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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May 11. 2024

이마가 정강이에 닿을 때까지

요가

"요가는 정강이에 이마를 닿게 하는 게 아니다. 이마가 정강이에 다가가는 동안 경험하는 과정이다." 

                                                                                                         - 책 <각자의 요가> 중 -

아침마다 30분씩 요가를 한다. 정식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인터넷에 있는 요가 영상 중 하나를 골라 틀고 매트만 깔아놓으면 거실은 금세 요가원 못지않은 장소가 된다. 갓 눈을 뜬 몸은 잠을 잔뜩 머금고 있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까지가 고비다. 좀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몸을 사정없이 누른다. 잠이 오면 더 잘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더는 못 잔다. 지겨울 때까지 매트 위에서 꼼지락거리다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무작정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영상만 틀고 나면 그 후는 만사형통이다. 요가 선생님은 나의 게으름 따윈 안중에 두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냉정하지만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따라 요가를 하며 서서히 잠에서 깬다. 


그래도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빈 상태다. 잡음 없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어온다. 내 안에 영혼은 없지만 말소리는 들리므로 일단 팔과 다리를 정성껏 늘려본다. 취하는 자세마다 당김의 고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평화롭고도 힘든 시간이다. 요가는 묘하게 월급쟁이인 내 일상과 닮았다. 오늘 내 하루도 다양한 형태로 긴장과 이완이 오갈 것이다. 요가를 하며 일상의 긴장감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을 상상해 본다. 30분의 요가 속에도 중간중간 한숨 돌릴 시간은 있다. 다시 올 긴장감은 잠시 제쳐두고 그저 그 순간을 즐긴다. 일도 요가처럼 해야지. 느닷없이 잡생각이 틈을 찾아 들어온다. 내가 아직 덜 힘들다는 증거다. 다행히 타이밍 맞게 또다시 요가 선생님의 말씀이 시작된다. 딱 한숨 돌릴 시간만 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프로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을 털어버리고 몸으로 관심을 돌린다. 그리고 감당할 만큼만 이마와 정강이를 당겨본다. 닿기 위해 다가가는 지금, 이 순간만 내가 존재한다. 내 마음과 달리 둘 사이의 닿지 않는 공간을 슬프게 보진 않아야 한다. 그 이상의 만남은 내일의 몫이다. 


요즘 자주 보는 영상의 하이라이트는 다리 찢기다. 요가 선생님은 박쥐 자세라고 말씀하셨다. 양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내가 할 수 있을 만큼 허리와 배를 바닥에 붙인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선생님은 붙이고 나는 허공에서 붙이려고 노력한다. 골반과 다리에 느껴지는 고통은 참기 힘들면서도 한편으로 시원하다. 나도 이제 뜨거운 물 속의 시원함을 느낄 정도의 나이가 되었나 보다. 그래도 완벽한 박쥐가 되기까진 갈 길이 한참 멀었다. 요가는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는 말을 붙잡고 박쥐가 되기 위해 애를 써 본다. 선생님의 조용조용한 말투가 팔딱거리는 나와 너무 다르다. 박쥐, 박쥐, 박쥐. 같은 옷 다른 느낌으로 굴욕을 당하는 듯하지만 오직 박쥐만을 생각한다. 


30분의 소용돌이도 곧 지나간다. 내 입에서 끙끙거리는 소리가 사라지고 나니 다시 조용한 아침이 느껴진다. 요가를 마무리하기 전에 선생님은 명상하는 시간으로 일명 '사바아사나'라는 시체 자세를 말씀하신다. 사지를 모두 늘어뜨리고 편안하게 누워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박쥐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내 숨만 쉬며 몸을 완전히 늘어뜨린다. 요가를 하기 전과 후가 같아 보이지만 속은 다르다. 잠 대신 에너지가 느껴져 상쾌하다. 매일 아침 30분만 굴욕을 맛보면 나머지 23시간 30분을 든든하게 보낼 수 있으니 남는 장사다. 오늘 하루도 요가처럼 사바아사나로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시체 자세의 편안함은 앞선 동작의 긴장감과 대비되어 극대화된다. 우선 채워진 에너지를 가지고 낮에 부지런히 움직여 봐야겠다.


요가가 끝나면 두 손 가슴 앞에 합장하고 "나마스떼"라고 말하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냉정한 꾀꼬리 선생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나는 30분 동안 선생님에 대한 원망, 고마움, 답답함 등의 다양한 감정을 얼굴로 표현하며 영상을 따라 한다. 요가를 몸으로 하는 건지 얼굴로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마음이 이렇게 초 단위로 달라져도 되는 건가. 선생님과 함께 하는 동안 달라지는 건 늘 나인 것 같아 한없이 부끄럽다. 그래도 마음이 편안해진 마지막은 고마움을 담아 선생님께 따뜻하게 인사를 한다. 언젠가는 선생님의 몸동작과 표정을 닮은 모습으로 거울처럼 영상을 바라볼 수 있길 바라본다.


"처음은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


영상 마지막에 좋은 글귀가 하나씩 나온다. 매트를 정리하며 글귀를 따라 읽는다. 오늘 아침도 내가 습관을 만들고 있다는 뿌듯함으로 목소리에 힘을 잔뜩 넣었다. 요가가 끝나고 아침밥을 먹고 나면 나갈 준비 완료다. 일상을 시작하며 텅 비었던 머리도 곧 무거워지겠지만 아침에 에너지 가득 채운 몸이라면 하루를 잘 버텨주리라 믿는다. 매일 아침 몸을 움직여 마음을 수양한다. 이마와 정강이가 편안하게 만나는 날, 나는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할 수만 있다면 선생님처럼 크게 변화가 없으면 좋겠다. 요가는 인생을 닮았다.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몸과 마음이 유연해진다. 그리고 시간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게 다다. 


대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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