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다. 매주 오는 오늘인데 어떻게 올 때마다 이렇게 반가울 수 있을까. 나도 주말과 같은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나이 먹는 서러움 따윈 휙 날려버리고 살 수 있을 텐데. 주중에 있었던 일이 아직 머릿속에 남아 주말을 넋두리로 시작했다. 혼잣말의 좋은 점은 듣는 이와 말하는 이가 같아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넋두리든 뭐든 내 말의 요지는 ‘주말아, 반갑다’였다. 더워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어 오늘은 더 일찍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6시 30분. 새벽과 아침 사이에, 자전거 위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쳐다보았다. 주중의 기억을 날려버리기 딱 좋은 시공간이었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후로 거리에 있는 모든 종류의 바퀴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자전거 위에서는 바퀴의 힘으로 길을 밀고 나아가는 것이 몸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굵은 바퀴 네 개로 움직이는 차 안에서는 거의 느끼지 못하는 길의 굴곡을 자전거 위에서는 고스란히 알 수 있다. 오늘도 얇고 작은 두 바퀴는 길의 정보를 엉덩이를 통해 시시각각 나에게 전해 주었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의 차가 지나는 도로였다. 당연히 곳곳에 갈라진 균열들이 있었다. 차는 이것들을 무시하며 달렸지만 자전거는 균열의 흐름에 따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길의 모습을 바꾸거나 힘으로 누르지 않고 그대로 순응하며 타고 넘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이른 아침이라 나 외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반대로 곧 더워질 날씨를 피해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사방에서 마주쳤다. 정면으로 나에게 돌진하는 자전거는 무서워서 볼 때마다 최대한 가장자리로 이동했지만 여의치 않을 때는 속도를 줄이고 그들이 나를 피해 가도록 초보 티를 더 냈다. 내 뒤에 있는 자전거는 부담스러웠다. 먼저 앞서가겠다는 소리를 내주면 그나마 자리를 비켜주고 곧 마음이 편해질 수 있을 텐데, 그렇지 않고 계속 나를 따라오면 괜히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몸은 앞으로 가면서도 마음은 뒤를 향했다. 바쁘면 말씀하시겠지. 계속 따라오는 자전거를 애써 무시하며 혼잣말을 했다.
반대로 앞에 있는 자전거는 길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길의 제일 가파른 구간에 도달했을 때였다. 내 앞에는 나보다 체격이 작아 보이는 여자분이 자전거를 타고 계셨다. 지난주까지 자전거로 다 오르지 못하고 내려서 끌며 걸었던 곳이라 그가 멈추면 나도 따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리에 힘이 거의 다 풀려갈 때쯤, 예상과는 반대로 그는 멈추지 않고 자전거 위에 서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나와의 거리도 금세 더 벌어졌다. 아, 저런 방법이 있구나. 힘들 때 더 큰 힘을 낼 수 있는 기술이었다. 따라 하고 싶지만 아직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멀어지는 자전거를 보며 속도는 어쩔 수 없지만 끝까지는 올라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몰아 쉬며 앞만 보고 달렸다. 끙끙거리는 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그가 거의 안 보일 때쯤 나도 오르막을 다 지났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성취감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함께 하는 이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의 2시간이 지나 있었다. 자전거는 탈수록 는다더니 정말이었다. 균형 잡기가 편해진 후부터 몸에 힘이 덜 들어간다. 오늘은 출근길 5분의 4 정도 지점까지 갔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자전거로 학교까지 출퇴근하는 꿈이 곧 이뤄질 것이다. 어설프지만 나도 움직이는 자전거들 중 한 명이었다. 등에 초보운전이라고 붙이고 다닐까 하다가 얕잡아 보면 안 되니 그만두었다. 뒤뚱거리는 뒷모습만으로 다들 내 존재를 알아차릴 거라 믿은 것도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이기고 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각자의 속도대로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있다는 게 두 발 달린 자전거의 매력이다. 조금씩 자전거의 생리를 알아간다. 가늘고 길게 타는 것을 목표로 내 자전거는 오늘도 무사히 잘 다녀왔다.
일주일에 한 번 자전거를 타며 주중의 끝과 주말의 시작을 즐긴다. 날씨가 더 더워지거나 비가 오면 중단되겠지만 그것 또한 자전거 타는 인생의 일부일 것이다. 자전거 위에서 느꼈던 길의 생김이 욱신거리는 내 엉덩이에 여전히 박혀 있다. 길에 순응하려는 힘은 약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능력은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길의 모양을 엉덩이가 아닌 눈과 마음으로 볼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오르고 내리는 길에서 여유로울 수 있겠지.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든 내 속도대로 동행하고 또 헤어진다. 그렇게 자전거도 인생도 쉬엄쉬엄 잘 흘러가면 좋겠다. 이제 진짜 주중 끝, 주말 시작이다. 열심히 달렸으니 남은 시간 푹 쉬자.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