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2023 소설보다 가을호, 2024 올해의 문제소설에 실린 이주혜 작가의 단편
2016년 창비신인소설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읽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상당히 추상적이라 흥미롭지 않았다. 인내심을 갖고 정독했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이쯤 되면 문지에서 출간한 <소설 보다 가을>에 실리는 글의 문체가 다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단편은 첫 단락부터 독자를 정신없게 만든다.
-. 그 여름 그들은 육지 끝에 당도해 한낮에 배추씨를 심고 밤이 내리면 해변에 나가 큰 소리로 시집을 읽을 것이다. 그들이 고른 시집은 앤 카슨의 <빨강의 자서전>이나 김영미의 <맑고 높은 나의 이마> 일 것이다. 앤 섹스턴이나 실비아 플라스의 시집은 고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부끄럽다고 생각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6년의 열혈 독서 기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첫 단락에 열거된 책 또는 작가들이 누구인지 하나도 모른다. 이 단편은 의미를 모르는 단어와 문장의 나열이 계속되다가 두 번째 단락장에서 본격적으로 서사가 시작된다.
주인공으로 번역가, 소설가, 시인이 나온다. 실명은 안 나온다. 이들은 낡은 차량에 짐을 싣고 어디론가 떠난다. 이들은 서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한다. 세 직업이 모였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통념적이고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닌 저세상 이야기가 오간다. 혹자는 오히려 그런 대화에 이끌릴 수도 있지만 종종 정신 줄을 잃었다.
소설의 중후반부에 느닷없이 이 소설의 제목이 나온다. 어린 새가 땅에 떨어져서 힘들어하고 있었고 근처에 [어린 새가 이소 중입니다.]라는 메모가 있었다. 이소는 집을 떠나는 연습을 의미했다. 이들은 검색을 하거나 고민하더니 이소를 돕게 되면 어린 새의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도 이들의 마지막 동료인 철학자를 만난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심지어 소설집의 끝에 실린 인터뷰를 읽어봐도 모르겠다.
그나마 인터뷰 마지막 단락 덕분에 작품 해설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아주 아주 아주 조금 해석이 되었다.
-. 앓는 존재를 만나기 위해 정상이 아닌 땅끝으로 가는 일, 여름에 배추씨를 뿌려 겨울을 도모하는 일, 서슬 퍼런 밤바다에 맞서 낭독의 빨간 날개를 펴는 일, 바람과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우는 일, 스스로 짐짝의 위치로 이동하는 일, 함부로 짐을 내팽개 치지 않는 일, 초라한 몰골로 날갯짓을 연습하다 땅바닥에 떨어져 죽음 직전에 내몰린 상태에서도 이소를 단념하지 않는 일,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리지 않는 일,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회하지도 후퇴하지도 않고’ 내일을 향해 곧장 가는 일. 그토록 구차하게 이소를 거듭하는 일이 제겐 곧 성장이고 이때 성장은 더 이상 추락의 반의어가 아닐 겁니다. 게리온처럼 소설가도 시인도 번역가도 철학자도( 저도 살짝 끼겠습니다) 추락하며 날아오르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