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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y 31. 2024

나는 매일 죽음을 생각한다

<어느 책에서 본 것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ㅜㅜ>

십여 년 전, 책을 읽다가 우연히 그림 하나를 봤다. 그리고 이유도 모른 채 책장을 넘기지도 못하고 한참 동안 소녀를 보고 있었다. 어두운 방에서 작은 촛불은 더 눈에 띄었고 이에 반사된 그녀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표정과 자세에서 드러나는 여유로움이 옆에 있는 해골과 어울리지 않아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더 궁금했다. 나이를 먹으며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생기던 시기였다. 혼자 생각하는 것조차 하면 안 될 것 같아 두려울 때마다 딴짓을 하거나 숨어서 울곤 했다. 나이는 거꾸로 먹진 않을 것이었다. 앞으로 점점 더해질 내 두려움은 갈 길을 잃고 헤맸다. 막막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앞에서 그녀가 편안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아야 했다. 


오래된 친구에게 그림 사진을 편지와 함께 부쳤다. 다른 사람들은 소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친구는 그림을 보자마자 하루에 다섯 번씩 죽음을 생각하는 부탄 사람들이 떠올랐다고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이런 부탄 문화는 사람들이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 죽음은 현재의 삶에 더 집중하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친구는 소녀의 편안함도 부탄 사람들의 삶과 같은 맥락으로 해석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죽음에 대한 시선이었다. 처음으로 죽음이 마냥 두려움의 대상만은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다시 보았다. 촛불과 어둠, 소녀와 해골의 대비는 여전히 나를 긴장시켰지만 더는 막막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고 소녀가 말하는 듯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책도 읽고 철학 시간에 토론도 했다. 죽음을 주제로 한 대화였지만, 늘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살 건데?'로 끝이 났다. 부탄 사람들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에 한 번이라도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면 나도 언젠가는 소녀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종종 내 장례식을 상상해 봤다. '그래도 저 사람 참 신나게 살다 갔지'라는 말이 들린다면 내 영혼은 어깨를 들썩이며 뒤도 안 돌아보고 더 신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잘 죽을 자격은 잘 살아온 하루가 얼마나 쌓여 있냐에 달려 있다. 따기 쉽지 않은 자격증이니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줄여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을 배워가며 자주 가족을 떠올렸다. 이런 이야기를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을 뵐 때마다, 나이를 먹어가는 언니 동생을 느낄 때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불안함을 마음속에 지니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터놓고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각자가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을 텐데. 어느 날은 크게 마음먹고 엄마에게 가정법을 써서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흔들리는 엄마의 눈을 보자마자 내가 잘못했음을 직감했다. 부모 앞에서 자식이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하다니. 이것보다 더한 불효가 어디 있을까. 내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도전한 대화는 엄마의 울음으로 시작도 못 하고 끝을 맺었다. 언니에게 말을 꺼냈을 때도 거의 비슷했다. 내가 욕심을 부리는 건가. 그래도 말하지 않는다고 있는 불안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면 더 꺼내야 하지 않을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답답한 몇 달이 지났다. 다행히 이번에는 엄마가 내게 먼저 말을 꺼내셨다. 집순이에 가족밖에 모르는 언니가 엄마가 없을 때 어떻게 살지 걱정된다며 울먹이셨다. 나는 엄마의 불안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반가웠다. 그래도 처음 실패한 경험이 있어 대화를 서두르진 않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내가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엄마의 말을 언니에게 전했다. 이제 우리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서서히 죽음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몇 달 전보다 언니의 반응은 훨씬 차분했다. 그 사이에 언니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그럼 천천히 이야기해 보자.' 처음으로 언니가 내 말을 받아들였다. 한 고비는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제야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면 좋을까. 너무 심각하거나 감정적이기보다는 생각을 부담스럽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여러 방면으로 자료를 찾아보다가 최근 수업 시간에 함께 읽은 책 '마당을 나온 암탉'을 떠올렸다.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거리가 많이 담긴 책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긴 하지만 안 해본 거라고 못할 건 아니었다. 수업 계획 짜듯 책을 다시 정리했다. 어떤 대화가 오고 갈지 상상도 해보았다. 학교에서 사람들과 함께 나눈 대화와 가족과의 대화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면이 많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부탄 사람처럼 서로의 삶과 죽음을 일상에서 나눌 수 있길 바랐다.


우리의 대화는 이제 시작이다. 큰일 없이 잘 지내고 있는데 괜히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울 필요가 있냐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화의 목표는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각자 혼자서 가지고 있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나도 나이가 든다. 그만큼 가족들도 그렇다. 모두가 경험해야 할 각자의 삶과 죽음이 서로에게 상처만이 아닌 긴 여운으로 남길 바라본다. 나는 수목장을 하고 싶다. 누구든 신나게 쉬고 편하게 떠날 수 있는 나무 한 그루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런 자격을 가질 수 있도록 일단 그리 살고 봐야겠다. 나는 오늘도 편히 살기 위해 끝을 생각한다. '죽음은 삶의 일부'라는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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