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성취하며 돌아온 그 순간이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회복이었다.
병가휴직 104일째, 어제 새벽까지 달린 탓인지 열 시가 넘어서야 일어났다. 오늘은 슈퍼패미콤을 찾아 이케부쿠로로 향했으나 품절이었다. 실망스러운 마음을 안고 신주쿠로 가기로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었지만, 분위기는 살아있었다. 그곳에서도 슈퍼패미콤은 품절이었다. 결국 가부키초에서 라멘 한 그릇을 먹으며 잠시 쉬었다. 비록 세 번째 목적지인 시부야에서도 허탕을 쳤지만, 네 번째로 멀리 미조노구치에 가서는 드디어 찾았다. 인당 하나씩밖에 살 수 없었지만, 너무 기뻤다. 8,900엔에 득템한 뒤 숙소로 가는 길에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을 들렀다. 가는 길은 어둡고 골목길이라 조금 무서웠지만, 서점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동화책 두 권을 사서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병가휴직 105일째, 발가락이 계속 아파왔다. 하루에 27,000보를 걷는 걸 버티지 못하고 탈이 난 것 같았다. 지브리 박물관을 먼저 갔는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세계는 여전히 대단했다. 키치죠지에서 신주쿠로 걸어가며 퇴근길의 혼잡함에 놀랐고,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스카이트리도 올랐다. 발가락 통증이 심해서 야경을 즐기기 힘들었고, 포켓몬센터와 동구리공화국에서도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하루 18,000보를 걸으며 중간중간 쉬고 볼거리를 많이 즐겼다. 발에 땀이 차서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것 같았다. 내일은 더 나은 발 상태를 기대하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병가휴직 106일째, 오늘의 첫 목표는 돈코츠라멘을 먹는 것이었다. 자판기로 결제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했다. 그 후 가죽 벨트를 사러 아사쿠사역 근처의 가죽점에 갔다. 향긋한 가죽 냄새가 가득했고, 만족스러운 벨트를 얻었다. 아사쿠사 센소지에서 건강을 기원하며 향을 맡고 동전을 던졌다. 이케부쿠로에서는 포켓몬센터에서 꼬부기 인형을 샀고, 동구리공화국에서는 찾던 물건을 구할 수 없었다. 발가락이 아파서 자꾸 쉬어야 했지만 오모테산도에서 쇼핑도 하고 오다이바에서는 유니콘 건담을 보며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핼러윈이라 번화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약국에서 발가락 밴드를 샀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너무 지쳐서 마지막으로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에서 책을 또 사고 커피를 마셨다.
병가휴직 107일째, 오늘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부지런히 준비했지만 시간 계산을 잘못해 비행기 출발 30분 전에야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6,200엔을 내고 다음 비행기로 시간 변경이 가능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정말 비행기 타느라 고생이 많았다. 공항에서 남은 돈으로 면세점에서 마지막 쇼핑을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버스는 막혔지만 결국 집에 도착했고, 아내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생일 저녁을 먹었다. 케이크도 먹고 짐을 정리하며 피곤한 몸을 달랬다.
병가휴직 108일째, 오늘은 걷기 명상의 마지막 날이었다. 일본 여행의 여파로 발 상태가 좋지 않아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아내의 약속 때문에 일찍 나왔고,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 후 국전을 잠깐 구경했는데, 슈퍼패미콤 가방을 발견하고 바로 구매했다. 구경을 더 하고 싶었지만 발을 생각해 명상 장소로 향했다. 천천히 걸으며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았다. 비둘기 떼가 갑자기 날아오르는 소리도 신선하게 들렸다.
병가휴직 109일째, 상담소에 가는 날이었다. 상담사는 여전히 내 얘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다. 오늘은 내려놓음과 슬로라이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상담 후 어머니가 부탁한 생대추를 구하러 농장 몇 군데를 연락해 찾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몸이 개운해져 오랜만에 공을 쳤다. 오랜만에 플레이스테이션을 켰지만 너무 피곤해서 졸다가 끄고 잠들었다.
병가휴직 110일째, 조카 100일 식사하는 날. 불안해하는 아내를 그냥 집에서 쉬라고 두고 나오니 마음이 편하다. 아내는 처갓집에 있으니 편하게 쉴 테고 나는 혼자라서 편하다. 그러나... 동생 집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조카에게 계속 시달려서 아주 혼났다. 아는 척을 하면 안 되겠다. 오래간만에 보는 동생의 장인 장모님에게선 뭔가 힘듦이 느껴진다. 동생도 결혼해서 참 고생 하는구나 느껴졌다. 정말 행복할까 궁금하다.
도쿄의 번화가를 걸을 때마다 나는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았다. 핼러윈을 맞아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혼자 서 있는 나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부러웠다. 그러나 내게 주어진 병가휴직의 시간 역시 나만의 자유였음을 깨달았다. 급하게 서점을 돌아다니며 산 몇 권의 책, 오래 찾아 헤맨 게임기, 그리고 발가락의 고통 속에서도 이룬 작은 성취들이 나의 여행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들었다. 결국 이 여행은 나에게 진정한 휴식을 주기보다는, 내가 극복해야 할 불편함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매일 힘들게 걸으면서도 끝없이 무언가를 찾고, 얻고, 다시 걷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 순간조차 내게는 의미 있었다. 작은 불편함 속에서도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내고, 성취하며 돌아온 그 순간이야말로 나에게 필요한 회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