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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Apr 12. 2021

통통배와 낚시의 추억, 고등어 회 먹던 날

라오스에서 낚시는 누군가에겐 생업, 누군가에겐 여가


라오스에도 낚시를 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비엔티안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소에 주말마다 오픈하는 낚시터가 있다.
수십 명이 자리할 수 있는 이 곳은, 입장료를 내고, 잡은 만큼 그리고 잡은 물고기를 요리해서 먹을 수도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인 방문객도 꽤 있다고 한다.
메콩강에서 낚시하는 이들이기에, 라오스에 낚시터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꽤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메콩강의 나라 라오스. 많은 라오스 인들이 메콩강에서 낚시를 하고, 또 민물고기를 잡아서 구이, 젓갈 등의 요리로 살아간다.

라오스에서 빠덱이라 불리는 젓갈은 메콩강에서 잡히는 민물고기 만든다. 이외에도 남빠라 불리는 액젓도 만들며, 빠덱과 남빠는 라오스 전통요리에 많이 쓰이는 재료이며, 라오스 사람들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이다.


생계를 위해 팔기도 하고 말이다.

실제로, 비엔티안 야시장을 둘러보면 민물고기 구이를 파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메콩강의 물고기는 중요한 자원이고, 그래서 낚시와 물고기 잡는 법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는 듯했다.


라오스에서 누군가에겐 생업인 낚시. 그런데 누군가에겐 즐거운 여가시간을 보내는 활동.


그런 그들의 낚시하는 모습을 보며, 잠시 내가 강태공이 될 수도 있었을, 순간이 떠올랐다.




어려서부터 골목대장에 장난꾸러기, 그리고 집안에서 귀염둥이였던 나에겐 유일한(?) 단점이 있었다.


바로 '멀미'였다.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차를 타고 다닐 필요가 없는 거리에서 등교를 하였으니 '차를 타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집안에서 '멀미'를 하는 사람은 오직 나 하나였고, 그래서 집안 식구들은 이런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다행스럽게도, 고등학교를 다닐 때쯤 말끔히 사라졌다.

매일 버스를 타고 등교했고, 또 같은 버스에 근처 여고 학생들이 많이 탔던 이유도 한 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버스 멀미에서 자유롭다고 느꼈던 나는, 그 당시만 해도 큰 무언가를 얻은 듯했다.


마치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듯, 이제 내가 움직이지 못할 곳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다시금 악몽이 되살아나는 사건이 있었다.


20살쯤 되던 겨울날이었다.


형, 자형과 같이 경주 근처 바다 어딘가에 고등어 낚시를 하러 가게 되었다.


- OO아, 너 낚시해봤어?

- 아뇨, 근데 머 그거 어려워요? 그냥 던지고 잡히면 올리면 되는 거지.

- 그래, 그런데 배 타는 거 괜찮겠나?

- 아 배 타는 게 왜요, 형도 타고 자형도 타는데 괜찮아요. 차멀미도 이제 안 하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낚시를 좋아했던 자형이 고등어 낚시를 함께 가게 된 것이다.


낚시의 재미를 몰랐던 나였지만, 성인이 된 20살쯤, 그리고 바다에서 멋지게 낚시를 해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 잊지 못할 하루, 아니 반나절이었다.


더불어, 뱃사람이라 불리는 어부님들께서 잡아주시는 물고기의 소중함도 다시 깨닫게 되는 하루였다.




통통배라 불리는 작은 배를, 5-6명이 타고 앞바다로 나가는데, 낚싯대에 고등어 잡이 찌를 10개 안팎으로 달았다. 그걸 너무 깊지 않게 바다에 던지면 고등어가 슉슉 잡혔다.

정말 거짓말 없이, 5분에 3-4마리씩 찌에 걸렸고, 던지고 올리고 던지고 올리고 바쁜 낚싯대였다.


그런데, 나에겐 이런 것이 소용없었다.


배에 오르고 10분도 채 되지 않아 울렁거리는 파도에 덩달아 울렁거리는 통통배. 그리고 그 배 위에 서있는 나. 그리고, 내 속에서 울렁거리는 내장들과 흔들거리는 뇌.

진짜, 그때의 속마음은 내장과 뇌를 빼서 잠시 보관했다가 낚시가 끝나고 다시 넣고 싶은 심정이었다.


차멀미는 비할 데가 아니었다.


차멀미도 해볼만큼 해본 나이기에, 웬만큼 토하고 나면, 내장도 나를 불쌍히 여겨 조금은 안정감을 주는데, 뱃멀미는 그런 게 없었다. 토하고 토하고, 또 토해내고. 진짜 마른오징어에서 물기를 짜내듯, 계속해서 나의 위를 짜냈다.


그런데 문제는 3-4시간 동안 낚시를 하는 그동안 배에서 내릴 수도 없었다. 나와 형, 자형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낯선 일행도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불쌍하게 보이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불쌍히 보였고,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추운 바닷바람을 맞았다. 아니 오히려, 차가운 바닷바람이 뱃멀미를 안정시켜줘서 그때에는 차가운 바람이 더 좋았다.


한 번의 낚시질로 5마리를 잡든, 10마리를 잡든,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빨리 4시간이 흘러가길 바랄 뿐이었다.




적어도, 7-8번의 쥐어 짜내는 듯한 멀미를 경험하고, 다시는 배를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등어 구경은 실컷 했다.

엄마 고등어, 아빠 고등어, 애기 고등어.

멀미를 하기 전 10분 동안 내가 잡은 5-6마리의 고등어.

형과 자형이 잡은 백여 마리 안팎의 고등어.


4시간의 시련 끝에 통통배 이용시간이 끝나고 배가 육지로 향한다.

새벽에 출발했던 것과는 다르게 해가 중천에 떠있다.

따스한 햇빛과 바다의 시원한 바람에 신기하게도 멀미가 말끔히 없어진다.

이제 다시는 타지 않을 배를 바라보며


아, 이제 좀 괜찮아지는데, 끝났네.
다음에는 웜업을 3-4시간 정도 하고 배를 타야겠어요


라고 형과 자형을 보며 한번 외쳐준다.  


나는 그 이후로 절대 통통배를 타지 않는다. 적어도 30인승 이상의 배만 탄다.




육지에 다다르자 바다에 베푼 만큼 나의 배가 너무 고파왔다.


그리고 선장님이 잡아온 고등어로 고등어회를 준비해주시는데, 비린 걸 싫어하던 나였지만 회로 먹는 고등어의 맛은 일품이었다.

물론, 시원한 바닷바람이 함께였고 말이다.


나는 그날, 바다에 내가 가져온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고,


바다가 준 고등어로 배를 다시 채웠다.


고등어회 처음 먹던 날이자,
뱃사람들의 노고를 다시 한번 체험한 날이자,
바다낚시를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라오스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물낚시든, 실외 낚시든 크게 취미 생활로 삼고 싶은 마음이 없다. 

파닥파닥 거리는 허리 힘이 넘치는 물고기들의 입에 찌를 빼내는 것도 나에겐 고역이고 말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배를 타야지만 이동할 수 있는 관광지와 목적지가 있다.

대부분 관광객을 위해 큰 배가 마련되어 있기도 하지만, 아프리카나 개발도상국의 지역에서는 통통배보다 훨씬 작은 돛단배로도 이동을 한다. 특히 섬이 많은 동남아에서 스노클링 지역이나 인근의 더 작은 섬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모터 하나 달린 작은 배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작은 파도에도 내 몸이 공중에 뜨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비록 여행이라 무서움을 감추고 구명보트가 있다는 안도감에 웃으며 작은 배를 타지만,

그때마다, 고등어 잡이 배의 기억이 나곤 한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덜한 나. 많이 세련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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