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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y 15. 2024

19800518-0527

5.18 민중 항쟁

오늘 내가 쓴 일기가 몇십 년 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된다면 어떨까? 무슨 헛소리냐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1980년에 쓴 보통 사람들의 일기 4편이 2011년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그들의 기록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보여주는 데 있어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공식적인 인정이었다. 나는 전일빌딩245에 전시된 일기를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 본다는 느낌보다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설명문을 읽는 듯했다.


그중 내가 좀 더 주의 깊게 읽은 것은 목포에 거주하던 주부 조한금 씨의 일기였다. 빼곡하게 쓴 글씨체는 당시 불안했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광주에 전화를 해도 불통이라 했다. 국내 신문과 방송이 규제가 심해 제대로 된 소식을 들을 수 없고 그나마 방송에 나오면 이에 관한 이야기가 모두 '유언비어'라는 말만 했다. 각목을 들고 광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실제로 보며 평화와 전쟁이 공존하는 무법의 도시 같았다고 했다. 그의 일기를 읽으며 며칠 전에 본 영화 「택시 운전사」가 떠올랐다. 나에게는 영화였지만 그에게는 현실이었다. 일기가 쓰였던 1980년 5월 21일 그날, 광주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거나 다쳤다. 그렇게 죽을 이유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1980년 5월에는 들어갈 수 없었던 광주로 2024년 5월에 역사 기행을 갔다. 광주 망월공원묘지(망월동 구묘역)에는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비석에 적힌 날짜를 보니 출생일은 달랐지만 사망일은 거의 비슷했다. 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광주에서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 나갔다. 남녀노소 이유 불문하고 길거리에 있으면 군인들의 총격 대상이었다. 그들은 광주 전체 시민수보다 더 많은 총탄을 가지고 있었다. 총을 쏘는 사람들에게 광주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였다. 


21일에는 십만 명이 넘는 사람이 무력으로 시민을 제압하려는 신군부 세력에 맞서 비폭력 시위를 벌이다 수십 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 후 시민들도 무장을 하고 계엄군에 맞섰지만 잠시뿐이었다. 27일 군인들이 전남도청을 점령하며 그곳에서 마지막 저항을 하던 시민군도 거의 사망했다. 그분들이 묻힌 곳에 내가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어 장례를 차분하게 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여유 공간 없이 붙어 있는 무덤들이 말하는 듯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당연히 대통령은 시민들이 뽑는 것이고 군인들은 우리를 보호해야 한다. 이 당연한 생각들이 당연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설명이 짧게 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일어나게 된 시발점이라 했다. 촘촘하게 세워진 무덤을 보며 책에 적힌 짧은 문장 밑에는 수만 명의 이야기가 더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모든 민주주의 국가는 이렇게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걸까.


망월공원묘지 옆에는 새로 단장한 5·18민주묘지가 있다. 그곳에는 십이 간지 중 처음과 끝인 쥐와 돼지를 뺀 열 마리의 동물이 기둥에 새겨져 있었다. 44년이 지났지만 처음 발포 명령을 내린 사람이 아직 공식적으로 규명되지 않아 처음과 끝이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의미였다.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인정되지 않고 있는 이 어이없는 시간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광주를 돌아다니며 답답한 마음에 속에서 끝없이 질문이 올라왔다. 왜 ‘빨갱이’라 불리던 그들이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무덤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하나씩 들어 있었다. 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용동 전도사의 이야기였다. 그분은 27일까지 전남도청에 있다가 사망한 시민군 중 한 분이셨다. 계엄군보다 무장이 허술할 수밖에 없는 시민군은 내부에서도 시위를 이어가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대항의 의미는 있지만 무고한 시민이 계속 죽어가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전도사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민군이 가지고 있던 폭탄을 쓸모없게 만들어 모든 폭탄이 터지는 것을 막았다. 그 후 무기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계엄군은 27일 도청에 들어와 시민군을 제압했다. 


폭탄을 제거한 사실을 두고 사람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전도사가 계엄군의 첩자라는 말도 있지만 이유 없이 사람들이 죽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어 한 행동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계엄군과의 싸움은 말할 것도 없고 시민들 내부에서도 수많은 갈등이 있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는 사연이었다. 무덤마다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민주주의는 갈등과 토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떠올렸다. 죽으면서까지 시민군이 보호하고 싶었던 민주주의는 44년이 지난 지금 잘 이어지고 있는 걸까.


학생들과 함께 온 역사 기행이었다. 우리는 사전에 외신 기자들이 남긴 다큐멘터리와 영화 「택시 운전사」를 보며 5·18민주화 운동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그 당시 헬기에서 쏜 총탄 245개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한 전일빌딩245를 포함해서 망월공원묘지까지 여행하며 갈 장소에 대한 사전 조사도 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바깥에서 보고 느끼는 과정은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기회였다. 


나에게 이번 여행은 갈등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해 5월 18일과 27일 사이에는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 앞에서 각자의 생각을 어렵게 나마 하나로 모아야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현재 내가 살아가면서 겪는 갈등 또한 생각의 다름에서 오는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 것 같았다. 다양한 견해를 하나로 모으는 건 어렵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본 모습이기 때문이다. 무력은 쉽고 빠르지만 가치가 없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었다.


최근에 한강 작가가 쓴 「소년이 온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예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었는데 이번 역사 기행을 다녀온 후로 더 관심이 갔다. 사실적이고 세심한 서술 덕분에 처음부터 긴장감을 놓고 편히 읽기는 힘들었다. 마음을 먹고 책장을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놓은 순간순간이 감당이 안됐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우고 기억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읽고 멈추고 또 읽고를 반복했다. 여행 가기 전 봤던 다양한 자료들과 광주에 가서 실제로 본 장소들을 되새김질하기도 했다. 책에 적힌 보통 사람 6명의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어서였다. 전남도청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시민군 대부분이 나이가 어렸다고 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보다 더 어린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직도 5·18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뿐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 나가는 것으로 내 모자람에 대한 미안함을 대신했다.


5·18민주화 운동은 보통 사람들이 힘을 합쳐 이루어 낸 일이다. 그들 덕분에 현재 내가 보통의 일상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1980년 5월이 있었기에 2016년 촛불집회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광주의 민주광장에는 '5·18 진실 규명'이라는 말이 적혀 있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44년을 넘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때처럼 지금도 평범한 우리가 힘을 모아 기억할 뿐이다. 


묘지를 다 둘러본 후 마지막 느낌을 깃발에 적었다. 나는 살기 좋은 곳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이곳의 과거를 알고 나니 당장 내가 마음 편히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웠다. 지금부터 보낼 시간은 우리 세대의 몫이다. 우리나라가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 전일빌딩의 총탄 흔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폭력보다 비폭력이 더 큰 힘이 있음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부디 앞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편안하게 갈등하고 토론할 수 있길. 앞선 사람들을 따라 : 5·18민주화 운동을 배웠던 내 하루도 기록해 본다. 기억하고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그들에게 작은 내 마음을 보탠다. 보통 사람들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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