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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소유 Oct 22. 2024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무라카미 하루키 초창기 단편

1. 느낀 점과 그 이유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 특유의 담백한 맛이 좋았다. 남성, 여성의 섹스에 대한 경험적인 이야기들을 얕지만 넓게,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한 여성의 서사로 풀어냈다. 본 단편은 정확하게는 하루키가 본인의 경험을 살려서 써낸 산문 같은 소설이다.


‘돈을 주고 여자와 자는 것에 대해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짧은 단락장으로 본 단편은 시작된다. 이어서 아마도 하루키의 실제 경험이 나머지 단락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루는 하루키가 자주 가던 단골 위스키바가 있었고, 우연히 조금 특별한 여성을 만났다. 그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기 위해 들렀던 위스키바였다. 어떤 여성이 다가왔고, 그 여성은 과거에 하루키를 인터뷰했던 편집자 출신이었다. 그때부터 그 여성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출판사에서 일했던 이야기, 과거 애인, 이별 후 경험들, 기분에 따라 돈을 받고 상대한 남성들, 그렇게 만난 다섯 명의 남자.


그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위스키바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어떤 여자의 이야기를 아주 진지하게 듣는 하루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단편을 대부분 그녀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말하는 여자와 그것을 경청하는 하루키의 모습, 위스키를 마시며 안주로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는 여자와 하루키의 자세가 서사의 중간중간 여백을 만들어준다. 어쩌면 우리는 그 여백 속에서 공간을 채우기 위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루키 장편문학과 같은 완결성을 부족했지만, 담백함과 여백의 맛이 좋았다.



2. 가장 좋은 부분과 그 이유


여자의 말로 구성되어 있는 대부분의 단락장 보다 첫 단락장이 가장 좋았다. 특히 {나이를 먹고 성숙해짐에 따라 우리는 인생전반에 대해 좀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측면을 모아 성립된 존재라기보다, 어디까지나 분리할 수 없는 총체라는 견해이다.}라고 말하는 초반 단락장의 중반부 문장이 좋았다. 본 단편의 대부분의 문장이 산문의 장르를 기본으로 갖고 있는 한계상 그저 1차원적인 문장으로 서술되어 있는 반면에, 위 문장에서는 인간의 인생과 하루키 작가의 젊은 시절 철학을 조금 엿볼 수 있었다. 특히 ‘분리할 수 없는 총체’이 단어의 조합이 좋았다. 인간 뇌의 시냅시가 연결된 신경세포로 되어 있고 그 걷 껍데기가 육체라고 말하고 있는 현대 뇌과학 측면에서 봐도 인간 그 자체는 그야말로 ‘분리할 수 없는 총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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