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행
나는 서울말만 들어도 괜히 오금이 저린다. 서울 사람들은 깍쟁이란 말에 경상도 사투리가 흠이 될까 더욱 입을 다문다. 서울에 갈 때마다 혼자서 전쟁을 치르는 듯하다. 속으로는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경계하고 겉으로는 아닌 척하려고 더욱 무뚝뚝해지곤 한다. 이런 내가 자유학교 사람들과 함께 서울 여행을 계획했다. 교실에서 배운 국영수사과를 실제로 보고 느끼는 4박 5일 교과 여행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여행 기간 중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 속에 교과서 내용이 모두 들어 있었던 것 같다. 교과 여행은 곧 사람 여행이라 말해도 무방했다. 출발 전 크게 한숨을 쉬었다. 기차에 앉아 재잘거리는 학생들을 보니 주눅 대신 깊숙이 숨어 있던 깡이 올라왔다. 무기까지 챙겼으니 이제 상경할 준비 끝. 천천히 기차가 서울로 출발했다.
서울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기차역에서 숙소까지 우리를 대신해 짐을 옮겨주실 택시 기사 분이셨다. 짐을 숙소 로비까지 운반 가능한지를 물은 후 계약을 했었는데 회사와 기사님 사이에는 그런 말이 오가지 않은 듯했다. 내가 짐을 유스호스텔 로비까지 옮기는 것을 다시 언급했을 때 기사님은 당황하셨고 회사와 연락을 취한 후에야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다. 순간 통합사회 시간에 노동자 인권에 대해 배운 것이 생각났다. 회사와 노동자 간의 불평등한 관계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짐 12개를 혼자서 옮길 때 기사님이 느끼실 여러 가지 감정들을 예측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의논 끝에 회사에 지불할 돈은 카드로 계산하고 기사님께는 별도로 현금 만원을 더 드리기로 했다. 약속 장소에서 짐을 실은 후 기사님께 만원을 드리며 숙소에 혼자 가시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 기사님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떠나는 차량을 보며 나도 덩달아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곧장 경복궁으로 갔다. 학생들은 곱게 한복으로 갈아입고 손에 영어 학습지를 꼭 쥐었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 경복궁을 영어 교사인 내가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다. 5분 동안 영어로 외국인과 대화하기 미션이 학생들에게 떨어졌다. 일단은 내가 먼저 움직이기로 했다. 혼자 있는 외국인에게 양해를 구한 후 떨고 있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셜리라는 그분은 상황을 즐기시는 듯했다. 덕분에 학생들과 나도 조금씩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것이 출발점이었다. 학생들은 곧 뿔뿔이 흩어졌다. 그다음은 학생들의 몫이었다. 미션을 끝낸 후 밴드에 올라오는 학생들의 후기는 내가 읽었던 어떤 소설보다 재미있었다. 그 후 보름이는 식물원에서 길을 묻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 경복궁에서 5명의 외국인과 이야기한 경험을 살려 여유 있게 "Follow me"를 외치며 길을 안내해 줬다고 했다. 수업의 틀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삶에 들어간 영어는 좀 더 생동감 있어 보였다.
이번 여행에는 혼자서 하는 여행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자전거 위에서 보는 한강은 걸으며 볼 때와는 또 달랐다. 내 몸의 열기가 겨울 강 속 여름을 느끼게 했다. 한강공원 벤치에 앉아 초코바를 한입 물었다. 그제야 나는 서울을 제대로 맛보고 있는 듯했다. 딱딱하지 않고 달달했다. 저녁에는 모두 모여 각자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산호가 '어둠 속의 대화'라는 것을 스포가 되지 않을 정도만 이야기해 주었다. 산호의 조심스러운 태도 덕분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예아트와 파파야는 수요집회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코로나 전과 비교해서 참석자 수가 많이 줄었다는 말에 왠지 모를 미안함이 올라왔다. 다음 서울 여행 때는 꼭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시간이 모자라 하고 싶은 걸 다 못했고 또 누군가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던 하루였다.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그날 밤 이야깃거리였다.
마지막 날에는 11명이 다 같이 서대문형무소에 갔다. 일제강점기에 치안유지법으로 감옥에 갇혔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사진과 기록이 방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그들 뒤에는 사진조차 남아 있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사 수업에서 함께 읽었던 <철도원 삼대>에 나오는 이재유, 이관술, 이순금, 박진홍 등을 찾았다. 소설 속 인물만이 아니라 실제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형무소의 삶은 책으로만 읽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내가 지금 서 있는 길이 그들이 다녔던 길이었다. 그들과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한쪽은 고문받은 몸으로 노역까지 해야 했고 다른 쪽은 구경하기엔 날씨가 춥다며 패딩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괜히 미안해 손을 뺐다가 금세 추워져 다시 넣었다. 그들의 삶을 상상하기엔 내 그릇이 너무 작아 보였다. 서대문형무소에 있었던 2시간 내내 나는 미안했고 그리고 추웠다.
이번 여행은 빽빽한 건물에 건조한 사람들의 표정만을 생각하며 왔던 내가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서울을 보기까지 도전하고 깨고 배우는 시간이었다. 여행 기간 동안 나는 때론 뿌듯했고 때론 부끄러워하며 서울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두려움이나 주눅 대신 그 사람들 속에 국영수사과를 찾았다. 만남마다 각자의 주제가 있었다. 낯선 언어로 이어지는 대화는 생기를 느끼게도 했다. 여행을 하며 학교에서 주어지는 지원금을 가지고 각자의 먹거리는 각자 책임지며 살아야 했고 사람들의 삶속에 편견과 불평등을 찾아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하며 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여행은 안을 벗어나 밖을 돌아보는 시간이지만 마지막은 다시 안을 보며 끝맺음을 한다. 사람 속에 사회가 있었고 그 속에 교과서가 있었다. 낯선 여행자에서 교사도 돌아오며 수업을 좀 더 잘 준비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참 사람 냄새 나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