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은
학생과 교사는 개학 때 만나 수료 후 헤어진다. 국가가 우리 만남의 주선자다. 묘하게 부자연스러운 관계인데 시간 앞에선 장사 없다고 이 어색한 만남도 시간이 지나며 쌓인 정만큼 부드러워진다. 학년 말이다. 자유학교 교사들은 매년 이쯤 되면 한 달 남짓 남은 올해 학생들과의 시간을 어떻게 매듭지을지 고민한다. 헤어지는 시간을 안다는 건 슬프기도 하지만 잘 헤어지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끔 수료식 후의 외로움이 두려워 정을 덜 주며 살자고 마음먹기도 한다. 결국 텅 빈 교실에 남겨지는 것은 교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봄이 오고 날씨가 풀리면 먹었던 마음도 풀리며 또다시 새로운 학생들과 정을 쌓아간다. 매년 똑같아 보이는 바보 같은 내 모습은 좋지 않은 기억력 탓이라기보다는 외로움을 감수할 만큼의 시간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남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주말에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는 책을 읽었다. 종양내과 전문의 김범석 교수님이 지으신 책인데 죽음을 통해 다시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교수님의 깊이 있는 죽음에 대한 사유를 병원에 입원 한 번 해보지 않은 내가 다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것 자체가 오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 다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죽음을 학생들과의 헤어짐으로 바꿔 질문해 보기로 했다. 나는 남은 한 달을 무엇으로 채우며 보낼까. 교수님의 묵직한 질문 앞에 내 고민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가볍지 않은 책 앞에서 홀로 가벼워서 미안했고 또 가벼워서 고마웠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 최선일까'라는 질문이었다. 거의 수명을 다한 환자에게 그래도 좀 더 최선을 다하기 위해 독한 약을 투입하고 그나마 맑았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의 길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치료보다는 남은 삶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란 교수님의 속내도 들어 있는 듯했다. 학생들과의 헤어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시간 동안 교사인 내가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학생들이 앞으로 새로운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부족한 점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좀 더 완벽한 모습으로 수료해서 새로운 곳에서는 자신감 있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는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설사 조금 어설프더라도 학생 스스로 자유학교를 생각하고 마무리할 시간을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다음 주 월요일에 설화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잦아 다른 학교로 가기 전에 이 부분은 함께 의논해서 고쳐나갔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해줄 수 있는 부분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혼자 마음이 다급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망설여진다.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이 설화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교사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혼자만의 위안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다. 좀 더 생각해 보자. 나의 최선이 학생에게 무의미함을 넘어 방해가 된다면 그것만큼 슬픈 마무리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교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다.
남은 시간 내가 학생들과 함께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1년 동안 자유학교에서 자유를 많이 느끼면서 살았는지를 묻고 싶다. 그리고 여기서 배웠던 자유를 앞으로도 잘 쓰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지 마지막으로 함께 작전도 짜 볼 생각이다. 아직 남아 있는 한 달 동안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읽고 쓰고 듣고 말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각자에게 주어질 앞으로의 자유를 응원할 것이다. 만남이 좋을수록 헤어짐은 슬플 수밖에 없다. 그것도 그대로 받아들인다. 잘 헤어지고 싶다. 그리고 당분간은 점점 더 슬퍼질 것이다. 내가 온전히 잘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한 달이 남아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