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내가 생각하는만큼 나에게 관심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하자. 잘해야 즐거워진다.
그림이 정말로 지루하고 재미없을 가능성보다
당신이 아직 즐거울 만큼의 실력이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잘하게 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매일 하는 것.
[겁내지 않고 그리는 법, 이연]
‘꾸준히’ 그리는 연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제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려보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그리고, 그림을 인증하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처음에는 제 부탁으로 로아작가님께서 만들어 주신 100일 그리기 방에서 시작했습니다. 2기부터는 제가 방장을 맡아 운영했습니다. 오픈 채팅방 타이틀을 ‘100일 그리기‘에서 ’하루 그림‘으로 바꾸고, 3기는 새로운 방장님을 모시고 3년 가까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100여 분께서 오픈채팅방에 계시지만 일주일에 3~4개 이상의 그림을 꾸준히 인증하시는 분들은 15명 미만입니다. 연례행사처럼 가끔 그림을 그리시거나, 대화에만 참가하시는 분들을 포함해도 활동성을 보이시는 분들은 스무명이 채 안 됩니다.
어떤 계기로든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생각, 혹은 결심까지 하고 오픈채팅방을 찾아 들어왔지만 시작을 하지 못하고 계신 분들이 80% 이상이라는 얘기입니다.
처음 방에 들어왔을 때는 이것저것 질문하시지만 그림을 가르쳐 드리는 곳이 아니기에 도움을 받을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분들이 미술교육을 받은 적 없이 낙서같은 그림을 그려가며 시작하였기에 '기술'을 가르쳐드릴 수준도 안 됩니다.
더욱이 오픈 채팅방이라는 공간에서 상대방의 그림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생각이신지도 모르는 상태이기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일단 아무거라도 하나 그려 보시면서 시작하세요”라는 이야기밖에 해드릴 것이 없습니다.
‘나도 지금부터 그림을 그려볼거야!’하며 호기롭게 시작한 일인데 결국 조용히 잠수를 타게 됩니다.
못 그린 그림을 미룬다고 언젠가 잘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뭐라도 그려야 한다.
매일 그릴 수 있는 상태로 손을 다듬어 놓아야 한다.
[겁내지 않고 그리는 법, 이연]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연한 얘기지만 우선 ‘시작’해야 합니다.
먼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은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시며 성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당신의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 수오서재]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모지스 할머니처럼 따스한 응원도 필요합니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습니다.” 이런 말은, 실은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글쓰기, 음악, 다이어트, 금연, 공부, 기부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뭐든 지금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영원히 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선언과도 같다. 내가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해야 할 정도로 소중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뒤로 미룬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뭘 제대로 시작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문해력 공부 / 김종원 / 알에이치코리아]
그리고 따끔한 채찍질도 필요합니다.
그깟 그림이 대수라고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냐구요?
맞습니다. 결국 즐겁고 행복하려고 그리는 것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시작부터 자꾸 망셜여지게 됩니다. 이미 오랜 시간 그려온 분들과 비교하게 됩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가슴에서 삐져 나오는 쓸데없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럼, 우리가 왜 그림을 어려워하는지 파헤쳐 보아야 합니다.
또 다시 김효찬 작가님의 강연을 소개드립니다.
축구나 농구, 노래나 요리 등은 스무살이 넘으면 어느 정도 나이에 걸맞는 수준에 이르게 되지만 유독 그림만 초등학교 3,4학년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시작이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막상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려도 마음에 안 듭니다.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죠.
“망친 그림은 없어요. 끝까지 그리세요!”
작가님의 말씀처럼 지우개를 사용하지 않고 긴 선으로 끝까지 그려야 합니다.
처음 그림은 정말 엉망일겁니다. 당연히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와 똑같은 수준의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또 그 그림이 두고두고 추억이 되는 소중한 그림이 됩니다. 꾸준히 그리기만 한다면 말이죠.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응원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작이 미약한 게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완곡한 충고로 들린다.
[50, 인생 후반전/이은영/비엠케이 출판사]
그리고, 자신의 그림을 내보일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니, 꼭 다른 사람에게 그림을 보여주어야 하나요? 그냥 제 사진첩에 보관해 두면 안되나요?”
명심하자. 예술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서로 나누고 교감하여
보는 사람이 새로운 감정과 통찰력에 다다르고
창조할 수 있도록 불을 붙이는 것이다.
기타를 배워서 황금 레코드 상을 받겠다는 것도
열성팬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다.
기타를 처음 집어든 사람이든
블루스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사람이든
진짜 목표는 같다.
바로 진정한 자신이 되어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건 당신을 명예의 전당으로,
아니 그보다 더 좋은 곳으로 이끌 것이며
인간답게 사는 게 어떤 건지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창작면허 프로젝트 / 대니 그레고리 / 세미콜론 출판]
결국, 그림은 자신과 상대방과 교감하기 위한 표현의 수단입니다.
힘들더라도 처음부터 자신을 드러내고, 일어나지도 않는 무례한 남의 ‘평가’나 스스로 만들어 낸 ‘비교’에 위축되지 않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글쓰기이건 그림이건 꾸준하게 하면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그림뿐만이 아니라 직장생활이나 일상생활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매일 해내면,
일상에 먼지처럼 떠돌던 불안감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하는-
이 점차 사라집니다.
일을 미루거나 해야 할 일로부터 늘 도망치는 사람(네. 접니다)이
평생 느껴온 자책감, 나는 안 될 것 같다는 무력감도 희미해지고요.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 김신지 / 자방]
이런저런 근사한 말을 들어도 여전히 망설여지신다구요?
그럼 제 말씀을 들어주세요. 자신의 그림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한 분들에게 항상 제가 드리는 말입니다. 저도 나이 마흔이 넘어서야 이 말이 익숙해졌습니다.
100일 그리기 등의 오픈채팅방, 아니 그림을 그리는 분들 사이에서 꼭 지키는 첫 번째 불문율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요청하기 전에는 절대 평가하지 않는다‘입니다.
어렵게 채팅방에 올린 자신의 그림을 보고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조금 더 선연습을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라는 식의 평가나 지적질을 하는 분은 ‘인성수준’에 대한 비판을 받거나, 바로 강퇴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그저 미약한 자신의 시작을 샐죽 웃으면서 손내밀어 주시면 됩니다.
‘와우! 이제 시작이군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정도의 응원을 들으실 수 있을겁니다.
그게 또 힘이 됩니다.
그럴 때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칭찬’을 야무지게 잘 받아먹어야 합니다.
자기비하 같은 겸손보다는 감사를 표현해 주세요.
“칭찬 감사해요. 저도 꾸준히 그려서 꼭 OO님처럼 멋진 그림 그려보겠습니다” 정도면 아주 훌륭한 모범답안이 아닐까요?
우리의 뇌는 누군가의 칭찬을 받으면
이를 보상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자기개념으로 연결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칭찬을 듣고 기분이 좋아졌다면 이를 편안하게 받아들였으면 합니다.
칭찬을 받거나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반사적으로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좋지 않은 습관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누군가 당신을 칭찬하면 이런저런 ‘생각’들에 머물러 불필요한 미로를 구축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즐거운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뇌는 어릴 때에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작동했습니다.
어른들의 칭찬을 편안히 받아들이며 기분 좋아졌습니다.
[나는 아직 나를 모른다 / 허지원 / 김영사]
제 그림이 꾸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픈채팅방 안에서 서로의 그림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기운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초보 때 제 그림은 제대로 볼 수 없어도, 상대방의 그림을 칭찬하고 응원하다 보면 초등학교 백일장 글짓기를 하듯 ‘말을 지어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다른 분의 그림을 다운받아 확대해 보고, 그린 분의 이전 그림도 다시 찾아 비교해 보면, 그림의 일관된 색감, 깔끔한 선 등에 대한 특징이 보입니다. 마침내 적당한 미사여구를 찾아 칭찬하고, 다음에 보여질 내 그림에 대한 관심과 칭찬의 적금통장도 채워지게 됩니다.
나태주 작가(미스터 트롯 말고...)의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란 말을 실감하는 순간을 자주 경험하게 되고, 그림을 ‘보는 눈’도 생깁니다.
오늘도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100일 그리기 하는 동안 어떤 재료로 무엇을 그렸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나쁜 드로잉이란 없다.
드로잉은 경험이다. 더 많이 그릴수록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사실 정확히 계획하고 예상대로 된 경험보다
예측할 수 없는 나쁜 경험에서 더 많이 배운다.
그러니 계속 그리자.
완벽에 대한 집착을 떨쳐라. 위험을 감수하자.
힘껏 기지개를 펴라. 성장하라.
할 수 있을 때마다, 할 수 있을만큼 그리자
[창작면허 프로젝트 / 대니 그레고리 / 세미콜론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