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달인

제주도 한달살이

by 마나

혼자 밥 먹는 거 잘해? 나는 잘해. 밥 먹는 게 뭐 대수라고 잘한다고 잘난 체까지 하냐고?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야. 밖에서 남들은 다 삼삼오오 모여 먹는데 그 옆에서 혼자 밥 먹으려고 해 봐. 밥이 들어가는 곳이 콧구멍인지 목구멍인지 알 수 없을 거라고. 같이 먹을 사람 없다고 밥 안 먹고 살 수도 없고 말이야. 언제 어디서든 먹는 건 정말 중요해. 잘 먹으면 속이 든든해서 자동으로 어깨를 펴게 되고 잘 못 먹으면 허기가 져서 몸이 위축될 수밖에 없으니까. 한 번뿐인 인생 당당하게 살아야지, 안 그래? 다행히 지금은 끼니를 때울 식량이 없어 고민하는 시대도 아니잖아. 우린 그저 남들 눈치 보지 않고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는 배짱만 키우면 되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 아닐까.


말이 그렇지 실제로 혼밥 할 때 당당하기가 쉽진 않은 거 알아. 밥을 먹는 건 그냥 음식을 입에 넣고 삼키는 저작 과정만은 아니니까. "다음에 식사 한 번 같이 하시죠." 인사말로 사용될 만큼 많이 쓰는 이 말속에는 서로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시간이 중요하다는 뜻이 들어있는 것 같아. 반대로 함께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건 내 외로움을 공개적으로 들키는 시간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밥 먹는 걸 인간관계와 연결하는 순간, 그 단순한 행위가 복잡하게 읽히기 시작하더라.


나는 그 연결고리를 끊고 싶었어. 복잡하게 살기 싫었거든. 밥은 밥, 사람은 사람으로 생각해야 외롭고 서러운 순간에도 속만은 든든할 수 있을 거잖아. 속상해서 밥 안 먹고 바쁘다고 대충 때우면 결국 나만 상하게 되더라고. 특히, 제주살이 한 달 동안 삼 시 세끼를 혼자 먹어야 하니 하루 세 번 즐거우냐 쓸쓸하냐를 결정하는 건 모두 내게 달려 있는 거잖아. 그래서 이번 기회에 밥 잘 먹는 달인이 되어보자고 마음을 먹었지.


혼자서도 밥을 잘 먹는다는 건 상황에 상관없이 식사 내내 밥이 입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거라 생각했어. 오롯이 식사에 집중한다는 뜻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먹을 때마다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 스스로 느끼는 외로움부터 외부에서 나를 대하는 모습까지 상황마다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방해물은 각양각색이었으니까. 그래도 '밥은 밥, 사람은 사람'이란 처음 생각만 붙잡고 있자 싶었어. 단순한 게 답인 것 같았거든. 다행히 시간은 열심히 집중하는 사람 편이었어. 혼밥 경력이 쌓이며 식사 시간을 온전히 확보할 전략도 하나 둘 생기고 있었으니까 말이야.


제일 신경을 썼던 건 밥 먹는 시간이었어. 혼자 먹으면 아무래도 빨리 먹고 나가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거든. 이건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불안해서 나오는 감정이라 정리해서 없애고 싶었어. 식사를 천천히 하는 게 몸에도 좋고 말이야. 겸사겸사해서 매끼 먹을 때마다 시간을 확인해 봤지. 내겐 20분이 적절한 것 같더라고. 처음에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식사 끝부분에 일부러 더 천천히 먹어야만 할 때도 있었는데 점점 속도도 조절이 됐어. 씹는 시간이 늘어나니 입 안에 있는 음식의 맛과 질감도 더 잘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지. 한 번에 한 곳만 공략할 수 있는 내 집중력 덕분에 식사에 몰두하면 할수록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는 정도도 줄어서 좋았어.


느리게 밥을 먹으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 식당 내에 장식되어 있는 것들을 유심히 봤어. 손님들은 2,30분 머물다가 밥만 먹고 떠나지만 식당 주인과 종업원들은 그곳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하며 살고 있는 거잖아. 구석진 곳에도 먼지가 없는 걸 보면 음식도 더 정갈하게 느껴졌고, 곳곳에 있는 작은 소품들과 글귀들은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는 마음을 대신 보여주는 것 같았어. 또, 일하는 종업원들의 표정도 봤어. 음식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행복해야 덩달아 음식도 달달한 법이니까 말이야. 식당을 갈 때마다 오롯이 음식과 그 장소에만 집중하는 게 좋았어. 시간이 갈수록 제대로 된 식사를 하며 산다는 자부심이 나를 더 든든하게 했지.


대신, 식당이 붐비는 시간 대는 살짝 피했어. 2인이나 4인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손님들이 들어왔다가 자리가 없어 나가면 주인도 나도 불편해지더라고. 원래 2인부터 받는 식당이었는데 모르고 들어온 나를 마음 써서 받아주셨다가 그런 상황에 마주치면 더 그랬던 것 같아. 식당도 식당이지만 나도 더는 혼자 밥 먹는다고 위축되고 싶지 않았어. 그렇다고 2인분을 시킬 수도 없는 거잖아. 그래서 식사 시간만 조절했지. 결과적으로 밥 먹는데 주변도 덜 시끄럽고 주인이 갖다 주시는 음식량도 더 많아진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어.


그리고 받은 음식은 될 수 있는 대로 다 먹었어. 골고루 먹어야 건강해진다잖아. 휴직 후 한달살이를 하는 이유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니까 당연히 반찬투정 없이 잘 먹어야지. 투정 부릴 나이도 아니고 말이야. 한 번은 순두부집에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다 못 먹고 나온 적이 있어. 그다음 날 늦은 오후쯤 다시 갔더니 아주머님이 날 알아보시더라고. 나는 아무도 없는 식당에 널널이 앉아 천천히 식사를 했지. 많이 걷고 난 후라 배가 고프기도 했고 어제 못 먹은 음식 오늘 먹으니 더 맛있기도 해서 평소보다 더 싹싹 긁어먹었어. 주인은 그날도 여전히 피곤해 보이셨는데 내가 남기지 않고 다 먹은 걸 보시곤 활짝 웃으시더라고.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어. 식사는 자고로 이렇게 해야지 하며 혼자 으스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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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걷다 먹는 밥은 꿀맛이라 남길 게 없다

흔하진 않지만 가끔씩은 혼자 밥 먹기 싫어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어. 방법은 간단해. 아무도 모르게 테이블 사이에 있는 수저통을 반대쪽으로 옮겨 경계의 벽만 허물면 돼. 옆에 있는 사람들은 혼자 온 사람이 큰 고등어를 우적우적 뜯어먹는 걸 더 잘 볼 수 있고 나도 옆사람이 뭘 먹나, 내 것보다 더 맛있는 건가를 살필 수 있었고 말이야. 낯선 사람들과 함께 식사 시간을 공유하는 것도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 그들도 그랬겠지? 옆 테이블을 두어 번 힐끔거렸을 뿐이니 나도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을 거라고 믿고 말래.


밥은 계속 씹으면 단맛이 더 느껴지잖아. 마찬가지로 혼밥 경력도 늘어나면 그만큼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 그래서 함께 먹을 땐 함께, 혼자 먹을 땐 혼자,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능력자가 되지. 밥심으로 사는 건데 밥 안 먹어서 속상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지 않겠어. 느긋해진 요즘은 식당을 정하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프면 바로 근처 식당에 들어가. 사전 정보 없이 찾은 식당이 되레 맛도 있고 가격도 더 저렴하더라고. 혼자 가는 손님을 대하는 인심도 다르고 말이야. 제주도 숨은 맛집 찾는 재미가 솔솔 해. 앞으로도 눈칫밥은 안 먹으려고 노력할 거야. 여유롭게 밥심 잘 채워야 또 신나게 제주도 누빌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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