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관리 아저씨가 나를 보며 “편지!”하며 오라는 손짓을 하셨다. 편지? 종이로 된 편지를 받아본 지가 너무 아득해 어리둥절했다. ‘저한테 편지가 왔다고요?’를 말하려 하는데 문득 아저씨가 내 호실과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어떻게 내 편지인 줄 아셨을까. 평소에 인사는 열심히 했지만, 대화를 해 본 적은 없어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관리실로 다가갈수록 이런저런 궁금증이 올라왔다. 아저씨는 내가 도착하자 대뜸 창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아저씨가 건네주시는 것을 받았다. 내 손에는 편지 대신 작은 사탕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예상치 못한 작은 물건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이거 진짜로 나를 주는 거냐는 눈빛을 아저씨께 보냈다. 아저씨는 내 반응이 웃긴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오~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평소와는 달리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부끄러움보다는 감사함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손에 든 사탕을 보니 작년 크리스마스에 선물 못 받았다고 산타가 뒤늦게 던져주는 선물 같았다. 나는 손을 조몰락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함께 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사탕이 보이도록 슬쩍 손도 펴 보았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모두가 내 손을 보고 있는 것처럼 어깨가 으쓱거렸다.
힘이 나는 홍삼 캔디를 먹을까, 고소한 누룽지 캔디를 먹을까. 단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마치 제일 좋아하는 음식처럼 작은 사탕 두 개 앞에서 나는 껄덕거렸다. 메마른 도시 생활에 이렇게 구수한 순간도 있구나. 누룽지 사탕을 신나게 먹으며 아저씨가 왜 내게 사탕을 줬는지를 추측해 봤다. 혹시 아저씨도 나를 통해 옛날 감성을 느끼신 건 아닐까. 같은 건물에 살아도 서로 인사는커녕 오히려 경계를 하게 되는 요즘, 볼 때마다 인사하는 나를 보며 딸같이 느끼셨을 수도 있다. 아니면 늘 피곤해 보이는 내 얼굴을 조금이라도 펴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답은 아저씨께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만 내겐 그럴 수 있는 주변머리가 없었다. 더 이상 빨 것이 없어질 때쯤, 마음대로 아저씨의 사탕은 내 인사에 대한 답이라고 결론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사 하나는 열심히 하는 내게 별것 아닐 수 있는 인사가 사실은 별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듯했다. 기분 좋게 입에 남은 누룽지 맛을 음미하며 쩝쩝거렸다.
며칠 후, 엘리베이터에서 출근하는 아저씨를 다시 뵈었다. 그때 느꼈던 고마움과는 별개로 나는 평소보다 훨씬 더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내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아저씨의 얼굴도 전염시켰다. 아, 이눔의 낯가림. 큰 소리로 인사할 때는 언제고 처음 만난 것보다 더 어색하게 인사를 하는 내가 어이없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적막한 무음에 숨이 막혔다. 나는 한숨을 소리 죽여 내쉰 후 최대한 웃으며 아저씨께 사탕 주셔서 감사했다고 다시 인사를 했다. "뭘요." 아저씨도 어색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은 표정으로 짧게 답하셨다. 내 사회성은 여기까지였다. 그 뒤 다시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처음의 무음보다는 받아들이기 괜찮았다. 집으로 들어오며 다음에 다시 뵐 때를 대비해 할 말 몇 개쯤 준비해 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내게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을까. 아마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차근차근 내 안을 채워주었을 것이다. 인사는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사회생활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본 틀이다.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가끔 사탕도 얻어먹을 수 있는 비법이기도 하다. 가성비 좋은 내 비밀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데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지금 사회 자체가 이웃과 인사하며 지내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 여러 사람이 있어도 대부분 옆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손에 든 폰을 보며 층수를 확인할 뿐이다. 유치원 학생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으니 낯선 사람이 말을 걸면 피해라는 교육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다. 틀린 교육은 아닌데 왠지 뒤끝이 씁쓸했다.
남은 홍삼 캔디를 손에 쥐고 다시 조몰락거렸다. 지금 당장은 먹지 않고 책상 위에 두는 게 힘이 더 날 것 같았다. 언젠가 메마른 하루를 보내고 돌아왔을 때 입에 쏙 넣어야지. 저금하듯 위로를 저장했다. 나도 관리 아저씨처럼 누군가의 산타 클로스가 될 수 있을까. 일단 가방에 사탕 몇 개 들고 다니면서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봐야겠다. 그들의 메마른 하루에 내가 작게나마 달달함을 전달할 수 있다면 결국 돌고 돌아 내 삶도 달콤해지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말라간다. 남 일도 내 일이 아니고 가끔은 내 일도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무심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무심함과 무력감에 대항하는 방법은 '오늘 하루 나는 몇 번 인사를 했을까'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짧은 인사 덕분에 웃을 수 있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 나를 웃기는 사람은 결국 나다. 많이 웃으며 지내기 위해 "안녕하세요!"는 앞으로도 쭉 내 하루의 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