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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저씨 Oct 23. 2024

에필로그

돌쇠가 떠나간 다음 날 아침,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조회 시간이 되어 한덕수가 들어와 아이들 앞에 섰다.

“자 반장.”

한순간 온 반에 정적만 흐른다. 한덕수는 아차 싶은지 고개를 흔들더니 “맞다. 석종이 전학 갔지? 그러면 인사는 일단 생략하고. “라고, 말하며 상황을 무마했다. 연사랑은 책상에 엎드렸고 형우는 텅 빈 돌쇠 자리만 보고 있었다. 안창형은 창밖을 보며 돌쇠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떠난 녀석은 잊고 우리는 이제 우리 할 일을 해야지. 자 어떻게 할까. 반장은 있어야겠지? 이따 HR 시간에 반장 선거 다시 할 테니까 그때까지 누굴 추천할지 잘 생각해 봐.“

한덕수는 그렇게 말하고 교실을 나갔다. 안창형은 여전히 창밖을 보고 딴생각에 빠져있었다. 형우는 그런 안창형을 보며 무엇을 결심한 듯했다.     

HR 시간에 회장 연사랑은 학급 회의 안건으로 공석이 된 반장 자리를 놓고 선거를 진행했다. 아직도 눈이 퉁퉁 부어있는 상태였고 돌쇠를 대신할 반장을 뽑는다는 사실이 싫고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반장 선거를 진행하기 위해 우선 추천을 받겠습니다. 우리 반을 위해서 반장이 되어 일할 적임자가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연사랑은 감정이 격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딱딱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고요해진 교실, 아이들은 추천할 사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닌 한숨을 쉬고 있었다. 3개월이었지만 갑자기 전학을 와서 아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아 버린 돌쇠가 떠나간 여파가 큰 탓이었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형우도 돌쇠를 생각하고 있었다. 돌쇠의 빈자리가 커 보였다. 그러나 형우는 돌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 넌 웃는 모습이 가장 잘 어울려. 나중에 웃으면서 보자!

형우는 미소 지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연사랑이 형우가 손을 든 것을 보고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으흠, 네, 말씀하세요.”

형우는 일어났다. 고개만 숙이고 풀이 죽어있던 애들이 형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안창형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형우는 자신에게 몰린 아이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을 느꼈다. 긴장되고 손에 땀이 났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는, 안창형을 추천합니다.”

갑작스레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안창형은 화들짝 놀라 소리 난 곳을 쳐다봤다. 형우가 일어나서 반장 후보로 자신을 추천한 것이었다.

‘뭐야.’

안창형은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앉았다. 연사랑은 형우가 안창형을 추천하자 빙긋이 웃으며 칠판에 후보자 이름으로 안창형을 썼다.

“다음 추천 받을게요.”

한숨만 가득했던 반에 활기가 돌았다. 그러나 후보를 추천하려고 하는 아이는 없었다. 다들 안창형에 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이었다.

“피구할 때 정말 멋있지 않았냐?”

“창형이 덕분에 이겼지.”

“우리 상도 받았잖아.”

“그리고 처음에는 좀 무서웠는데 이제는 뭔가 편해졌어.”

“지난번에 다른 반 애들이 우리 반 들어와서 소란 피우니까 바로 나가서 정리했잖아.”

“그래, 안창형이 딱 맞은 것 같아.”

생기를 찾은 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이 한덕수가 한마디 했다.

“조용히 하고 빨리 추천해.“

반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다음 추천인은 나오지 않았다. 연사랑은 반을 둘러보며 말했다.

“더 이상 추천이 없으면 단독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를 하겠습니다. 괜찮나요?”

아이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찬반 투표를 하겠습니다. 지금 나눠주는 종이에 찬성, 반대를 써서 내주세요.”

연사랑은 아이들에게 투표용지를 나눠주었고 아이들은 종이를 받자마자 거침없이 쓰기 시작했다. 투표용지를 받은 안창형은 뭐라 해야 할지 모를 기분에 휩싸였다.

‘기권.’

안창형은 차마 찬성이란 말을 쓰지 못했다. 투표는 금세 마무리되었고 연사랑은 전체 출석 인원 31명의 표를 다 받아 하나씩 펼쳐보며 칠판에 바를 정자를 써 나갔다.

“찬성, 찬성, 찬성, 찬성….”

고요한 반에 찬성한다고 계속 울려 퍼지는 연사랑의 청량한 음성이 안창형의 가슴에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괜한 인상을 쓰며 눈에 힘을 주고 손톱을 뜯고 있던 안창형은 마지막으로 개표하고 연사랑이 발표한 결과에 결국 터지고 말았다.

“결과는 찬성 30표, 기권 1표로 우리 반 반장은 안창형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연사랑의 발표에 아이들은 우레와 같이 손뼉을 쳤고 안창형은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안창형이 우는 모습에 아이들은 신이나 깔깔 웃으며 더 힘차게 손뼉을 쳤고 형우는 빙그레 웃으며 비어있는 돌쇠의 자리를 보았다.

안창형은 눈물을 막고 있는 손을 뗄 수 없었다. 창피하다. 눈물이 솟구친다.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멋있는 안창형, 더 멋있게 우리 반 애들 잘 부탁해!‘

돌쇠의 말이 떠올랐다. 돌쇠가 자신을 믿어주었다. 형우가 자신을 추천했다. 그리고 이제는 반 아이들도 모두 자신을 믿어주고 있었다. 뜨거운 반의 분위기는 쉽사리 식지 않았다. 안창형이 반장이 된 것에 만족한 한덕수는 앞에 나와 뜨거운 반 분위기를 다시 식혀버렸다.

“자, 조용히 해. 이제 반장도 정해졌으니 제대로 인사 한번 해볼까? 자 반장!”

반 전부가 안창형을 향해 기대에 찬 눈빛을 던졌다. 눈물을 머금은 안창형이 쭈뼛쭈뼛 일어나 반을 둘러보았다.

“차렷!“

안창형의 우렁찬 목소리가 교실을 울렸고 아이들은 구령에 맞춰 허리를 바로 세웠고 인사를 했고 아이들은 인사가 끝나자, 안창형에게 달려가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서 털이 난다는 소리를 해대며 놀리고 웃으며 왁자지껄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그 밝고 경쾌하고 해맑은 소리들은 멀리멀리 퍼져나가 하늘나라 제2 법정에 선 돌쇠에게까지 들리는 듯했다.     

제2 법정에 선 돌쇠를 향해 컨페소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린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며 더 혼쭐을 내줘야 한다며 씩씩대고 있었다.

“아니, 귀환 일이 어제인데 하루 늦게 오는 게 말이 됩니까!”

돌쇠는 컨페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한조와 관우는 이미 근신 처분을 받아 집으로 돌아간 후였다. 돌쇠는 수호천사의 직분을 다시 회복할지 못할지에 대한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리 의로우신 재판장님이라도 이런 천방지축 같은 천사에게 다시 수호천사의 직분을 주시지는 않을 겁니다!”

돌쇠는 컨페스의 분노에 찬 말에도 아무 대꾸를 하지 않았다. 돌쇠의 마음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성취감으로 충만해져 있던 탓이었다. 수호천사의 직분을 다시 받지 못하더라도 형우의 13번째 생일을 함께 한 그 기억을 가지고 추억하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쇠가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 짓는 것을 본 컨페소는 뒷목을 잡으며 한탄했다.

“아이고, 아이고, 정말 말세다, 말세야. 이러니 세상이 말세라고 하지. 천사들까지 이래서야 나 원 참.”

한탄하는 컨페스 뒤로 밝은 빛이 비쳤다. 법정 안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빛 가운데 임한 의로우신 재판장의 음성을 들었다.

“지난 3개월간 돌쇠는 수호천사의 직을 벗고 땅으로 내려가 형우의 곁을 지켰습니다. 돌쇠는 수호천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형우 곁을 지키며 무엇을 느꼈는지 듣고 싶네요.“

돌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형우를 지켜보며 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형우 곁에서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감사했고요. 저는 형우에게 아무 일도 생기지 않도록, 아무 아픔도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형우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어려움이 겪지 않으면 그걸 이겨낼 힘도 기르지 못하고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가 될 뿐이었어요. 제가 형우 옆에서 친구로 지내면서 깨닫게 된 것은 제가 결국에는 형우 옆에서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고 제가 떠난 다음에도 혼자 남게 될 형우를 위해서는 내가 지켜주는 것이 아닌 형우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지켜봐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수호천사로 있을 때도 제가 지켜줘야만 한다는 마음이 앞서서 개입권을 사용했던 것이었고요. 물론 후회는 하지 않는데,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른 아이들을 혼내주거나 선생님께 완력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개입했을 거 같긴 해요. 어쨌든 제가 형우 곁에 있을 수 있었던 3개월은 정말 제게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돌쇠가 잘못을 깨달았다고 말하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거 봐, 내가 뭐랬어. 결국에는 잘못을 깨닫게 될 거라니까.”라며 거들먹거리던 컨페스였지만 돌쇠가 개입권을 사용한 것을 후회하지 않고 다른 식으로 사용할 걸 그랬다며 말하자 다시 뒷목을 잡고 한탄했다. 그런 돌쇠와 컨페스를 보며 의로우신 재판장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많은 것을 깨달았군요.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최종 판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돌쇠는 무릎을 꿇었다. 맑고 깨끗한 음성이 온 하늘을 울리며 퍼졌다.

“오늘부로 돌쇠의 수호천사 직분을 면직하겠습니다.“

컨페소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돌쇠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수호천사의 직분을 받지 못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 면직되고 나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맑고 투명한 음성이 다시 울려 퍼졌다.

“오늘부로 돌쇠를 제 비밀특사로 임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직무는 이번 형우를 지킨 것과 같은 잠입 수호천사입니다.”

“네?”

컨페스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돌쇠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멀리서 빛이 보이는 듯했다.

“돌쇠는 앞으로 제 비밀특사로서 땅으로 파견되어 활동하게 됩니다. 잘 부탁합니다. 형우를 지켜주고 창형이를 이끌어 주었던 것처럼 다른 많은 아이를 소중히 지켜주고 바르게 인도해 주길 바랍니다.”

맑고 투명한 음성이 온 하늘과 돌쇠의 가슴 속에 조용히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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