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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Jul 20. 2021

라오스 달팽이야, 너는 얼마나 느리니

느린게 미학? 오늘도 느림. 가끔은 빠르게 느껴질지도

아침 일찍 나름 상쾌한 공기를 쐬러 나와본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풀이 많이 자란 땅 한구석을 바라보니, 무엇인가 움직이는 듯 멈춰있는 녀석이 보인다. 


큰 덩치를 가지고 있는 녀석도 아니고,

눈에 띄는 색감을 가지고 있는 녀석도 아니었기에 

그 녀석을 보기 위해서 나는 허리를 굽히고 좀 더 다가가야 했다.



녀석도 나를 바라보는 냥, 자세히 보면 끝이 뭉툭한 눈과 촉수를 내 쪽으로 돌려세운다.

크게 위협적으로 느껴지기 않기에 나는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아니 얼굴을 좀 더 들이밀어본다.


한 손가락 마디 정도를 올라가는 녀석. 그 끝에 다다라봤자 별게 없어 보이는데, 녀석에게는 그 풀잎 끝자락이 큰 정상을 오르는 것 마냥 큰일인가 보다. 

마냥 열심히 올라가긴 하는데... 큰 성과가 없다. 

5분이 지나도 나름 꿈틀꿈틀거리기만 할 뿐.




녀석. 역시 너도 라오스에 사는 녀석이다. 라오스 산 달팽이야.


'한국 달팽이는 적어도 너보단 조금 더 빠를 거야!'

혼잣말을 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걸 금세 느끼고, 피식 웃었다.


'느림의 미학', '천천히, 그리고 볼 수 있는 것들' 

느리고, 천천히라는 것을 포장하고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말들이 많다.


라오스의 느린 발전. 이것은 곳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환경을 가진 나라. 

그래서 여행객들은 '멈춰있는 나라' 라오스를 찾는다. 


더 이상 느림을 보고 싶진 않다. '빨리빨리 한국인'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라오스에서 느림을 아름답다는 말로 꾸미고 싶진 않다.


느리다 못해, 멈춰있다. 정말로 '멈춰있는 나라'였다. 

보존되어 있는 자연환경을 뜻하는 말로만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다.

발전도, 행동도 그리고, 행정절차도 멈춰있다.


정부에서 발행하거나 허가를 해주는 대부분의 서류는 정부 공무원이 움켜쥐고 있는다. 며칠이 아니라 몇 주간 쥐고 있는 경우가 있다. 도장이나 싸인 하나면 끝나지만, 문서를 보고도 쥐고 있는다.

이유야 한 가지뿐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모르고 기다리면 몇 주, 몇 달이 지나도 '멈춰있는 나라'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어쩌면 느려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나라에서 모두가 바쁘고, 빠르게 변하니 말이다. 

그래서 라오스 사람들의 미소와 여유로운 행동들이 당사자가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아름다워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가끔씩은 내가 가지지 못한 여유로움과 느긋함을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가장 큰 이유로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아침 일찍, 그래도 무언가를 찾는지, 무언가를 찾아서 가는 것인지, 나름 열심히 꿈틀대는 달팽이야.


그래, 라오스의 새벽-아침 시장을 가보면 물건을 판매하기 위해 새벽부터 나온 상인들과, 저렴하고 신선한 물품들을 구입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도 많더라. 

이들에게 하루는 누구보다 일찍 시작되고, 누구보다 재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일상일 테다.


어쩌면 달팽이를 보며, '라오스 달팽이는 한국 달팽이보다 느릴까'라는 웃기지도 않은 잠시의 생각으로 '라오스의 느린 것들'을 생각해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빠른 것도 있는데 말이다. 

특히나 우기철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보는 농부들은, 모내기 철이 되면 누가 시키지도 않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그리고 성실하게 일을 하니 말이다. 



"달팽이야. 그래도 내가 한 바퀴 돌고 올 동안은 얼른 목표지를 찾아가렴. 멀뚱멀뚱 그만 쳐다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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