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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n 11. 2024

책 좀 읽어라

책 좀 읽어라!     

퇴근 후 넋 놓고 앉아 있는 것이 거의 일상이 되어 갔다. 입 벌리고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나를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속에서 잔소리도 올라왔다. 올해 들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바쁘긴 했지만 빈 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니 못 읽는 게 아니라 안 읽는 게 맞았다. 책을 놓았던 처음 며칠이 점점 불어나더니 벌써 4달이 넘어갔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나. 여태 의무감으로 읽은 것 같진 않은데 힘이 들면 놓아버릴 수 있을 정도였나 보다. 양껏 안 보고 나니 최근 들어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꿈틀거렸다.     


분명 내 마음은 책을 읽고 싶다가 아니라 읽어야 한다였다. 내게 책은 친구가 아니라 스승인가 보다. 책과 함께 있는 시간을 100% 즐길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섭섭하긴 했지만 읽으며 살아야 한다는 책임감이라도 있으니 평생 놓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완벽할 순 없으니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살아야지 어쩌랴. 최근에 다시 책에 눈길이 가기 시작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엇을 읽을지 고민하는 척하며 며칠을 더 흘려보냈다. 스승님 찾기가 쉽지 않다고 혼자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는 시간이었다.     


하루는 퇴근하려는데 동료 교사인 파파야가 내게 책 한 권을 주셨다. 학생들과 국어 시간에 읽었다던 백온유 작가의 <유원>이란 작품이었다. 학생들이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놓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호기심이 생겼다. 이 책을 빌미로 오늘부터 집에 가서 멍청히 있지 말고 뭐든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저녁을 챙겨 먹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잠이 올 때까지만 보기로 하고 책을 펼쳤다. 몇 달 만에 맞닥뜨린 책은 낯설지만 반가웠다. 일단 폈으면 된 거였다. 책 자체가 재미있어 한 줄씩 읽다 보니 학생들 말대로 금세 유원과 친해졌다. 다음 날이 토요일어서 마음 놓고 밤늦게까지 책을 놓지 않았다. 텅 빈 마음이 조금은 채워지는 듯했다.


다음 날 오전쯤 책을 다 읽었다. 내용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는 별도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사실에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 읽으며 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느꼈던 답답함과 죄책감을 뻥 차버린 듯했다. 기분 좋게 웃으며 책을 쓰다듬었다. 성장소설이라 덩달아 나도 성장한 건가. 월요일에 학교 가면 나도 완독 했음을 밝히며 파파야와 학생들의 대화에 당당하게 끼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달랑 책 한 권 읽은 것뿐이었지만 누가 뭐라 해도 스스로 읽어낸 책이었다. 그곳엔 내가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가 분명히 있었다.     


나는 책을 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유원>을 읽고 채워진 내 마음을 되짚어보면 답을 찾을 수도 있을 듯했다. ‘유원이 내 학생이었다면 어떻게 대했을까?’ 책을 읽고 난 후 머릿속에 떠올랐던 질문이다. 혼자 일상을 살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쉽게 지나치는 의문이기도 했다. 내 틀에서만 살기엔 세상은 넓고 내 시야는 좁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알면 알수록 내 품도 넓어질 것이다. 직접 다 볼 수는 없지만 나 이외의 세계를 느끼고 싶은 마음, 그건 욕심일까. 책은 이런 내 마음을 채워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자체에 대한 흥미보다는 사심이 먼저 들어 있으니 나는 책을 즐기기보다는 배우는 대상이라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지난 몇 달 동안 퇴근 후 학교 걱정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쓸데없는 생각을 줄여야 다음 날 쓸 에너지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내 나름 스트레스를 회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괜한 걱정을 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피하려고 매일 일정 시간을 버리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때부터 책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생겨났다. 그리고 만난 책이 <유원>이었다. 회피하려는 내 마음을 다른 곳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 좋은 스승이기도 했다.       


지금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읽는 중이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지난달 광주 역사 기행을 다녀온 후로 더 관심이 갔다. 처음부터 몰입감이 있어 책을 놓을 수 없을 정도긴 하지만 읽기는 힘들다. 마음먹고 책장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5.18.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순간순간 나를 긴장하게 하기 때문이다. 여행 가기 전 봤던 실제 5.18.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택시 운전사>, 그리고 역사 기행까지 내 안에 든 모든 것들을 되짚으며 책을 읽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직도 5. 18.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것 같다. 숨이 턱턱 막혀오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 나가는 것으로 내 모자람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한다. 지금 나는 잊지 말고 기억하며 살라는 스승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중이다.     


책은 하나의 세계다. 한 줄씩 읽으며 그곳을 경험한다. 돌아다니다 힘들면 집에 와 쉬는 것처럼 나는 지난 몇 달을 내 삶에 갇혀 책을 읽지 않고 쉬었다. 이제는 다시 돌아다녀도 되겠다 싶어 방치했던 책들을 손에 들어본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나의 세계도 변한다. 좋고 나쁨으로 그 변화를 판단하는 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대신, 내가 움직이며 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려 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움직이는 게 당연하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나의 변화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친구는 아니지만 평생 함께할 수많은 스승들과 그저 움직이며 세상과 잘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대문사진 출처 : 팍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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