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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Aug 13. 2021

너무 많이 가져서 좋으냐, 귀찮으냐

다리가 많아서 샤워하기 힘들겠어

땅바닥에서 무언가가 스멀스멀 보인다.


무언가 빠른 움직임인데, 전혀 빠르지 않다.


내가 한 발짝 움직일 때, 이 녀석의 발걸음은, 정말 말 그대로 "발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수십 걸음은 하는 것 같다.

아니, 걸음 곱하기 다리로 치면 수백 걸음일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움직임이다.


오히려, 길쭉하고 날씬한, 자주 보지 못하는 외모가 조금은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도 자주 만나지 못하는 녀석이기에, 잠시 녀석과 눈인사를 하며 지켜본다.

가끔씩 고개를 치켜들고 개미가 더듬이로 길을 찾듯이, 좌우 정도를 두리번거린다.



자세히 보니, 매끈한 등을 가지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일자 몸매에 매끈한 피부(외피), 그리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위해서 적절히 '다리'가 '배치' 되어 있다.


저렇게 많은 다리를 움직이면서도 꼬이지 않는 것은, 다리가 비효율적으로 길지 않아서일까?

* 그렇다면, 나의 다리 길이도 결코 비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면, 어릴 적부터 적절한 다리의 움직임 교육을 받아서 일까?

그것도 아니면, 타고난 유전적 본능일까?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만큼 가까이 가서 보더라도, 수십 개의 다리는 길이가 비슷하고,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거기다, 수십 개의 구분된 복부인지, 마디인지가 보인다. 


녀석의 다리에 관심을 집중하며 머리의 더듬이부터 마지막 다리까지 보다가, 녀석의 꼬리를 보게 된다.


돼지꼬리처럼 꼬리 모양이 보이는데, 등부분이 퇴화된 것인지, 정말 꼬리를 가진 곤충인 것인지 언뜻 보기에는 꼬리로 보이는 모습이다. 


바쁜 다리를 파드닥파드닥 옮기는 녀석을 보니 더 이상 귀찮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녀석을 두고 몇 걸음 옮긴다. 그리고 5분쯤 하늘을 보고,,,

땅을 보니,

녀석이 내 발밑에 있다.




'많이 가져서 편하니? 불편하니?'

가지고 싶어서 가진건 아닐 테지만, 이미 가지고 있으니 감내하고 살아야 할 테지.

가지고 있었기에 편하고 불편하고의 문제도 아닌,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살아갈 테지.


그런데 가끔은 말이야, 복잡하고 많은 것보다

조금은 간단한 게 좋더라.


오늘 많은 것을 가진 너를 보며, 간단한걸 오히려 떠올려봐~


다리가 많은 녀석, 샤워하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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