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체력을 다 써버린 자의 다정한 복지
예전의 하루는 공들여 쌓아 올린 레고 블록과 비슷했다. 수업과 방과 후 활동, 친구들과의 시간까지 차곡차곡 이어져도 하루에는 여백이 남았다. 숙제를 미루고 딴짓을 할 여유가 분명히 존재했다. 지금의 하루는 구조가 다르다. 마치 손끝을 스치는 SNS 피드 같다. 눈을 뜨면 출근길 지하철 문이 열리고, 커피잔을 입에 대는 순간 퇴근길 버스 창밖에 노을이 번진다. 하루와 일주일, 한 해가 스크롤을 넘기는 속도로 지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라진다는 말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인 진실이었다.
몸도 비슷한 리듬으로 변해 갔다. 밤을 새워도 버티던 시절, 체력은 소모해도 금방 채워지는 자원 같았다. 지금은 기름진 음식을 먹고 소화되는 데 하루가 걸리고, 오후 세 시쯤이면 눈꺼풀이 낮은 배터리 경고등처럼 깜빡인다. 그때의 나는 통장도, 체력도 늘 빈 채로 살았다. 무모함을 마치 젊음의 통화처럼 쓰던 시절이었다.
나이 듦은 몸만의 변화로 그치지 않는다. 마음의 층위에도 변화가 생긴다. 감정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줄고, 예전처럼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던 내가 어느 순간 그 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억울함으로 남았을 작은 일들이 이제는 굳이 마음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세상이 흑백으로만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랄까. 타협이라기보다 관용에 가까운 감각이다.
쉬는 날, 배달 음식을 먹고 이불속에 누워 쇼츠를 넘길 때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지곤 한다. 예전에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아 불안했지만, 지금은 그 시간이 하루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침대에 누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사소한 움직임만으로도 몸의 긴장이 풀린다. 넘치던 체력과 밤새 떠들던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혼자 있는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고, 그 변화가 지금의 여유를 만든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무언가를 잃는 과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엇을 남겨둘지 선명해지는 과정에 가깝다. 그건 아마, 20대에 체력을 다 써버린 사람에게 남겨진 하나의 소박한 복지일 것이다.
하루는 여전히 반복되며 지나간다. 눈을 뜨면 또 다음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나는 그 장면의 속도를 조절하며 나이를 먹는다. 지금의 나이로 사는 일이 특별히 대단하진 않지만, 예전보다 조금 더 편안하다. 그 편안함은 나이 듦이 남겨두는 가장 현실적인 선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