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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y 24. 2024

일찍 일어나는 새는 일찍 잔다

나는 새벽잠이 없다. 보통은 나이를 먹으면 그렇다는데 어릴 적에도 할머니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이란 말의 그 어린이가 딱 나였다. 어린이가 수십 년이 지나 어른이 됐다. 새 나라에 사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신기해했다. 그리고 아침형 인간에 대한 붐이 일고 난 후부터 부지런하다는 이미지까지 얻었다. 실상은 저녁 8시만 돼도 술 몇 잔 걸친 사람처럼 해롱거리니 부지런한 게 아니라 잘 만큼 자고 일어난 거였지만 칭찬과 같은 말이므로 굳이 내 입으로 저녁의 나를 말할 필요는 없었다. 진짜와 다른 이미지로 보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일찍 일어나는 것이 마치 나라를 구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풍선처럼 부풀어지며 스스로와 멀어지는 중이었다.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하품을 하며 피식 웃었다. 아침 6시. 주중에 일어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더 늦은 시간이었다. 그나마 주말이라고 한 시간 더 잤구먼? 허세 가득 찬 얼굴과 말투로 혼잣말을 했다. 굳이 지금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데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남들은 다 자는 시간에 눈을 뜨는 나를 보며 쉴 줄도 모르는 종자라고 혼자서 혀를 찼다. 지난밤 9시가 되기도 전에 잠들었다는 사실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내 의식의 흐름에서 삭제되었다. 나는 나의 부지런함이 감당이 안 된다는 생각을 고수하며 혼자서 원맨쇼를 이어갔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밤새 구겨져 있던 몸을 쭉 뻗었다. 몸에 붙어 있던 잠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아직 바깥은 깜깜했다. 오랜만에 해야 할 것 없고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토요일이었다. 오늘 무엇을 하며 보내면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나는 뒹굴거리며 손에 쥔 자유가 좋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단 출근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니 그 시간만큼 '나답지 않은' 게으름을 부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침 7시, 드디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뭘 하든 앞뒤를 잴 필요가 없는 시간이었다. 주말이라도 할 건 하는 모습이 더 있어 보여. 내 안의 꼰대가 허세와 손잡고 고집을 부렸다. 덕분인지 때문인지 평소 아침 루틴을 그대로 지켰다.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는 하면 좋은 것들이었다. 할 때는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끝내고 나니 밀린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했다.


이제부터는 진짜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아직 토요일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드니 더 흥분이 됐다. 내가 시간이 없나! 돈이 없나!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겨우 하루 쉬는 시간에 간식 하나 사 먹을 돈이 있을 뿐이지만 '세상에서 제일 부지런한' 나는 자유로운 하루를 보내겠다는 일념 하에 오늘을 위한 장황한 계획을 짰다. 뭘 하며 보낼까. 자전거도 타고 마트 구경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여유롭게 산책을 하다가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바로 가게에 들어갈 거라고 다짐도 했다. 완벽하구먼. 나는 미리 군침을 삼켰다. 창밖을 보니 거리에는 아직 차나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선선한 아침 날씨도 서너 시간만 지나면 거의 여름과 다름없어질 것이었다. 여러 조건을 고려해 봤을 때 지금이 초보 자전거가 움직이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자전거 앱을 열고 1일 이용권을 샀다. 모든 게 준비 완료였다.


바깥은 기대만큼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그늘진 곳도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 딱 좋았다. 들 뜬 마음으로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다행히 차든 자전거든 자만하는 순간 사고가 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다. 지난주부터 균형 잡기도 쉬워지면서 어깨와 손목에 들어가던 힘도 많이 빠졌다. 오늘은 자전거 타고 집에 돌아가도 어깨와 손목이 다리보다 더 아픈 굴욕은 맛보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올해 안에 차 대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것을 해 볼 생각이라 오늘도 연습 삼아 출근길을 따라갔다. 차로는 알 수 없었던 길 위의 오르막 내리막이 자전거 위에서는 그대로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학교 가는 길의 3분의 2쯤까지 도달했다. 그 지점부터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학교 가는 거리보다 더 많이 자전거를 탄 셈이 될 것이다. 오늘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잠시 쉬다가 자전거 방향을 다시 집 쪽으로 돌렸다. 거리를 조금씩 늘려가는 맛이 쏠쏠해 돌아오는 길은 더 시원했다.


집에 돌아오니 이제 겨우 오전 10시였다. 아직도 토요일은 한 사발이나 남아 있었다. 자전거의 여운을 느끼고자 나는 거실에 대(大) 자로 누웠다. 놀란 근육 탓에 사지가 욱신거렸지만 시간이 지나며 곧 몸도 나른해졌다. 그때부터 내 몸과 마음은 따로 놀기 시작했다. 잠시만 누워 있을 생각이었는데 한 번 누운 몸은 그 뒤로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거창하게 세운 계획은 결국 꿈속에서 진행되었다. 허세 빵빵하게 시작했던 내 하루는 갑자기 오전 10시에 바람이 빠지며 푹 꺼졌다. 그 뒤에는 반수면 상태로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거짓말 조금 보태어 눈꺼풀을 한 번 껌뻑했더니 오후 7시가 되었다. 여전히 정신 못 차린 나는 잠 오는 눈으로 어스름한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는 해와 함께 내 황금 같은 토요일도 저물어 가는 중이었다. 아직도 풀리지 않은 피로함과 누워 있던 시간만큼 쌓인 허무함이 내 안을 꽉 채웠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는다더니 이건 동화 속 이야기인가 보다. 그 후 통통해진 새끼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의 이야기는 '그 후 내내 누워 있었다'였다. 일찍 일어나는 것과 부지런한 것은 연관성이 없다는 증거였다. 게으름이 들통난 건 부끄러워하면서도 못난 모습을 인정하는 데는 시간이 더 걸렸다. 순간 나의 본래 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올라오기도 했다. 계획대로 하루를 보낸 건 아니었지만 혼자 있는 주말답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시간을 보냈으니 된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자유라고 스스로 합리화도 시켜보았다. 바람 빠진 풍선은 그러면 그럴수록 더 쭈글거릴 뿐이었다. 실제로는 내가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 시간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서일 것이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리 맛있는 자유라도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지금은 용두사미가 된 나의 하루를 소화시키려 애를 쓰는 중이다. 남들이 씌어준 틀에 끼어 사는 한 나는 하루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일찍 일어나는 건 일찍 자기 때문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을 제발 인정하자.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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