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휴직 153일째, 이제 아홉 시 반이면 눈이 떠진다. 어제도 기절한 듯이 잠들었다. 갑자기 졸려서 ‘지대넓얕’을 틀고 누웠는데 채 10분도 못 듣고 잠이 들었다. 점심에는 결혼식에 가서 오만 원 내고 아내와 둘이 밥을 먹을 예정이다. 누구 아는 사람을 마주치게 될지 궁금하다. 거실에 비치는 햇살은 좋지만 온도는 차가울 것 같다. 따뜻하게 입고 나가야 하나 코트를 입어야 하나 고민했지만, 사진도 찍어야 하니 코트를 입기로 했다.
예식장에는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녀와 잘 인사 나누고 예정대로 아내와 둘이 가서 밥을 잘 먹고 사진도 잘 찍었다. 그러고 집에 와서 책을 좀 보는데 몹시 피곤해서 졸다가 누워서 잠이 들었다. 쉬면서도 왜 이렇게 쉽게 몸이 지치고 피곤한지 모르겠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그런가. 내 체력에는 7~8시간은 자줘야 하는가 보다. 저녁은 블로그에서 찾아본 식당에 갔다. 김치찌개에 제육볶음이 나왔는데 맛이 좋아 잘 먹었다.
병가휴직 154일째, 속이 매우 안 좋다. 어제 자기 전 속이 안 좋아서 세 번이나 화장실에 갔는데 오늘 아침에도 벌써 두 번째다. 갑자기 왜 이럴까. 어제 황금향 주스를 마시고 갑자기 이렇다. 그거 말고는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는데. 오늘도 속이 안 좋아서 세 번이나 화장실에 갔다. 종일 누워서 보냈다. 이런 적은 처음인 듯하다.
병가휴직 155일째, 악몽에 또 시달렸다. 집이 마치 게스트하우스처럼 방 네 개가 나란히 있는 구조였다. 중간 방에 귀신이 붙은 방이 생겼다. 그 귀신이 내 차랑 다양한 물건을 훔쳐가서 몹시 속상했다. 아버지는 출근하시고 어머니와 함께 있었는데, 걸어서 고속도로 주유소까지 십 분 만에 갔다. 그렇게 해서 학원 두 시 수업에 늦지 않게 잘 도착했다. 희한한 꿈이었다. 깨보니 온몸에 식은땀이 잔뜩 배어 있었다.
그렇게 일어나니 몸은 어제보다 나은 듯했으나, 또다시 설사가 심했다. 결국 아내와 함께 병원에 갔다. 윗집 공사도 시끄럽고 병원 갔다가 다른 집에서 쉴 생각으로 출발했다. 병원에서 잠깐 진료 후 내과에서 오랜만에 주사를 맞고 장염 약 삼일 치를 처방받았다. 집에 가는 길에 전복죽을 사서 먹었다.
조용한 오후를 보내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와서 남은 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근 삼일 만에 제정신으로 독서를 시작했다. ‘장자 강의’를 어느덧 절반 이상 읽어가는데, 상당한 명작이다. 비록 도서관 대출이지만 구매해서 소장해야겠다.
병가휴직 156일째, 속이 많이 나아진 듯하다. 오전에는 ‘장자 강의’를 읽고 오후에는 일주일 만에 집안 대청소를 한 후 게임을 즐겼다. 아내가 옆에서 자꾸 맛있는 걸 먹는데 내 속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참고 또 참았다. 주전부리는 내일 하자.
병가휴직 157일째, 8시 알람에 9시에 기상. 전날 또 ‘건담’을 보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편안하게 잘 잤다. 몸이 차츰 나아지는 듯하다. 상담소의 차 명상 3주 차도 기대된다. 눈길 도로 정체가 걱정되니 빨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
다행히 30분 버스를 탑승했다. 이유 모를 도로의 정체가 극심했지만 일찍 출발했기에 여유 있게 명상 센터에 도착했다. 이번 주의 차는 홍차. 가을, 결실을 맺는 계절. 일의 마무리를 잘했던 기억이 있었던가. 일을 잔뜩 벌여 놓고 아등바등할 때가 태반이다. 차근차근 하나씩 풀고 마무리해야 할 것이다. 문제를 풀 때도 그렇다. 증명만 많이 해두고 정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명상 시간에는 이번 주에도 졸았다. 몸의 피로가 좀 있나 보다. 버스에서도 잘 잤는데. 집에 와서는 아내의 블로그를 보고 저녁 레스토랑에 갔다. 늘 그렇듯 큰 기대는 없었는데 오랜만의 근사한 레스토랑이다. 스테이크 맛도 일품이었다. 잘 먹고 당구 치러 갈까 했는데 사장이 문을 일찍 닫아서 허탕 쳤다. 집에 오는 길에 아내에게 괜한 아쉬운 말을 한 듯싶었다. 집에서 폰 게임만 하고 앉아 있다고 했는데, 내 딴에는 아직 처가에 자주 가도 폰 게임을 못 하겠다는 불편함을 얘기하며 방으로 들어가게 해주는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것으로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노선이 틀어져서 마음만 상한 듯했다. 역시 이번 주말에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것은 나 혼자 가는 게 좋겠고, 내일은 처가에 가는 날이지만 아내에게 잘해줘야겠다.
병가휴직 158일째, 마음약에 안정제가 추가되어서 그런가. 꿈 없이 잠이 깊게 든다. 깊게 자고 일어나니 좀 개운하다. 몇 가지 일정이 있는 오늘. 생선 사러 마트에 가고, 핸드폰 팔러 시내에 가고, 책 빌리러 도서관에 가고, 부동산에도 들러야 한다. 그리고 처가로. 좀 바쁘게 움직일 하루다. 바쁘고 간결하게 짜임새 있게 보내야겠다.
아내의 재치로 마트 대신 시내 홈플러스로 대체하고, 가서 생각한 만큼의 가격에 아이폰6를 매각 완료했다. 도서관에서 정신 못 차리고 책을 네 권 빌리고, 부동산에 연락해 본 결과 집 구경은 다음 주에 가능하므로 다음 주 다시 연락해 보기로 했다. 저녁은 처가의 형님 댁에서 큰 조카 생일 밥을 먹기로 했기에 가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다. 많이 먹고 싶었지만 속을 위해 참으며 밥 위주로 잘 먹었다. 형님 댁에서 아내의 손을 살짝 잡았는데 여전히 좀 날카로운 모습에 낯설어졌다. 집에 와선 자연스레 잘 풀어졌다. 나 역시 게임을 즐기며 기분을 달래주었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이 아쉽고 귀한 것 같다.
병가휴직 159일째, 여덟 시 반에 눈을 떴는데 그때 일어났어야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뜨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급하게 먹고 치우고 나갈 준비를 하다 보니 계획했던 시간대 버스는 아깝게 못 타게 되었다. 마음 편하게 40분 뒤의 버스를 타야겠다. 간만의 고향 방문. 옛날 그리운 시절. 더 갈 곳, 더 만날 사람은 없을까.
버스에서 잠들고 시장에서 어머니와 만났다. 내가 냉면을 얘기해서 바로 그걸 먹으러 갔다. 둘 다 비냉을 시키고 먹는데 어머니가 면이 뭉친 데 불만이 많으시고 맛없게 드셔서 마음이 조금 그랬다. 그래도 나는 잘 먹고 집에 같이 잘 들어갔다. 집에 조금 있으니 동생네가 일찍 들르겠다고 하여 오래간만에 동생 가족을 만났다. 조카가 많이 컸다. 이번엔 별로 치근덕대는 게 없어 편했다. 이제 이번 방문의 목적인 그들을 만나러 대학로로 갔다. 한 명은 30분 늦었고, 다른 한 명은 한 시간 늦었다. 다양한 사는 이야기들. 내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 더 가까워지고 더 돈독해진 느낌. 우리는 그렇게 밤새 대화를 나누고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헤어졌다.
일상 속에서 작은 변화들을 경험했다. 아침 아홉 시 반이면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는데, 갑작스러운 졸음에 팟캐스트를 10분도 못 듣고 잠들었다. 때때로 거실로 들어오는 햇살은 좋았지만 바깥공기는 차가웠다. 코트를 입고 사진도 찍으며 오랜만에 외출도 즐겼다.
집에 서는 책을 읽으려 했지만 피로가 몰려와 잠들었다. 쉬는 동안에도 몸이 쉽게 지치는 이유를 모르겠다. 악몽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니 온몸에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몸은 조금 나아진 듯했지만 여전히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며칠 만에 정신이 맑아져 다시 독서를 시작했다. ‘장자 강의’를 읽으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 상담소의 차 명상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가을의 결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을 마무리하는 데 있어 부족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앞으로는 하나씩 차근차근 마무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하루하루가 아쉽고 귀하게 다가왔다. 휴직 기간 동안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깨달았다.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했고,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날들에는 더 큰 감사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