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 디자인 취업 도전기 04제품 디자인과 취업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두 가지 질문을 듣는다. 왜 하필 디자인 취업이냐 그리고 왜 제품 디자인이냐. 이런 질문은 직업관에 있어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얼마나 버느냐에 초점을 둔 사람들의 만류 섞인 질문들이다. 돈을 잘 벌고자 했다면 애초에 디자인으로 선택을 안 했을 것이다. 금융권이나 사업을 했을 것이다. 또 안정적인 삶을 원했다면 공무원을 준비했을 것이다. 둘 다 나의 직업관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대체로 모든 사람들이 이런 직업관을 갖고 있다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직업관을 다른 사람들도 당연히 갖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삶의 안정성과 금전적 가치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지 않으면 '철없다' 거나 '네가 잘 몰라서 그런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용기 있게 나의 직업관과 왜 디자인을, 그리고 왜 제품 디자인을 하고자 하는지 적어보려 한다.
01 직업관
같이 계약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 회사의 팀원들도 직업에 대한 고민이 많다. 이들은 주로 박사과정 진학을 하거나 연구직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런 쪽은 스스로의 능력이 발전하면, 좋은 연구가 나오고 그러면 과학기술이 발전한다. 자신들이 내놓은 연구들에 대한 시사점과 장단점을 냉철하게 논문에 적어 다음 연구자로 하여금 또 다른 발전을 이끌 수 있게 해 준다. 구조적으로 1명의 발전이 수십 많게는 수백 명의 발전을 이끌게끔 되어 있다. 물론 제삼자의 입장에서 좋은 점만 말한 것이지만. 어쨌든 요는 이런 과학계에서는 연구자 스스로가 여러 현상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 나는 디자인도 마찬가지 일 수 있다고 본다. 디자이너 한 사람이 만든 세계가 여러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그것이 또 새로운 다음 세대의 디자인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현대에 들어서는 끊긴 느낌이다. 특히나 지금 세대에서 더 그렇게 된 것 같다. 필립 스탁은 올해 70세다. 마크 뉴슨, 이브 베하는 50대다. 조너선 아이브는 25살에 애플에 입사했다. 그리고 곧 50대다. 과연 지금 세대의 디자이너들이 25년 후에 재스퍼 모리슨, 후카사와 나오토, 카림 라시드 (모두 50대 이상이다)가 될 수 있을까?
어려워지는 취업과 작아지는 기회들 속에서 내 세대의 디자이너들이 지나치게 양극화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소위 좋은 곳에 취업한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가 되고 있고, 그렇지 못한 디자이너들은 과도하게 자조적이다. 그리고 좋은 곳에 취업하는 디자이너라 해도, 자조적인 시절을 겪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 서로를 시기하고 폄하하고, 또 질투하는 현상이 만연해 있다. 이런 게 시대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전체가 발전하기에 좋은 분위기가 아님은 알 것 같다. 나는 이렇게 패배감 가득한 분위기 속에서 좀 활력을 불어넣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디자인계 전체가 오래도록 먹고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게하는 뭔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 사실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하기가 점점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보다는 차라리 자조적으로 '연봉 3천만 벌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더 하기 쉬운 분위기다. 난 이게 정상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기운 빠지게 하는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속내를 숨긴 채로 겸손한 척하는 말인 경우도 많다. 어쨌든 나는 뭔가 끝까지 살아남아 그런 잔소리 하는 사람들도 좀 박멸하고, 앞날이 좀 잘 보이는 디자인계를 일궈가고 싶다.
02 제품 디자인
여러 디자인 분야 중 특히 제품 디자인은 정말로 패배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면접장에 가면 '어렵다', '어렵네요' 같은 말을 나누는 것은 기본이고, 서로 간에 경쟁과 질투, 견제도 심하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 나름 분석을 해보았다. 제품 디자인은 제조업과 함께 발전한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은 이미 망조가 들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회사에서는 교육에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신입보다는 경력을 계속 쓸 것이다. 그리고 별로 인원도 많이 필요 없다. 잘하는 한둘이 이끌어나가면 되니까. 지금 당장 국내 전자제품 생산 대기업을 읊어보면 다섯 손가락 안에 끝난다. 이 회사들마다 0명의 신입 채용을 한다. 혹은 안 하거나. 그런데 국내 디자인 스쿨 제품 디자인과 졸업자들은 모르긴 몰라도 몇 십만 명이다. 몇 십만 명이 몇 명이 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전자제품 외에도 제품 디자이너가 필요한 문구회사, 자동차 회사, 가구회사 등을 포함시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나는 여기서 상황을 좀 다르게 보았다. 20대 중에서 신입을 뽑지 않는 분야일수록, 여기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의 가치는 갈수록 더 올라갈 것이다. 제품 디자이너가 전망이 없어 취업이 어려운 게 아니다. 제품 디자인은 2차 산업혁명 시기에 나타난 직군이다. 대량생산의 시작과 함께 공산품의 개념이 생기고, 이에 따라 다수의 사용자에게 효율적이고, 생산에 효율적인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그때 제품 디자이너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지겹게 들려오는 시기다. 당연히 새로운 생산방식, 새로운 제품들이 우후죽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어쨌든 제품을 팔기 위해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제품 디자이너는 시대가 변한다 해서 사라질 직업이 절대 아니라 보았다. 오히려 시대의 발전과 함께 가는 디자이너다. 당장 신입 취업이 어려울 뿐 살아남는다면 고생한 것 이상으로 가치 있을 것이다.
30여 년 전 지금의 스타 디자이너들이 경력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 제품 디자인계는 정체기처럼 보인다. 이는 지금이 산업의 방식과 소비의 방식이 변하는 시기라 그렇다고 본다. 현재 활동 중인 스타 디자이너나, 인물이 된 디자이너들은 50대 이상이며, 20-30여 년 전의 방식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 중에서는 두각을 드러내는 인물이나 디자인이 잘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회가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본다.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기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 뿐이다.
+ 잔소리 tip
제품 디자인, 패키지 디자인, 가구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문구 디자인, 패션용품 디자인 등의 채용공고가 떴다고 해서 디자인 취업준비생에게 다 넣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말자. 분야마다 결이 다르고 그 친구가 준비 중이 포트폴리오가 있을 것이다. 공대 출신 취업준비생에게 신소재 개발, 데이터 마이닝, 기계제어, PCB 설계, AI 개발 등의 채용공고가 떴다고 해서 다 넣어보라고 하지 않듯이. 그 친구의 전공도 있고, 분야도 있을 테니 별말 안 하게 되는 것과 같은 논리를 적용해봐야 한다. OO디자인이라 해서 대동소이한 게 아니다.
+ 참고로 위 사진은 채용공고에서 전공과 하는 일을 미스 매치해서 적는 회사들을 몇 보아와서 그냥 옳게 된 공고를 대충 적은 것이다. 뭐 꼭 저런 분야 나누기가 맞다는 건 아니지만, 회사도 공고를 내며 원하는 인재가 있을 테니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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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디자인어워드 결과발표가 났다. 다행히 수상했다. 제법 큰 상이라 기뻐해야하지만, 어쩐지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어 씁쓸했다. 디자이너 전공도 잘못적은 한 회사의 채용공고에서 '국제어워드 수상자 우대, 해외 디자인 대학 출신자 우대, 연봉 2000~2800'이라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연봉만 아니었어도, 제품디자이너 채용이라는 제목을 달고도 직무에 웹디자인만 안 적혀있었더라면, 덜 씁씁했을 것 같다. 내가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를 어떻게 생각하던 세상은 별로 신경을 안쓴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건지 혹은 잘못된 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능력있는 디자이너들이 저런 회사에 저 정도의 돈때문에 들어가는 일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