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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Jun 16. 2024

머리채 싸움

농촌 봉사활동

한번 시작한 승부는 끝을 봐야 했다. 나는 잡초 머리를 힘껏 잡아당겼다. 반대로 잡초는 버티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 치 양보도 없이 잡초의 몸과 내 팔이 똑같이 팽팽해졌다. 둘 사이의 긴장감을 스스로 해결할 길이 없어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왼손으로 잡초를 잡고 오른손에 호미를 쥐고 휘둘렀다. 두세 번의 호미질에 “찌직”하고 뿌리가 뽑히는 소리가 들리며 드디어 잡초가 땅에서 나왔다. 정정당당하지 못한 승부였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손에 든 잡초를 보며 비굴한 웃음을 지었다. 옆에 있는 옥수수가 더 깊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작업이었다. 이름 모를 잡초는 모두 제거해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손에 쥔 잡초를 밭 끝 쪽으로 휙 던졌다. 더는 뿌리내리지 못하기 위한 철저한 방어였다.   

   

나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바로 또 다른 잡초의 머리를 잡았다. ‘이놈은 힘이 더 세구먼?’ 나는 엉덩이를 들어 허리로부터 힘을 뽑아냈다. “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굵은 뿌리가 흙에서 빠져나왔다. 잡초가 좀 더 버텼다면 내 엉덩이에서도 같은 소리가 나올 뻔했다. 다행히 체면치레는 했구먼. 나는 또다시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굵은 잡초를 던졌다. 다시 보지 못할 이별이라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렇게 잡초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물기를 머금고 있는 흙이면 그나마 잡초가 잘 뽑혔지만 바싹 마른땅에 뿌리내린 잡초는 그만큼 깊게 파고들어 있었다. 잡초 옆에서 비실거리는 고추가 안쓰러워 나는 마른 흙이나마 끌어다가 땅을 단단하게 다져주었다. 잡초와 고추가 뒤바뀌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럴 리가 없었다.     


4박 5일간 농촌 봉사활동에서 맡은 주 업무는 고추와 옥수수를 사수하기 위한 김매기였다. 유기농 작물만을 키우는 곳이었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아 하나의 밭에 주 작물보다 잡초가 더 많았다. 싸우다 정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교사와 학생들은 하루에 오전 3시간, 오후 3시간을 밭에서 보내며 잡초와 미운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옆에 있는 옥수수는 못 보고 그냥 지나치지만 멀리 있는 잡초는 애써 보지 않아도 바로 눈에 띌 정도였다. 모든 잡초를 다 뽑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어제 작업을 한 밭에서 새로 피려고 하는 잡초 새싹을 보고 나서 조용히 마음을 접었다. 내가 대적할 수 없는 생명력이었다.    


‘잡초도 각자 이름이 있겠지?’     


농촌 봉사활동 3일째, 잡초에 정이 든 나는 문득 내 손에 든 식물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내가 이렇게까지 적대적일 수 있는 건 옥수수와 달리 그들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은 아닐까. 시인 김춘수도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대는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잡초는 나를 뙤약볕 아래에서 땀 뻘뻘 흘리며 호미질을 하게 한 죄인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제집에서 뿌리내리고 있는 식물일 뿐이었다. 이름 모를 그대의 몸짓 앞에서 더는 잔인하게 웃을 수는 없었다. 생각이 변했다 해서 잡초 제거를 위한 내 손길이 멈춘 건 아니지만 잡초를 움켜쥐는 내 마음에 조금씩 미안함이 서렸다. ‘미안해’라고 말하며 잡초의 머리채를 흔드는 내가 미친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하고 먹고 쉬고의 반복이었다. 일과 자체가 단순해서 자연스럽게 내 오랜 친구인 잡생각도 무게가 줄었다. 오전 3시간 작업이 끝나고 나면 오후 작업 시간 전까지 푹 쉬었다. 한낮은 너무 더워 작업할 수 없기도 했지만, 초보 농군인 우리는 오후에도 일하려면 쉬어야 했다. 점심을 먹고 대자로 누워 자는 잠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고 일하는 중간에 새참으로 먹은 수박은 꿀맛보다 더 달았다. 달콤한 농촌 생활이었다. 각자 머리에 걱정거리 한 짐씩 짊어지고 온 우리는 하루에 하나씩 짐을 풀었다. 그리고 잡초와 함께 짐도 날려버렸다. 더는 뿌리내리지 못하게 하려는 철통 방어였다. 텅 빈 머리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해를 따라 우리도 움직였다. 덥긴 했지만 우리 입에서 나오는 노동요도 있었고 가끔 보너스로 시원한 바람도 불었으며 우리가 지나간 밭은 잘생긴 옥수수와 고추만 보여 뿌듯하기도 했다. 4박 5일이 지나 집으로 이동하면서 농촌의 논과 밭을 다시 보았다. 삭신이 쑤신 거로 보아 일은 한 것이 맞는데 밭에 있는 잡초는 우리가 있기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무성한 잡초 사이사이에 옥수수와 고추가 드문드문 보였다. 이름 모를 잡초에 느꼈던 미안함이 쏙 들어가고 호미질하던 날카로운 마음이 다시 올라왔다. 계속 반복될 잡초와의 싸움을 묵묵히 해 나갈 농부들에 대한 존경심이 올라오는 것이기도 했다.    

 

3년 이상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자란 상품을 ‘유기농’ 제품이라 했다. 그리고 농약은 치지 않지만, 화학비료는 사용하는 제품을 ‘무농약’이라 표기한다고 했다. 농촌 봉사활동에서 배운 것을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마트에 갔다. 요즘은 참외가 제철이라 사려고 보니 일반 참외보다 1, 2천 원 더 비싼 가격으로 유기농 참외가 한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참외 포장지 위에 붙은 생산자의 웃는 사진이 반가웠다. 유기농 참외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참외밭에 무수히 자라 있을 잡초를 상상했다. 건강한 소비를 하는 것도 잡초를 뽑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있겠구나 싶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마트 안에 상품이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와 있는지를 조금은 알 듯하다. 평소보다 1, 2만 원 더 쓴다 생각하고 ‘유기농’이라 적힌 물건들을 골랐다. 생산자의 얼굴이나 이름이 인쇄된 포장지를 볼 때마다 그들만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것이 나에겐 물건을 신뢰할 수 있는 보증서와 같았다. 건강한 먹거리를 양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포장지를 뜯지도 않았는데 유기농 농산물을 보는 것만으로 피로가 풀리는 듯했다. 주중에 열심히 살았으니 맛있는 음식으로 주말을 즐겨봐야겠다. 이번 주말은 특히 더 잘 먹고 잘 쉬며 잘 살고 싶다. 일하기 어려운 농촌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기농 작물을 기르는 고집 있는 농부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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