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서울신문에서 발표된 한강 작가의 신춘문예 당선작.
37페이지, 비교적 짧은 분량의 조금 아쉬운 단편소설.
주인공은 형 동식과 동생 동영, 형제다.
소설의 시작은 늦가을의 황혼을 묘사하며 시작된다.
-. 동식은 동영의 귀환이 다가오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왔다. 달포 전부터 까닭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영의 전역일인 이날은 목요일이었는데, 달리 먹은 것도 없이 월요일부터 위장을 앓았다. 사무실 복도 구석에 있는 화장실까지 걸어가다 말고 더러운 석회 벽에 상체를 기대어 서서 한숨을 뱉었다.
소설의 초반부는 동식이 동생의 전역에 왜 이렇게 긴장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게 시작되었다. 그저 어머니만 동영의 제대 일을 기다리며 흥분했다. 동영은 평범한 남자로 정상적으로 군대에서 제대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동식의 행동과 생각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 그는 극단적인 귀소 본능을 앓고 있었다.
-. 인간의 조상들은 약한 근육과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낮 동안 뿔뿔이 흩어져 수렵과 채취를 하다가 해 질 무렵이면 무리의 본거지인 동굴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잦은 이동은 맹수들이 잠든 야간에 이루어졌으므로, 밤에 돌아왔다가는 무리에서 낙오되기 십상이고 낙오는 비창한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었다.
동식은 과거를 회상한다. 좁은 골목 동네에 살았다. 작은 가게에 딸린 단칸방이었다. 동식은 젊은 날 방황에 대한 벌로 간경변이라는 질병을 앓게 되어 군대에서도 면제를 받았다. 동네는 상권이 점점 약해져서 상가들이 문을 듣고, 사람들이 점점 빠져나가서 어둡고 조용한 동네가 되었다. 동식은 거의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는데 동영은 형의 상태와 상관없이 언제나 밤에 밖에 나가서 새벽에 집에 들어와서 잠들었다.
-. 소리 질러 녀석을 제지하기도 했다. 열 끓는 몸으로 일어나 녀석의 다리를 붙안기도 하였다. 어딜 가는 거냐 이 자식아.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녀석은 동식이 울부짖음에 지쳐 다시 쓰러져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그 녀석이 돌아왔다.
동영은 어린 시절부터 밖에 나가서 잘 사라졌다. 동식이 언제나 그런 동영을 찾곤 했다. 동영은 내성적이지만 언제나 갑자기 밖에 나가서 스스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그들에게 아버지도 있었지만 술에 취해 계곡에서 실족사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날 어머니와 동식, 동영은 셋이 바닷가로 소풍을 나갔다. 어머니가 언제나 가고 싶어 했던 소풍이었다. 그들은 모래사장에서 거대한 닻을 발견한다. 한 개가 아니고 붉게 녹이 슨 수많은 닻을 발견한다. 근처에 수명을 다한 배의 형체도 발견한다.
-. 동식은 순간순간 박차고 일어나고 싶었다. 누구의 부축 없이도 걷고 싶었으며 월급봉투를 받아 귀가하고 싶었다. 출퇴근 만원 버스에 시달리고 싶었다. 상사들의 호통을 듣고 저녁이면 술자리에 앉아 그들을 헐뜯고 싶었다. 여자와 함께 살고 싶었고 자식을 낳고 싶었다. 제때 예방주사를 맞힌 자식들이 자라 조막손으로 만든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싶었다. 그는 자신의 두 발을 땅 깊이 묻기를 원했다. 그곳에 물을 주어 잎을 틔우기를 원했다.
소설은 조금 더 진행되다가 조용하게 각자의 평화를 누리며 마무리된다. 주인공인 동영과 동식은 정말 상극의 인물로 구성되었다. 어둠을 피해서 회귀하려는 동영과 어둠 속으로 나가려는 동식은 정말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아마도 늘 밖에서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의 모습과 집에 있던 어머니의 모습도 그것을 비슷하게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형제의 모습이 그야말로 극단적인 상극의 모습이다. 게다가 건강하지 못한 형 동식에 반해 건강히 군대에서 전역한 동생 동영의 내적인 모습 또한 상극이다. 이들은 서로 갖지 못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 그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방황을 하던 게 아닐까. 모래사장에서 발견한 붉은 닻이야말로 드넓은 바다를 정처 없이 방황하던 수많은 배들의 흔적이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들은 붉게 녹이 슬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