였다. 생각 없이 판단하고, 판단 없이 말하며, 때로는 말조차 없이 결정하는 인간들이다. 숙고할 줄 모르는 이들은 제 부족한 경험과 감각으로 세상을 재단한다. 스스로는 무엇을 재단하는 줄도 모르면서 입만 열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다 평가질이다. 나는 판단할 줄 아는 인간을 좋아하지마는 판단할 자격 없는 인간의 판단이란 편협한 인간의 편견이며 고정관념을 확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인간을 견뎌내기란 얼마나 고역인가. 그러나 그런 자들일 수록 제가 가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데 분주하니 그 편협함을 조각조각 상기시켜주어야만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일례로 기자란 직업은 한심한 이들만 고른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런 이들이 많을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엔 반례 역시 제법 있지는 않은가. 가난함은 악덕들만 낳는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세상엔 가난 가운데 태어나 빼어난 미덕을 세운 이가 넘쳐나는데 어찌 그리 쉽게 말할 수가 있는가. 군대경험을 떠드는 놈치고 제대로 된 남자가 없다거나, 특이한 패션을 고수하는 이는 내실이 형편없다거나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사고의 흔적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말들 속에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은 얼마나 참담한가.
이들에게 제 잘못을 지적해준다 치자. 만약 인정이라도 하면 다행이련만 세상이 어찌 그러한가. 관계의 정을 생각하여 선을 넘지 않고 그러려니 이해하려 하여도 끝내 참담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눈에 보이는 게 아닌가.
대체로 나는 세상 많은 것을 쉽게 판단한다고 비난을 산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나는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유를 해낸 결과로 그 같은 판단에 이른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의 십분지일도 사고하지 않은 이들로부터 이런 취급을 받을 때면 분개하는 마음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는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판단한다. 판단에 공을 들이고 들이지 않고가, 제 판단을 바깥에 꺼내고 꺼내지 않고가 다를 뿐이다. 사유하길 귀찮아하고 그러다 아예 생각할 줄 모르게 된 인간은 사고 없이 판단한다. 그냥 편한대로 아무렇게나 판단하는 것이다. 상대의 말투며 복장이며 심지어는 제 기분이며 몸상태에 기인한 온갖 뭉뚱그려진 이미지로 상대를 재단하고서, 너는 역시 그러하다고 결론지어버린다. 어디서 주워들은 걸 제 판단인양 나불거리거나 속으로는 판단하고서 겸손인양 내숭을 떨어대는 작자들, 그들은 제 안에 깃든 치명적 문제조차 돌아보지 못한다. 어쩌다 문제가 될라치면 저는 이러이러해서 판단했다고 걸레에서 구정물을 짜듯 이유를 짜맞추기 일쑤다. 이따금씩 나는 이런 수준의 인간들과 대화를 해야만 한다는 게 참을 수 없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그리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뜻일 테다.
2023. 3
김성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