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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y 21. 2024

함께 하되 섞이지는 않게

며칠 전 엄마가 조심스럽게 내가 쓴 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쓰는 글이 예전만큼 재미있지 않다고 했다. 쉽게 이런 말을 하지 않는 엄마의 성격을 아는지라 용기 내어 말을 하려는 모습 속에 나를 향한 모성이 느껴졌다. 나는 뒷말이 궁금했으므로 편히 말씀하실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었다. 엄마는 글이 학교를 소재로 하여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최근에 쓴 글 몇 개를 예로 들어주셔서 쉽게 이해가 됐다. 나는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엄마는 혹여나 당신의 말 때문에 딸이 글을 쓰는데 힘이 빠지진 않을까를 걱정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아이 같아 보였다. 자식은 마흔이 넘어도 부모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구나 싶었다.


엄마는 나를 자식으로 보고 있지만 그 순간 나에게 엄마는 독자였다. 내 글이 재미없다는 피드백과 그리 생각하게 된 이유는 글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귀한 독자평을 그냥 흘러버릴 내가 아니었다. 나는 걱정하는 엄마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리고 말씀을 들으며 깨달은 부분을 이야기했다. 글을 쓴 의도도 덧붙였다. 내가 감정에 크게 변화가 없자 엄마도 그제야 안심하며 글 소재의 다양성을 위해 어릴 적 나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씀해 주셨다. 대부분이 나의 굴욕적인 시간에 대한 이야기긴 했지만 덕분에 실컷 웃었다. 이날 독자와의 만남은 꽤나 의미 있었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나는 교육청과의 간담회를 준비 중이었다. 몇 주 전 간담회 자료 초안을 만들어 동료 교사들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나름 공을 들여 만든 자료였지만 교사 회의를 하며 내용의 많은 부분이 재배치되거나 수정되었다. 동료 교사들은 회의가 끝난 후 혹시 내가 마음 상하지 않았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씨익 웃었다. 처음보다 훨씬 더 다듬어진 자료에 내 감정까지 살펴주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든든했다. 간담회를 하기 전까지 우리는 회의 자료를 검토하고 수정하는 시간을 3번 더 가졌다. 마지막에는 "지겨우시겠지만 한 번만 더 봐주세요"라는 내 말에 동료들은 나와 비슷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처음 보듯 자료를 꼼꼼히 체크하는 그들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듯했다.


간담회는 잘 진행됐다. 혼자 준비했다면 이번만큼 정확하게 자료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겨우 시작인 일이지만 해야 할 일은 다했다는 생각에 속이 시원했다. 간담회가 끝난 후 우리는 자축의 의미로 냉장고에 있던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꺼내 먹으며 1시간 수다를 떨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한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오늘 함께 힘을 합쳐 진행한 일에 대한 여운만을 즐겼다. 그날 아이스크림은 달달했고 서로 주고받은 쓸데없는 말은 재미가 솔솔했다.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인 날이었다.


집에 돌아와 내가 다른 사람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되짚어 보았다. 글이 재미없다고 해도, 애써 만든 회의 자료를 남들이 고쳐도,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고 한 내 말은 진심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마음이 고마워 그런 척한 것일까. 엄마의 의견을 따라 글을 고칠 의향은 있지만 나는 여전히 내 글이 좋았다. 그리고 고친 회의 자료로 일을 진행했지만 내가 만든 초안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괜찮았다. 그들의 말이 비난이 아닌 비판임을 알 것 같았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함께 하되 섞이지는 않음). 좋아하는 말이라 자주 떠올리곤 했는데 다행히 나는 그 길을 조금씩 가는 듯했다.


인생은 퍼즐 맞추기 같다. 제대로 된 그림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퍼즐 조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서 나와 모양이 다르지만 함께 있으면 그림이 채워지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 아닐까. 우리는 서로의 모양을 관찰해서 나와 잘 맞는 조각을 찾아 자연스럽게 연결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사실, 같은 모양의 퍼즐 조각은 하나도 없다. 만에 하나 있다고 할지라도 같은 모양은 서로를 보완해주지 못할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른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당황스럽거나 불편하더라도 다른 모양을 살펴보다 보면 내 모양을 벗어나 색다른 모양이 만들어지고 그 과정 속에서 그림이 완성된다.


내 퍼즐은 잘 맞춰지고 있는 중이다. 나만 보지 않고 옆을 보기 시작한 내 눈이 그 증거라 생각한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꽤 큰 변화다. 예전에 비해 달라진 거라고는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뿐인데 이 부분이 생각보다 사는데 많이 중요한가 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사람들과 함께하며 배우는 게 많다. 책을 읽고 알게 되는 것보다 더 생생하다. 앞으로도 적당히 구리지만 사람 냄새나는 곳에서 살고 싶다. 사람이 귀신보다 더 무섭다지만 그래도 사람이 귀신보다 더 좋기 때문이다.


대문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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