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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아재 Jan 02. 2022

그림 초보, 어떤 걸 준비할까요?

펜과 드로잉 북, 그리고 단단해질 '마음'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목표로 어떤 걸 생각하셨나요?

다이어트? 독서? 

혹시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마음을 가지셨나요?

그렇다면 제 앞 글 두편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자신의 그리고자 하는 마음을 정확히 보고, 마음을 다질 수 있도록 도와드리고자 적은 글입니다.



  일단 그리기를 마음 먹었다면?     

  먼저, 종이와 그릴 도구들이 있어야 하겠죠?

  연필이나 펜, 종이나 스케치북 아니면 요새 유행하는 디지털 드로잉 도구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세요.


  디지털 드로잉 도구들은 언제든지 수정하거나 새로 채색할 수 있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등의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만, 초보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비싼 아이패드를 장만하고, '그래, 이제 나도 아이패드로 멋진 그림을 그릴테야!'라고 결심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영화를 보는 데 사용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매에 앞서 좋은 재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좋은 재료는 필요에 의해 잘 쓰일 수 있는 재료다.
본인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재료라면 그것이 아무리 값어치가 있다고 해도 좋은 재료가 될 수 없다.
[겁내지 않고 그리는 법, 이연, 미술문화 출판사]


  저도 그림 그리기를 시작할 때 비슷한 마음으로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갤럭시 노트9으로 구입했습니다. 

  그림 근육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그린 저의 첫 디지털 드로잉은 정말 엉망이었습니다.

  처음 그림으로 사랑하는 아이를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나마 오른쪽 그림은 많이 연습을 한 다음에 그린 그림입니다.

  아이의 사진을 흐리게 한 후 그 위에 선을 덧 그린 후 채색을 하는, 비교적 쉬운(?) 방법인데도 그림이 완성될수록 아이에게 미안해지더군요.

  그 이후로 디지털 도구로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습니다.      


  처음 그림을 그리다가 이런 '실패'의 경험을 하게 되면 오랫동안 시도를 하지 않게 됩니다.

  일종의 트라우마라고 할까요?

  초보 때 쉬워 보일 것 같다고 만만하게 덤볐다가는 괜시리 오랜 생채기만 남아 그림을 그리는 일(정확히 말해, 그림을 그려보겠다는 마음가짐부터)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근육이 생길때까지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지금도 디지털 드로잉이나 인물은 그리질 않고 있습니다.

  100일 그리기를 하면서 조금 익숙해졌다 싶을 때 딸아이를 그려본 적이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그려보고 싶은 게 당연하니까요.

  그런데 딸아이가 엄청 울적해하더군요. 그 때까진 웃으며 넘길 수 있었어요

100일 그리기 28일차 - 유치를 뽑고 온 딸이 마취도 안 했는데 울지도 않았다며 자랑하며 수줍게 웃던 모습이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딸아이의 반응도 미칠...

  한 번은 함께 그림을 그리던 분이 좋아하는 영화배우를 기름종이에 대고 따라 그린 후, 다시 종이 위에 눌러서 라인을 딴 후 색연필로 채색을 했거든요. 설명처럼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재미도 없는 방법으로 열심히 그렸습니다.

  난이도가 높지는 않지만, 긴 시간을 공들여 겨우겨우 그렸는데... 제가 봐도 애매하더라구요. 

  억지로 봐야 눈매가 조금 비슷하다 정도였는데... 막상 그린 그림을 다른 분들에게 보여드렸는데 코웃음까지 치셔서 굉장히 무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기억을 하고 이렇게 글로 적을 정도로 지독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소심한 탓도 있겠지만, 그 이후로는 인물은 절대 안 그렸습니다.

  조금만 비율이나 선이 틀어져도 전혀 다른 느낌이 되는 인물 그리기의 어려움을 바로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를 배웠죠.

  “(특히, 초보에게) 말하는 대상을 그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인물을 잘 하시는 분들도 핀터레스트 등에서 유명하지 않은 모델들의 얼굴을 가져와 그린 후, 피사체를 그림과 함께 보여드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비교'당하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은 법이거든요.

  지금도 인물을 잘 그리시는 분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어요.

  지금 저한테 인물화는 못 하는 걸 억지로 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잘 한다고 가끔 칭찬받기도 하는 인물 이외의 대상을 그리는 것이 더 즐거우니까요.

  실제로 제 주변에는 인물과 풍경 둘 다 잘하시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겨우 10% 조금 넘을 것 같아요. 그만큼 어렵긴 한가봐요. 


  이제 막 시작하려고 마음 먹는 분들에게 ‘일단 그려’라고 말씀드리고는 이런저런 조심할 것들만 늘어놓았습니다.    그림을 그려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우선 펜 한자루와 드로잉 노트한 권, 그리고 조금 더 단단해질 '마음'만 준비하시길 권합니다. 


  종이는 드로잉 노트가 적당한 것 같습니다.

  쉽게 낙서로 끄적거리다가 덮어버릴 수 없는 약간 비싼 종이, 만 원 내외의 드로잉 노트가 딱 적당합니다.

  펜은 대략적인 가격을 인지하고 있기에 부담을 느낀 적은 없는데요. 종이를 고를 때는 엄청 부담이 되더군요. 몇 만원에서 몇 십만원까지 가격도 종류도 천차만별입니다.

  종이 종류는 많은데 뭘 써야할지 모르겠고, 스케치 북은 한 번 살 때 그림을 20장 이상을 그려야 하는 분량이니 쉽게 질려버리면 낭비가 될 것이 뻔했습니다. 꽤 오랜 시간 인터넷 검색을 했습니다. 게다가 수채화 스케치북이나 드로잉 저널은 1만원이 훌쩍 넘으니 부담이 됩니다.


  종이는 1제곱미터의 무게를 ‘평량’으로 기준을 삼는데요. 흔히 사용하는 A4용지가 60~80g, 펜 드로잉이나 뒷번짐이 심한 마카를 쓸 때는 200g내외, 수채화를 그릴 때는 250~300g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300g 면소재의 비싼 종이가 좋다고 하지만 A4 사이즈 한 장 가격이 1500원 내외이니 입문자에게 필요한 연습용 종이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손바닥만한 A6 사이즈의 200g 내외의 스케치북을 찾아보세요. 이것도 아직 처음이라면 문구점이나 다이소에서 150g 정도에 30장 내외의 스케치북이나 드로잉북을 하나 찾아보세요. 

  장수는 30장 정도가 좋습니다. 적당한 장수의 스케치북 한 권을 꾸준히 채우는 것만으로도 성취감을 얻고, 그림을 꾸준히 그릴 수 있는 동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동안 그린 그림의 첫 장과 마지막 장을 비교해 보시면 벌써 그림 실력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지실거니다.  


  한장 한장 정성을 들여 그리셔야 합니다. 

  연습장에 자주 낙서를 하는 것도 그림 실력이 늘리는데 좋다고 하지만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낙서같은 그림을 꾸준히 그리시는 분들을 가끔 뵙는데요. 그런 분들은 대부분 막 쓰는 종이에 그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분은 낙서를 통해 '그림실력' 외에 무언가를 얻어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림 실력이 나아지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긴장할 필요는 없지만, 마음을 너무 편하게 가지고, 시간과 정성을 들인 자신의 그림까지 막 다루시면 안 됩니다. 내 그림 내가 먼저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귀하게 보려고 노력해 줍니다. 무엇보다 결과물이 유치해 보여도 자신의 노력까지 폄하하면 안 됩니다.


  한 번 그리면 다시 사용할 수 없는 종이에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가격의 종이를 고르시는 것이 좋습니다.   ‘비싼 종이에 그린 그림을 망치지 말아야지. 망치더라도 끝까지 그려서 남는 게 있는 그림을 그려야지’라는 마음가짐이 생기는 종이를 골라보세요.     


  저는 금방 닳아올라서 식어버리는 냄비체질이었지만 그런대로 꾸준히 그릴 수 있었던 이유가 ‘장비병’이었다고 말하는데요. 처음부터 수채화를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겁이 나더라구요. 붓, 물감, 팔레트.... 이래저래 돈이 많이 들 것 같았습니다. 적당한 도구들을 고를 수 있는 '눈'이나 제 취향에 딱맞는 도구를 추천해 줄 선생님이나 선배들도 없었습니다. (아마 세상 어디에도 없었을겁니다. 제 취향 자체가 없는 초보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펜으로만 그리는 펜드로잉으로 시작했습니다. 오일파스텔, 마카, 색연필 같은 채색도구를 하나씩 장만했죠.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 수채화 도구들을 모셔왔습니다. 

  하얀색이나 미색의 종이에 펜으로 그리다가 검은색 종이에 흰색 펜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크라프트(갈색) 종이나 색지에도 여러 가지 색깔의 펜이나 색연필 등으로 그려보면서 독특한 경험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늘어나는 장비를 통해 얻은 색다른 경험으로 제 조급함을 삭힐 수 있었어요.



  이제 진짜로! 펜을 먼저 추천해 드리겠습니다.

  왜 연필이 아니라 펜을 추천해드리는지 궁금하시죠?

  어렸을 때 연필로 그리다가 맘에 안들면 다시 지우고, 또 지우고 했던 일이 기억나시나요?

  결국 딱딱한 지우개에 종이가 구겨지거나 얼룩지고, 다시 처음부터 그리려다 기운이 빠지던 경험을 해보셨을거에요. 미완성의 그림보다는 차라리 망친 그림이 더 낫습니다.

  그래서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펜을 이용하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그럼 연한 연필과 깨끗이 지워지는 좋은 지우개를 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하실 수도 있겠죠? 그래도 펜을 권해 드려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우연히 유튜브에서 김효찬 작가님의 짧은 강의를 들었어요.

https://youtu.be/NFdOZ6NdcEA

  ‘드로잉할 때 꼭 기억해야 할 4가지‘란 강의입니다. 2분짜리 짧은 동영상이니 꼭 한 번 보실 것을 추천해드려요.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네 가지 기억할 점 중 첫 번째가 바로 연필과 지우개 사용하지 않기입니다.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해도 평생 그림을 잘 그릴 수 없다‘란 명제는 또 다른 기억할 점 그림은 끝까지 그린다로 연결되는데요.


  지금 그리는 그림이 자신의 마지막 그림이 되지 않게 하려면 이번 그림에 실망하지 말고다음에 그릴 때는 더 나아질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즐겁게 그려야 합니다. 그 기대가 현실이 되게 하려면 끝까지 그리고 난 후 아쉬웠던 점이나 실수한 부분을 되짚어 기억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합니다. 

  거기에 선을 잘못 그렸어도 ‘덧선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도 연필 대신 펜으로 그려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잘 그리기위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잘 보기 위해 그립니다

  제가 팔로우하고 있는 분의 인스타그램 프로필 문구입니다.

  어느 정도 그리기가 익숙해진 후에 이 문장을 읽고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잘 그리기 위해서는 제대로, 천천히 관찰을 하며 그려야 합니다. 김효찬 작가님의 ‘드로잉 할 때 기억해야 할 네가지’ 중 ‘선을 길게 쓸 것’은 관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건데요. 긴선으로 그려야 형태나 비율이 틀렸어도 그림이 깔끔하고 예쁘게 그려지는데, 그러려면 종이 위에 선 하나를 길이와 각도 등을 생각하며 한 줄의 선을 그리는 짧은 시간동안 머릿 속에 남도록 시간을 들여 자주, 또 오래 관찰해야 하거든요.


  펜은 물에 번지지 않고 오래 보존되는 잉크를 사용하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지금은 스케치만 하더라도 나중에 채색을 해도 번지지 않는 펜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다른 펜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펜은 촉에 볼펜이나 고탄성 섬유재질인 펠트 촉펜을 많이 사용합니다. 저는 초보 때 유니볼 시리즈를 사용했습니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사용한다고 하셔서 선택해서 지금도 계속 쓰고 있는데요. 그리자마자 바로 물이 닿으면 살짝 번지긴 하지만, 스케치를 끝내고 채색도구를 준비하면서 살짝 한 숨 돌릴 시간이면 잉크가 충분히 마릅니다. 유니볼 시그노 0.28, 0.38은 색깔도 다양해서 독특한 느낌을 표현하기에도 좋습니다. 지금도 제 필통에는 항상 검정색과 갈색, 각각 두 개의 두께로 볼펜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가끔 0.5도 사용하지만, 1.0 두께의 유니볼 아이를 더 많이 사용합니다. 얇은 펜촉으로 세세히 그리다가 시간이 길어져 지치곤 했는데, '생략’하며 그리는 연습을 할 때는 두꺼운 펜이 도움이 되거든요.


  펠트촉펜은 ‘피그먼트 라이너’란 이름으로 여러 브랜드에서 시판하고 있는데요. 스테들러, 사쿠라 등 가격대는 비슷하지만 색상 종류는 스테들러가 더 다양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얇은 두께의 펠트촉펜은 촉이 쉽게 닳는 것 같아 처음에는 볼펜을 더 많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또 피그먼트 라이너만 쓰고 있습니다.

  두꺼운 펠트촉펜은 긴 선을 그리다가 잠시 머뭇거리기라도 하면 종이 위에 잉크가 살짝 번질 때도 있거든요. 볼펜은 종이 위에 누르고 있어도 잉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지만, 질나쁜 펠트촉펜은 계속 종이를 번지게 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드린 펜들은 대부분 1,000원에서 2,000원 이내로 동네 문구점에서 쉽게 구입하실 수 있을거에요.

  펜 하나 사자고 배꼽이 더 큰 배송비를 낼 수는 없으니 한 두자루 가볍게 문구점에서 구입해서 써보시고, 천천히 다른 것도 써보세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저도 한 번에 세네개씩 골고루 사들였던 펜만 4kg 플라스틱 김치통을 가득 채운 다음에야 펜쇼핑을 멈췄습니다. 그림을 시작할 때 문방구에 갈 때마다 두세 개씩 이것저것 사모아 두었던 펜과 종이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거기에 배송비가 아까워 ‘이왕 사는 김에 이것도?’하며 한두 개 더 구입한 미술용품들까지 책상 아래와 방구석을 가득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써도 평생 다 쓰지도 못 할 것 같아서 한동안 마눌님께 잔소리도 많이 들었습니다.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부터의 기억을 더듬다가 무릎을 탁 쳤다.
그렇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과의 기억이, 추억이,
나를 그리게 하는구나!
좋아하는 사물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그리게 하고,
그리다 보면 점점 더 좋아지기도 하는구나!

무엇인가를 애써 그린다는 것은
그 대상을 눈물 나게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란 걸,
그리면서 깨닫는다.
좋아하니까 그리고, 그리면서 더 좋아진다.
[그림 속에 너를 숨겨놓았다] 김미경, 한겨레 출판

드로잉을 시작할 때 필요한 기본도구, 펜과 종이, 그리고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음에는 이제 어떤 걸 그릴지, 그리고 꾸준하게 그리기 위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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